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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류에 취하고 절경에 심쿵…‘월봉로맨스’ 손짓하는 남녘…
21세기 유생들 ‘월봉서원’서 소리체험
茶時 즐기다 숲길 걷으며 선비생활
해남 미황사 전각은 갤러리로 단장
호남최고 이훈동 정원·윤선도 고택
후손들 툇마루·마당까지 국민에 개방


빛고을 광주에 ‘성균관 스캔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름은 ‘월봉 로맨스’이다.

원작은 450여년전 스물여섯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충정 어린 편지를 주고 받았던 퇴계 이황(1501~1570)과 고봉 기대승(1527~1572) 간 학문적, 인간적 우정이다.

세월은 흘러, 요즘 기대승의 학문적 업적을 기리는 월봉서원에 가면 남녀 유생들이 서원 강의실 사잇길과 산 오솔길을 활보하며 재잘거린다. 월봉서원의 21세기 남녀 유생은 서로 장난치고, 자연과 음악을 즐기며, 셀카도 찍는 등 자유분방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세월은 흘러, 요즘 기대승의 학문적 업적을 기리는 월봉서원에 가면 남녀 유생들이 서원 강의실 사잇길과 산 오솔길을 활보하며 재잘거린다. 월봉서원의 21세기 남녀 유생은 서로 장난치고, 자연과 음악을 즐기며, 셀카도 찍는 등 자유분방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은 월봉서원 선비체험.
자유 영혼, 21세기 유생=월봉서원 툇마루에 소릿꾼 김현정이 오르더니 EDM 못지 않게 흥겨운 가락을 뽑아내자 남성 유생들이 어깨를 들썩인다. 여성 유생은 아이돌 처럼 생긴 예인 임황철의 대금 가락에 넋 나간 듯 빠져든다. 해금 연주자 이다정의 구성진 현악 멜로디가 서원 전체에 올려퍼질 때엔 남녀노소 너나 없이 ‘심쿵’해 지기도 한다.

서원은 공연장이자 다방(茶房)이다. 월봉서원에서 감나무가 한옥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민 오솔길로 100m쯤 걸어나오면 월봉 소속 한옥 다방 ‘다시茶時’가 있다. 전통차와 함께 담소를 나눌수 있게 했다. 아메리카노도 있다. 茶時(다시)는 사헌부 관원들의 티타임인데, 광주 광산구 공무원들과 문화예술인들이 다방을 차릴 때 끌어다 썼다.

그렇다고 서원이라는 공간의 참뜻을 잊은 것은 아니다. 여행자 유생들은 실내에선 고봉선생이 실현하려 했던 어진 임금의 정치 방도,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지 않게 하는 방법 등을 공유한다. 또 오래전 선비들이 하던 책 제본법(오침안정법) 배워 ‘알쓸신잡’, ‘문재인뎐’ 등을 펴냈다.

야외에서는 청정 숲길을 걸으면서 나를 돌아보고 참된 길을 생각하는 ‘철학자의 길’ 산책을 한다. 월봉서원 홈페이지나 전화로 예약하면 소정의 인원이 차는 대로 다양한 것을 체험하고, 그냥 불쑥 찾아오면 ‘선비의 하루’에 참여할 수 있다. 한 바탕 논 뒤엔 최근 2~3년 새 상인 평균연령이 20세나 낮아진 1913 광주 송정역 시장 청년상인의 ‘마약 옥수수’, ‘굴뚝방’, ‘치즈식빵’, ‘어? 묵!’ 등 창의적 먹방을 즐기면 되겠다.

 
‘미황사’ 소릿꾼과 화가의 콜라보
절경이 있는 사찰 갤러리, 화가-소릿꾼 콜라보=해남 미황사(美黃寺)의 한 전각은 갤러리로 거듭났다. 또 장르를 초월한 예술인들의 콜라보 한마당이 되기도 했다.

까닭은 알 수 없으나 달마가 남쪽으로 간, 국토 최남단 사찰 미황사는 금강산 만물상을 좀 닮은 듯, 두 마리 소의 머리가 붙은 듯, 누운 듯한 달마산 꼭대기 기암괴석들이 병풍처럼 호위하는 곳이다. 아름다운 경관(美) 속에, 황소(黃)가 울며 넘어지는 곳에 세운 이 절에는 ‘팝업 갤러리’가 있다.

동-서양화가 상설 전시되는 가운데, 예인들의 퍼포먼스도 이어진다. 지난 12일엔 판소리 이병채 명창이 한 마당 하는 동안, 수묵화가 김선두(중앙대 교수) 작가는 이 명창과 박준호 고수가 빚어내는 가락과 읊조림에 잘 조응하는 그림을 그려나갔다.

서원과 사찰의 변신은 한국관광공사가 주선하고 지자체와 예인들이 호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통문화 체험관광 프로그램’은 예인의 안내로, 예향의 문화예술과 관광지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고품격 여행상품이다.

