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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육비 받으려면 친자소송 하라고?…그냥 포기할게요”
대부분 상대 연락처·소재지 몰라
분유·기저귀값 감당하기 힘들어
상담건수 536건 중 7건만 완료


서울에서 두살배기 아들을 홀로 키우는 김모(24) 씨. 출산 당시의 기억만 떠올리면 아이에게 미안함이 앞선다. 전 남자친구 사이에서 갑작스럽게 생긴 아이를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족들과 전 남자친구의 심한 반대에 부딪친 김 씨는 출산하자마자 핏덩이 아들을 입양기관에 보냈다. 그러나 아이 생각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는 결국 2주 만에 아들을 데려왔다. 부모님과의 연락도 끊은 채 홀로 아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전 남자친구는 이미 잠적하고 사라진 뒤였다. 김 씨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미혼모 단체의 도움과 기초생활보장수급자 급여 뿐이다.

김 씨는 “아이 분유값과 기저귀값만 해도 감당하기 벅찬데 아이가 몸이 약해 병원 신세도 자주 진다”며 “부족한 경제적인 능력으로 아이를 홀로 키운다는 것이 쉽지않다”며 한숨을 쉬었다.

전 남자친구에게 양육비를 요구할까도 잠시 고민했지만 일찌감치 포기했다.

김 씨는 “아이아빠가 연락을 일방적으로 끊어 그 사람의 소재지나 연락처를 알 수가 없다”며 “양육비를 받을래야 받을 수가 없고 굳이 양육비를 받기 위해 아이아빠와 마주쳐야 하는게 싫어서 포기했다”고 했다. 이어 “그 사람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며 “힘들더라도 내 힘으로 아이를 키울 것”이라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혼 가정 및 한부모 가정의 양육비 지급을 돕는 각종 제도가 만들어졌지만 김 씨처럼 양육비를 포기하는 미혼 가정의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여성가족부 산하의 양육비이행관리원(이하 이행원)에 따르면 지난 2015년부터 지금까지 접수된 양육비 상담 건수만 6만3200여건에 이르고 이 가운데 1700여건의 양육비가 이행됐다. 양육비 금액만 134억여원에 달한다.

양육비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한부모를 위해 설립된 이행원은 당사자간의 양육비 협의를 돕고, 협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양육비 청구소송과 채권 추심을 지원한다.

그러나 이행원에 접수된 미혼 가정의 상담 비율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접수된 9500여건 가운데 미혼 가정의 상담 건수는 536건. 전체의 5.6%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소송이 완료된 사례는 7건에 그쳤다.

미혼 가정의 양육비 상담의 경우, 자녀와 피신청인의 친자확인소송인 인지청구부터 시작한다. 인지청구를 완료해야만 양육비 협의와 양육비청구소송 진행할 수 있다. 그러나 미혼모의 경우 상대방과 연락이 끊긴 경우가 대다수여서 인지청구조차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행원 관계자는 “인지청구를 하려면 상대방의 연락처와 소재를 꼭 알아야 하는데 이를 모르는 미혼 가정이 많다”며 “일부는 상대방에게 양육비를 받기 힘들 것 같다고 단정짓거나 관계가 틀어진 상대방과 연락하기를 꺼려해 처음부터 신청을 포기하기도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미혼 가정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덜기 위해서라도 양육비 이행 과정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최형숙 미혼모협회 인트리 대표는 “인지청구의 첫 단계가 유전자 검사인데, 상대방의 소재를 파악하는 것부터 시간이 걸리고 어렵게 찾아낸 상대방이 이런저런 이유로 유전자 검사부터 미루는 등 소송 과정이 길고 험난한 경우가 많다”며 “그 사이 미혼 가정은 소송 스트레스를 받으며 양육비 없이 아이를 어렵게 키운다”고 했다. 이어 “전 과정이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강제적인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현정 기자/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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