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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147. 비 내리는 부다페스트…마지막 짐을 꾸리다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떠나는 것을 하늘도 아는지 밤새 비가 내리더니 아침까지 계속된다. 빗소리를 들으며 마지막 짐을 꾸린다. 6인실 도미토리도 떠나는 사람뿐이어서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눈다. 한국인 남자 둘은 새벽에 조심조심 짐을 싸고 크로아티아로 떠나갔고, 룸메이트였던 아르헨티나 사람 호아킨과 영국 여자 린지도 짐을 꾸린다. 오늘은 추울 것 같으냐고 묻는 린지에게 당연하다는 대답을 하며 둘이 웃음을 터뜨린다. 나는 이틀밖에 머무르지 않았지만 부다페스트는 내가 도착하기 며칠 전부터 연일 비가 내리는 중이라고 한다. 5월인데도 춥고 비까지 내리니 여행에 적합한 날씨가 아니라서 다들 실망스러워 하는 중이다.

​​장기여행 중이라는 호아킨은 나에게 다섯 달 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소감을 묻는다. 어제 집을 나온 것 같은데 벌써 돌아가야 하는 게 아쉽다는 내 대답에 두 남녀의 반응은 엇갈린다. 린지는 날씨 때문에 당장이라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장기여행 중이라 아시아로 갈 계획이 있는 호아킨은 내 마음을 이해한다고 등을 두드려준다. 5개월의 여행은 짧기도, 길기도 하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일까? 그의 마음도 그녀의 이야기도 둘 다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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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에는 공항까지 갈 수 있는 메트로티켓 두 장과 호스텔의 조식을 먹을 오천 포린트를 제외하면 헝가리 화폐는 한 장도 남아있지 않다. 2시 체크인이라 일찍 도착한 나를 오랫동안 기다리게 하던 호스텔의 체크아웃 시각은 오전 10시다. 날씨라도 화창해야 배낭을 맡기고 도나우 강변이라도 다녀오며 시간을 때울 텐데 비가 내리니 운신의 폭이 너무 좁다. 아침을 먹고 난 후, 메일로 받은 항공권을 프린트 해달라고 부탁해서 되도록 천천히 호스텔을 나선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현대식 호스텔 프런트는 잘 가라는 흔한 인사 한마디도 못할 정도로 바쁘다. 이것으로 여행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떠나는 나만 아쉽게 뒤를 돌아볼 뿐이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젖은 거리를 걸어 메트로로 향한다. 부다페스트에 도착한 엊그제 아침 나를 헤매게 했던 널찍한 대로, 반갑게 마주했던 노란 트램, 지나치는 노란 택시, 빨간 지붕들도 이제 안녕이다. 



혼잡한 메트로 입구에서 티켓을 검사하는 사복경찰들마저 여행의 추억으로 각인되고 있다. 메트로 안, 무채색의 옷을 꼭꼭 여미고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부다페스트 사람들의 얼굴도 그리울 것 같다. 그들도 친한 누군가와는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활짝 웃는 보통 사람일 것이다. 이곳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지 못한 채, 부다페스트를 많이 보지도 못하고 서둘러 떠나버리는 게 아쉽다. 그냥 모든 것이 다 아쉽다.

시간이 갈수록 비는 거세진다. 길도 잘 알고, 메트로 노선도 이미 익숙해서 환승도 잘하는데다, 국제공항이 도심에서 그리 멀지도 않아 공항에는 금방 도착한다. 손목시계가 가리킨 시각은 열한 시, 이제부터 여섯 시간동안 기다려야 한다.

떠나는 사람의 설렘으로 가득한 출국장의 풍경이란 다들 비슷비슷하다. 소박한 공항 터미널의 이층 한 구석에 배낭을 내리고 사람들이 발권하는 것을 지켜본다. 여행 마지막 날이 되니,여섯 시간 정도의 대기시간은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특히 오늘 같은 날은 그냥 벤치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 있기만 해도 머릿속에서는 지난 5개월 동안의 일들이 영화로 상영된다. 시간은 훌쩍 흐른다.



옆에 앉아 비행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고 드디어 체크인 시간이 된다. 큰 배낭을 수하물로 부치고 나니, 카타르 도하를 경유해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카타르항공편 티켓 두 장이 손에 쥐어진다. 작은 배낭만 달랑 메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출국장을 빠져나가 pp카드를 들고 라운지를 찾는다. 아무도 없는 쾌적한 라운지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며 초리소와 올리브를 먹는다. 인터넷 저편 한국에서는 조심해서 돌아오라는 메시지들이 날아오기 시작한다. 비행기에 오르기만 하면 되는데 조심할 게 뭐가 있을까? 여행 중에 서 가장 안락한 이동이 될 텐데….

이런 저런 기다림의 시간 끝에 드디어 게이트가 열린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지 그동안 비행기가 거의 만석이어도 내 옆 좌석은 비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도 사람이 꽉 찼는데 빈 좌석을 사이에 두고 나와 인도인 아저씨 한 명만 편히 앉아서 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 아저씨 눈치가 이륙 전부터 이상하다. 발아래 내려놓기에는 꽤 짐이 큰데도 짐칸에 올려놓지 않겠다고 스튜어디스와 실랑이를 하거나, 안절부절 못하고 불안해 보이는 모습에서 혹시 테러리스트인가 하는 의구심이 손톱만큼 일어나 의심의 눈초리로 그를 지켜보게 된다.



기내식이 제공될 무렵, 이 모든 의심은 종지부를 찍는다. 채식으로 제공할 거라는 승무원의 간곡한 설명에도 끝내 기내식을 거부한 인도인은 아까 그 커다란 가방 속에서 도시락과 사과를 조심스레 꺼내 맛있게 먹는다. 그는 비행기를 많이 타보지 않았거나 종교적인 이유로 식단이 무척 까다로운 사람일 뿐이었다. 순간적으로 진땀 흘렸던 내 모습이 우습지만, 시절이 하 수상하니 별 걱정을 다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소소한 해프닝은 일단락되고 도하 공항에서 환승할 즈음은 이미 한밤중이 되었다. 시차가 어떻게 바뀌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졸리는 눈을 비비고 일어나 셔틀버스에 올라 두 번째 항공편 게이트를 찾아간다. 환승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는 도하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린다. 돌아가는 여정은 무미건조하게 느껴진다. 경유까지 합해 이번 여행에서 비행기 열네 대를 탔으니 비행기가 버스처럼 느껴지는 것도 과장은 아니다.

짧은 경유시간이 훌쩍 지나고 드디어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한다.

그리고 이륙.

5개월전 떠나온 그곳으로 나 이제 돌아간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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