모나리자 그림이 루블 창고 속에서 수십년 방치되다가 스토리와 새로운 매력적 콘텐츠를 입혀 세계적인 작품이 되었듯이, 지금은 아는 사람만 높이 평가하는 우리 문화예술 작품과 퍼포먼스를 세계인이 즐기는 매력덩어리로 키우는 작업이다.

이른바 ‘아트 투어리즘’은 계절을 따지지 않기에 지속가능한 관광입국의 중요한 고리가 된다. 관광공사는 창의적 아이디어와 강한 열망, 주민의 단합된 의지를 가진 10곳을 선정해 컨설, 마케팅, 예산 지원을 하고 있다. 


해남의 고산 윤선도 고택인 ‘녹우당’
이훈동 정원, 윤선도 고택 국민의 것으로=미술작품, 공연퍼포먼스, 산과 바다, 강의 절경을 감상하면서 힐링한 여행자는 이제 해남군 화산면에 있는 해창주조장으로 전통주 파티를 하러 간다. 이 집 막걸리 주조철학은 ‘액체밥’이다. 건강한 물밥에 취하는 것이다. 일본인-한국인으로 이어지는 90년 동안 쉼 없는 연구개발이 계속됐다. 이곳에서는 베롱나무, 마로니에, 목련, 체리, 찔레등 화초와 미니어처 산(山), 샘과 연못 등으로 꾸며진 정원을 감상할 수 있다.

목포 유달산 아래 이훈동 정원은 호남 최고의 정원인데, 후손들이 자기네 뜰을 국민에게 개방했다. 매주 토요일 14~17시에 여는데, 히로시마나 나오시마에서 볼 수 있는 아기자기한 정원을 이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 고개를 들면 유달산 층층 누각들이 보인다. 이훈동 정원은 마치 그 산세와 물길을 이은 듯, 인공 실개천, 연못을 만들고 귀여운 다리를 얹었다. 주변엔 다양한 수목과 화초, 5층, 3층탑 미니어처를 배치했다.

해남의 고산 윤선도 14대 종손인 윤형식 종가회장은 유적지인 녹우당과 딸린 재산을 공익법인화해 세습사유화를 막았다. 그리고 마당과 툇마루를 과감하게 국민에게 개방했다. 이훈동과 윤형식의 ‘더불어 함께 잘 누리는 마음’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그러면서 가문의 전통은 지켜줄 것을 후손들에게 당부한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윤씨가문의 전통음식인 비자강정, 어만두, 각색다식, 감 단자, 육만두를 만들고 있으며, 찾아오는 손님에게 다과로 제공한다.

 
‘해창주조장’ 먹걸리 시음과 피조개·연근 안주체험
‘관상’의 주인공 윤두서는 팔방미인 천재=녹우당에 가면 대동여지도보다 150년 빨리 ‘동국여지지도’와 일본지도를 만든 윤두서 얼굴의 판화를 만들수 있다. 문과인 진사에도 급제하고, 미술, 지리학 등 팔방미인인 윤두서의 자화상은 영화 ‘관상’의 타이틀에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고(故) 이훈동 조선내화 회장의 호는 성옥(聲玉)이다. 당대의 스타 예술인과의 친분은 물론 폐가의 버려질뻔 했던 유물까지 모았다. 일찌기 우리의 우수한 예술혼을 발견했기에 그는 우리의 예술이 피카소, 모나리자 못지 않은 세계적 스타가 되기를 원했다.

행촌문화재단 이승미 관장,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중앙대 김선두 교수, 김억 작가, 이종상 작가 등 뜻있는 문예인들이 뛰어난 우리 것의 세계화를 도모하고 있다. 전략은 여행과 예술을 결합시킨 ‘아트 투어리즘’이다. 관광공사가 런칭한 전통문화 체험관광 프로그램은 중요한 마중물이고, 오는 11월12일까지 목포와 진도에서 열리는 전남 국제 수묵 프리비엔날레는 ‘한국형 모나리자’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실천행위이다.

부산·강화·강릉·경주·산청도 아트투어=아트 투어 프로그램으로는 ▷부산 동래구의 ‘낙낙(樂 Knock) 민속체험 ▷강화의 ‘고인돌로 떠나는 밀(古)당(氣go) 여행’ ▷울산 울주의 ‘외고산 옹기마을 전통가마체험’ ▷경북 영주 ‘옛 선비를 만나다’ ▷강릉 한류문학 힐링스토리 로드 ▷유네스코 전주 여행 ▷경주 신라밤 트레킹 ▷‘산청 한방테마파크 오감+α 체험 : 동의보감촌 힐링캠프’ 등이다.

풍광도 빼어난 예향에 예인이 국민과 동행하는 아트투어는 그야말로 님도 보고 뽕도 따는 최고의 힐링이다.

함영훈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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