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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은 핼러윈데이①]“성적 대상화는 그만” 간호사ㆍ수녀 고통받는 핼러윈
-망사스타킹에 가터벨트까지…비현실적 직업군 묘사
-“왜곡된 인식 심어줄 수 있어 자제해야”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 “섹시한 간호사 언니, 같이 사진 찍어도 될까요?” 31일 핼러윈데이를 앞둔 지난 28일 토요일 밤 10시. 핼러윈 분장을 한 개성 넘치는젊은이들이 홍대입구에 모였다. 좀비, 조커, 백설공주 등 다양한 복장을 한 인파로 인근 거리 전체가 들썩이는 가운데, 늦은 밤거리를 채운 건 오싹한 공포를 자아내는 좀비나 귀신만이 아니었다. 이날 거리에서 좀비 분장만큼 쉽게 볼 수 있었던 핼러윈 복장은 단연 ‘간호사’였다.

꽉 끼는 짧은 유니폼, 망사스타킹에 가터벨트. 얼핏보면 분명 간호사였지만 실존하는 병원 어느 곳에서도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공포 괴담에 등장하는 간호사의 모습조차 아니었다. 완벽한 대상화였다.

핼러윈을 맞이한 28일 홍대. 간호사 복장을 변형한 핼러윈 복장을 입은 모습. [사진=김유진 기자/kacew@heraldcorp.com]

특정 직업군을 성적 대상화한 의상이 올해 핼러윈 시즌에도 반복돼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주로 문제가 된 핼러윈 복장은 간호사 유니폼, 경찰 제복, 수녀복 등이다. 특정 직업군을 상징하는 의상을 짧은 노출의상으로 변형하고 가터벨트와 함께 코디하는 등 해당 직업의 실제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묘사한 경우 비판의 대상이 됐다. 간호사 복장 외에도 미니원피스 형태의 경찰복에 가터벨트를 했거나 수녀복을 가슴께를 깊게 판 형태로 변형한 복장 역시 비판의 대상이다. 엄연히 전문성을 갖춘 직업을 현실과 전혀 다른 이미지로 묘사해 직업에 대한 편견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문제 의식은 이전부터 제기됐다. 지난해부터 간호사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해당 핼러윈 복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당시 “간호사는 원피스 입고 엉덩이 흔들고 다니지 않는다. 내 직업이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하냐. 이렇게 왜곡하지 않아도 현장에서 충분히 차별받고 성희롱 받고 있다”는 호소가 이어진 바 있다.

미국에서 일하는 간호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트위터리안 역시 “특정 직업을 성적 대상화 하는 분장을 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부디 만류해 달라. 당신에겐 1년에 한번 있는 즐거운 날이 되겠지만 당신이 성적대상화한 특정 직업을 본업으로 삼은 사람에겐 그 피해가 1년 내내 고통으로 돌아온다”고 밝혔다.

이같은 지적의 핵심은 ‘왜곡된 인식’이다. 단순히 특정 직업군의 복장을 핼러윈에 입은 것 자체를 문제시 하기보다는 직업을 대상화하고 성적으로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부분이 문제다. 공포 분위기를 위해 특정 직업군의 복장을 한 채 붉은 물감 등을 바르는 것 자체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실제로 이날 홍대 거리에는 군인, 의사 등 특정 직업을 묘사한 핼러윈 복장이 넘쳐났지만 이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은 없었다. 공포 분위기를 위해 붉은 물감을 바르는 등의 차이만 있을 뿐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군대 괴담, 병원 괴담 등을 충실하게 묘사한 복장이었기 때문이다.

핼러윈을 맞아 간호사 복장을 골랐지만 과도한 대상화는 일부러 피했다는 시민도 있었다. 이날 피 묻은 간호사복을 입고 나온 오모(21) 씨는 “병원에 괴담이 많아서 공포 분위기를 낼 겸 간호사 복장을 선택했다”며 “가터벨트와 한 세트인 간호사 복도 있었지만 공포 분위기를 표현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서 이 정도로 골랐다. 직업군 비하에 대해선 앞으로도 조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핼러윈은 아일랜드 켈트족 풍습에서 유래해 죽은 이의 혼을 달래고 악령을 달래는 의식이 축제로 발전했다. 서양 축제지만 한국 젊은 이들 사이에선 한국 전통 축제보다 즐거운 문화로 발전한 게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어떤 축제를 즐길 지는 개인의 자유지만 축제의 본 취지와 맞지 않는 의상으로 특정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실제 직업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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