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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정서 눈도 안마주친 40년 지기
-구속 53일 만에 법정 출석한 朴, 재판장 질문에 “무직입니다”
-최순실, “박 전 대통령께서 법정 나오시게 한 제가 너무 많은 죄인” 울먹여

[헤럴드경제=고도예 기자] “무직입니다”

재판장이 직업을 묻자 박근혜(65) 전 대통령은 또렷한 목소리로 답했다. 40년 지기인 최순실(61) 씨도 피고인석 옆자리를 지켰다. 3시간 재판 내내 두 사람은 눈 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23일 오전 10시 서울법원종합청사 417호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박 전 대통령의 첫 공판 풍경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김세윤) 심리로 열린 자신의 첫 공판에 출석했다. 지난 3월 31일 구속된 뒤 53일 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박 전 대통령은 공판 시작 50여 분 전인 오전 9시 9분께 서울구치소 호송차량에서 내렸다. 구속된 날과 마찬가지로 실핀을 꽂아 고정한 올림머리에 짙은 남색 투피스 차림이었다. 왼쪽 가슴에는 수인번호 503번이 적힌 흰색 배지가 달려있었다. 그는 시선을 바닥에 고정한 채 구속 피고인 대기실로 향했다.

재판장인 김세윤 부장판사가 오전 10시 개정을 알리자 박 전 대통령은 대기실에서 나와 법정 피고인석에 앉았다. 뒤이어 최 씨가 법정에 들어왔지만, 박 전 대통령은 정면만 응시한 채 최 씨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이어 재판장이 생년월일과 직업 등 인적사항을 묻자 박 전 대통령은 “무직입니다”라고 힘주어 답했다.

검찰은 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공소사실을 낭독했다. 박 전 대통령의 혐의가 18개에 달하는 터라 공소사실을 설명하는 데만 50여 분이 걸렸다. 수사를 맡았던 서울중앙지검 이원석 특수1부장과 한웅재 형사8부장이 직접 공소사실을 설명했다. 이 부장검사는 “전직 대통령께서 구속돼 법정에 서는 모습은 불행한 역사의 한 장면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대통령의 위법행위에 대해 사법절차 영역에서 심판이 이뤄지는 등 법치주의 확립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측은 준비절차에서와 마찬가지로 18개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박 전 대통령 측 유영하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재단 설립을 지시한 사실이 없고 범행을 벌일 동기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최 씨와 박 전 대통령이 언제 어떻게 모의했는지 설명이 없다”며 두 사람의 공모관계를 부인했다. 유 변호사는 “특검은 최 씨와 박 전 대통령이 경제공동체였다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최 씨가 삼성동 집을 사줬고 옷값을 대납했으며 관저 인테리어를 도맡았다고 주장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장충동 집을 팔아 삼성동 집을 산 것이고 옷값 전액을 지불했다”고 항변했다.

유 변호사는 반(反)정부 성향으로 분류된 문화예술인들의 명단(블랙리스트)을 만들어 각종 정부지원에서 배제한 혐의를 부인하며 “박 전 대통령이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문화계의 좌편향 단체와 관련해 말씀하셨더라도 그 한마디로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일련의 과정까지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했다. 최 씨 지인이 운영하는 KD코퍼레이션이 현대자동차와 납품계약을 맺도록 도운 혐의에 대해서는 중소기업을 도와줬을 뿐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유 변호사는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을 통해 47건의 대외비 문건을 최 씨에 유출한 혐의는 연설문 표현 문구에 대해 의견을 들어보라 지시했을 뿐 인사 관련 각종 문건을 전달하라 한 적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최 씨는 이날 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을 변호하고 나섰다. 그는 “추가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느냐”는 재판장의 물음에 “40여년 동안 지켜본 박 전 대통령께서 법정에 나오시게 한 제가 너무나 많은 죄인인 것 같다”며 울먹였다. 최 씨는 “박 전 대통령은 뇌물이나 이런 것으로 나라를 움직이거나 각 기업의 그런 걸 했다고 전혀 생각되지 않는다”며 “삼성 합병 등을 들어 뇌물죄로 몰고 가는 것은 검찰의 무리한 행위라고 생각한다”고 언성을 높였다.

이날 재판부는 이미 시작된 최 씨의 ‘삼성 뇌물’ 재판과 박 전 대통령의 재판을 하나로 합쳐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특검과 일반검사가 각각 기소한 사건을 하나로 합쳐(병합) 선고한 사례가 여러 건 있는 점, 두 사건을 합쳐 심리할 경우 똑같은 증인의 진술을 이중으로 들을 필요가 없는 점, 박 전 대통령에게는 사건이 합쳐진 이후 이뤄지는 증거조사만 효력이 있어 방어권도 제한되지 않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또 재판부는 삼성이 재단과 최 씨 독일 법인에 433억원을 특혜지원한 데 대해 직권남용과 뇌물 혐의를 동시에 적용한 검찰 판단이 이중기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오는 25일 박 전 대통령의 2회 공판을 진행하기로 했다. 2회 공판에서는 삼성에게 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 16억 2800만원을 요구해 뇌물로 받은 혐의(제3자뇌물수수ㆍ직권남용ㆍ강요) 혐의로 기소된 장시호(38), 김종(56) 전 문체부 2차관 등의 재판 기록을 증거조사한다.



yea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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