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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복되는 회장님 갑질①] 최근 ‘갑질’ 논란 총수들 4명 벌금형
-피해자와 합의하면 폭행죄 성립 안돼


[헤럴드경제=고도예 기자]  지난달 13일 이장한(65) 종근당 회장의 육성녹음 파일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총 14분 분량의 녹음파일에서 이 회장은 자신의 운전기사에게 쉴새없이 욕설을 퍼부었다. 잊혀질만 하면 불거지는 ‘회장님 갑질’에 시민들은 분노했다. 이 회장은 곧장 대국민 사과를 하며 머리를 숙였지만, 경찰은 이 회장이 전직 운전기사들에게 불법 운전을 강요한 혐의 등을 수사하고 나섰다.
욕설로 시작돼 폭행으로 마무리되는 기업 총수들의 ‘갑질 논란’은 주인공과 범행 방식만 달리할 뿐 매년 되풀이 되고 있다. 

기업 총수의 갑질 범행이 근절되지 않는 데는 ‘솜방망이 처벌’도 원인으로 꼽힌다.

최근 2년 간 근로자 폭행 등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대기업과 중견기업 총수 4명은 모두 벌금형의 약식명령을 선고받았다.

약자를 괴롭힌 이들의 행태에 대해 사회적 공분이 확대됐음에도 벌금형밖에 선고되지 않는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기업총수가 근로자를 폭행하더라도 폭행죄로 처벌받는 경우는 드물다. 기업총수가 피해자와 합의해 처벌할 수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폭행죄는 피해자와 합의하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 불벌죄’에 해당한다.

합의 여부와 무관하게 근로자를 폭행한 사용자는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다. 근로기준법 8조에서는 ‘사용자는 어떠한 이유로도 근로자를 폭행하지 못한다’며 이를 어긴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법정에서는 대부분 벌금형을 선고받는다.

본지가 대법원 판결문 검색시스템을 조회한 결과, 최근 3년 간 근로기준법 위반 근로자 폭행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16명 가운데 징역형을 선고받은 건 단 2명에 불과했다. 징역형이 선고된 2명의 피고인도 여러 혐의로 함께 기소된 경합범이었다.

폭언과 욕설은 더욱 처벌하기 쉽지 않다. 가령 기업총수와 운전기사 둘만 차량에 타고 있는 상태에서 욕설을 했다면 모욕죄를 적용하기 어렵다. 모욕죄는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을 때 비로소 성립하기 때문이다. 경찰은 한 대기업 총수가 운전기사들에게 폭언을 했다고 파악했지만, 차량 안에 다른 동승자가 없었다며 모욕죄를 적용하지 않았다. 폭언이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근로자를 폭행한 행위’로 인정되려면 더욱 요건이 까다롭다. 대법원은 판례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고성으로 욕설을 하는 등 신체에 물리적인 힘을 가하는 수준일 때만 폭언을 폭행으로 인정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006년 이같은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근로자에게 폭언을 해 근로기준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 광고제작업체 대표에게 “폭언과 인격비하 발언을 수차례 반복한 사실은 인정되나 이러한 발언이 물리적인 유형력을 행사한 수준이라고 볼 근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전문가는 반복적인 갑질 범행을 가중처벌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반복적인 갑질 범행에 대해 가중처벌 할 수 있게 입법 검토를 해야한다”며 “갑질 범죄는 근로자 입장에서 해고를 각오하고서야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만큼 엄중하게 처벌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반면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애초에 합의가 돼 처벌되지 않을 사안을 공적인 목적을 위해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형사처벌하는 것”이라고 했다.

yea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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