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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졸음운전 공포①] 서너시간 자고 15시간 운전…“매일 졸음과 사투”
-“정신은 몽롱, 시야는 가물”…못쉬고 달리는 버스기사들
-“무제한 연장근무 허용 폐기ㆍ운전기사 충원해야” 목소리

[헤럴드경제=이현정ㆍ박로명 기자] 지난 12일 오후 경기도 성남의 한 광역버스 차고지. 버스 한 대가 들어와 멈추더니 운전기사인 허모(56) 씨가 부리나케 화장실로 달려갔다. 몇 시간 동안 운전하면서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10년째 광역버스기사로 근무하고 있다는 허 씨는 화장실을 다녀온 후 15분 만에 점심을 허겁지겁 떼우고선 다시 운전대에 앉았다. 이날 하필이면 도로에 트럭 전복 사고가 발생해 운전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길었다. 허 씨의 점심 겸 휴식 시간은 확 줄었다. 잠시라도 눈을 붙이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허 씨는 “교통 상황이 나쁘지 않아도 겨우 30분 쉬는데 도로 공사가 있거나 교통사고라도 나면 귀한 휴식시간을 까먹기 일쑤”라며 “잠깐이라도 낮잠을 자고 싶지만 그럴 새가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어 “졸릴 땐 라디오를 듣거나 손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지난 9일 2명을 숨지게 한 경부고속도로 추돌사고의 원인이 버스운전사의 졸음운전으로 지목된 가운데 광역버스 기사의 열악한 근무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박로명 기자/dodo@heraldcorp.com

광역버스기사 강모(60) 씨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복격일제로 근무하는 강 씨는 이틀째 일하는 날이 늘 가장 고역이다. 반나절 이상 운전한 피로가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반나절 넘게 운전대에 앉아있으면 졸음만큼 무서운 게 없다.

강 씨는 “전날 15시간 근무하고 곧바로 새벽 6시까지 출근하려면 새벽 4시에는 나와야 한다. 3~4시간만 겨우 자고 15시간을 운전한다는 건 보통 체력을 요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차는 한정되어 있고 승객은 많고, 도로 사정까지 나쁘면 온전한 휴식시간을 가지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김모(51) 씨 역시 “사흘연속 운전한 적 있는데 여간 힘든게 아니다. 연속 근무를 하면 잠잘 시간이 부족해 피로가 몰려온다”며 “이 상태로 운전대를 잡으면 몽롱해서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지난 9일 2명을 숨지게 한 경부고속도로 추돌사고의 원인이 버스운전사의 졸음운전으로 지목된 가운데 광역버스 기사의 열악한 근무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준공영제로 운영되고 있는 서울 광역버스와 달리 경기 광역버스는 민간업체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근로기준법상 하루 8시간, 주 40시간으로 근무을 제한하고 있지만 운수업 종사자들은 예외다. 노사가 합의만 하면 12시간을 넘어도 무제한으로 연장근무를 허용하는 근로기준법 제59조 특례 조항 때문이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이 지난 2015년 내놓은 ‘버스운전 노동의 작업조건, 과로와 건강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도내 광역버스 운전기사 147명 가운데 1일 운전시간이 15~18시간인 경우는 53.7%에 달했고 18~21시간 근무도 42%로 파악됐다.

연장근무시 몸은 고되지만 임금이 낮은 탓에 현실적으로 연장근무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버스기사들의 주장이다.

서울에서 20여년 근무하다 경기 광역버스로 옮긴 박모(53) 씨는 “근무시간에 비해 월급이 낮으니 초과 근무를 하기 싫어도 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노선당 왕복시간을 넉넉히 보장하는 방법이 그나마 기사들에게 쉴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광역버스 기사 박모(47) 씨는 “배차간격을 힘들게 짜다 보니 도로에서 사고만 나면 예정 왕복 시간인 2시간~2시간 30분 만에 돌아올 수 없다”며 “식사 시간이 따로 없어 틈나는 대로 끼니를 챙기는데 그 시간을 놓치면 그냥 굶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배차 간격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왕복 시간을 넉넉히 줘야 기사들이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버스노조 측은 연장근무를 무제한 허용하는 근로기준법 59조를 폐기하고 적정 인원의 운전기사를 충원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민주노총 버스노조 관계자는 “이번 사고도 결국 결국 버스업체가 수익만 우선시하고 기사의 근로조건을 소홀히 하다 발생한 것”이라며 “기사의 근로조건이 개선돼야 승객의 안전도 보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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