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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송 인지대 감액 논란 ①] 돈 받으려고 하는 소송, 먼저 돈 들여야?
-청구액의 0.35~0.5% 인지대…업계 “재판청구권 침해”
-法 “고액인지대 사건 적어…소송남발방지 차원서 필요“
-與 중심 인지대 상한 제한하는 입법안 다수 국회 계류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2015년 회사와 갈등을 벌이던 A회사 노조는 파업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당해 사측에 33억 원을 물어주라는 판결을 받았다. 소송을 위해 법원에 내는 일종의 수수료인 ‘인지대’ 1800만 원을 들여 항소했지만, 2심에서도 패소했고 다시 대법원에 상고하는 데는 2400만 원이 들었다. 마땅한 예산이 없던 노조 측은 소송 포기를 심각하게 고려했다. 사건을 다시 다투고 싶지만, 소송 비용에만 4200여만 원을 쓸 여력이 없었다.

이처럼 과도한 인지대 부담 때문에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된다는 지적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인지대를 둬서 소송 남용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지만, 현행처럼 소송 청구액에 비례해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는 방식이 아니라 상한을 정해놓아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진=헤럴드DB]

6일 대한변호사협회(회장 김현)에 따르면 2015년 11월 변호사 877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현행 인지대 계산방식이 적절치 않다’고 답한 응답자는 618명으로, 전체의 70.%를 차지했다. ‘적절하다’는 답은 216명(25%)에 그쳤다.

반면 법원은 현행 방식의 인지대 책정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변호사업계는 수수료가 낮아져 소송을 대리할 사건이 많아지는게 유리한 반면, 법원은 밀려드는 소송 수를 어떻게든 줄여야 하기 때문에 현행 방식을 고수하려고 한다. 특히 인지대는 원고가 여럿인 집단소송에서 걸림돌로 작용한다. 집단소송 특성상 한 소송에서 청구하는 금액이 수백억 원에 달하는 경우도 있지만, 청구액에 비례하는 인지대 부담으로 소송을 제때 내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민사소송 등 인지법’은 소송가액에 따라 인지대를 책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소송 청구액 1000만 원까지는 0.5% △1000만 원 이상 1억 원 미만이 경우 0.45%에 5000원을 더한 금액 △1억 원 이상 10억 원 미만인 경우 0.4%에 5만 5000 원을 더한 금액 △10억 원 이상인 경우 0.35%에 55만 5000 원을 더한 금액이 인지대가 된다. 항소심 수수료는 1심의 1.5배, 대법원 상고심에서는 1심의 2배를 내야 한다. 예를 들어 10억 원짜리 소송을 내는 사람이 1,2심에서 전부 패소해서 3심까지 갈 경우 인지대로 1심 355만5500 원, 2심 533만3250 원, 상고심 711만1000 원 등 총 1599만 9750 원을 인지대로 내야 한다.

법원행정처 통계에 따르면 1심 민사 본안 사건 중 소송 가액이 5억원을 넘는 사건은 2012년 1만 1682 건, 2013년 1만 2014 건, 2014년 1만 1257 건으로 전체의 1% 가량을 차지한다. 법원은 고액의 인지대를 내야 하는 사건 비중이 높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비율이 아닌 절대치를 기준으로 인지대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는 다른나라에 비해 소송으로 이어지는 사건 수가 많기 때문에 고액 사건 비중이 낮게 보이는 것일 뿐, 전체 인구 수에 비해 고액 사건이 1만 건을 넘는 것은 결코 적은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사진=헤럴드DB]

이 문제가 논의될 때 변호사업계와 법원이 거론하는 해외 사례도 차이를 보인다. 변호사업계는 액수가 고정된 미국 뉴욕주 법원을 예로 든다. 여기서는 사건 배당 신청 시 95 달러, 재판기일 신청 때 30 달러를 납부하는 게 전부다. 항소 시에도 315 달러를 낸다. 반면 법원은 우리나라처럼 소송가액에 비례하는 인지대 제도를 채택한 국가의 사례를 든다. 가령 10억 원짜리 소송을 내면 1심을 기준으로 독일의 경우 우리돈으로 4000여만 원을, 일본은 우리나라와 큰 차이가 없어 320여만 원을 낸다.

높은 인지대가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에 따라 입법안도 여러 건 국회에 계류 중이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안한 개정안은 현행 인지대 산출 방식을 유지하되, 각 심급별로 2000만 원을 넘지 못하도록 상한을 뒀다. 같은 당 박영선 의원도 1심 상한을 5000만 원으로 하는 법률 개정안을 제출했다. 두 의원 안은 다만 ‘징벌적 손해배상’ 사건에 국한해 인지대를 줄이자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불법으로 이익을 취한 책임을 물을 때 실제 손해보다 더 많은 배상액을 물리는 제도를 말한다. 같은 당 변재일 의원이 내놓은 입법안은 징벌적 손해배상 사건여부에 관계없이 1심 인지대를 300만 원으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소송 인지대가 너무 높아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논리는 헌법소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고액의 인지대를 내는 사건은 소송을 내는 사람이 재판을 통해 얻는 이익이 그만큼 크고, 현행 수수료 부과 정도가 재판청구권을 침해할 정도로 과도하지 않다며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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