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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포럼-성대규 보험개발원장]오늘은 갑, 내일은 을…쌍방향 톨레랑스
프랑스 식당에서 음식 주문을 위해 종업원을 손을 들어 부른 적이 있다. 종업원은 기다리라며 “준비가 되면 주문 받으러 가겠다”고 했다. 5분 뒤 다시 종업원에게 손을 들었다. 이번에는 답이 “당신 순서가 아니니 기다리라”란다. 한국에선 ‘손님은 왕’인데,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종업원에게 항의하는 프랑스인 손님은 거의 없었다. 손님이 아닌 종업원이 소위 ‘갑’인 프랑스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 사회는 ‘갑질’과 전쟁 중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장군과 사병, 사장과 운전기사, 회사와 노동자, 교사와 학생, 콜센터 직원과 무례한 고객 등. 같은 회사 내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이 있다. 정부와 정치권도 잇따라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국가권력이 갑질에 직접 칼을 드는 모양새다.

사실 갑질에 분노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약한 사람은 부당한 서러움을 당할 때가 많음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법과 제도 개선에 앞서 생각해 볼 몇 가지가 있다.

먼저, 갑과 을로 양분하기 어려운 복잡한 사회구조다. 이중적인 지위를 가진 사람이 많다. 한 회사의 근로자도 다른 회사의 주식을 가진 주주일 수 있다. 자녀를 둔 교사는 동시에 학부모이다. 돌아서면 갑을이 바뀌는 경우도 많다. 콜센터 직원이 마트에 가면 수납원에게 무례한 고객될 수 있다. 영업직원도 식당에 가면 종업원에게 분풀이 할 수 있다.

설사, 갑을이 구분되는 경우라도 법에 의한 문제 해결은 상책이 아니다. 복잡하게 얽힌 사회구조를 법의 칼로 섬세하게 해부하여 수술하기는 어렵다. 물론 우월적인 힘의 남용이 중대하고 반복적이어서 자율적인 치유가 어려운 경우 법의 개입이 필요하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그 예이다. 법률에 따르면 소위 갑은 일반 가격보다 낮은 수준의 하도급 대금을 을이 받도록 강요할 수 없다. 하지만 손님이 식당 종업원을 함부로 대하는 것을 사법처리할 수 있을까. 개인의 삶과 행동 방식에 공권력이 일일이 개입하는 것은 참기 어렵다.

법과 제도에만 의지할 수 없다. 너와 내가 ‘더불어 산다’는 아주 평범한 가르침을 실천에 옮길 때 갑을의 장벽이 무너질 수 있다. 사람 인(人) 자는 아래가 없으면 위가 쓰러지는 모양이다. 맹자(孟子)가 이루 하(離婁 下)편에서 “처지를 바꾸어 보면 모두다 그럴 것(易地則皆然)”이라고 가르친 뜻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삶에도 을 없는 갑이 없고, 갑 없는 을이 없다. 오늘의 갑이 내일 을이 된다. 프랑스에서는 오늘은 식당의 손님인 내가 내일은 주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참는다고 한다. 이것이 톨레랑스(tolerance), 즉 관용이다. 프랑스 식당의 종업원도 관용이 있다면 ’부글부글‘ 끓는 손임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을 지 모른다. 관용은 일방이 아닌 쌍방일 때 가치가 빛난다.

남의 갑질에는 면도날 같은 비난을 퍼부으면서, 나의 갑질에는 한없이 관대한 우리들부터 달라져야 한다. 좋은 말이 난무하지만 실천이 적은 세상이다. 나로부터의 작은 실천이 갑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 법에 의지할 문제는 아니다. 오늘부터라도 남보다 힘이 있다고 느낄 때 더불어 사는 인(人) 자와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되뇌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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