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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後] ‘0원입찰’ ‘경비원 감원’…용역업체만의 문제일까요?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 “이 문자를 받으신 귀하는 저희 에버가드와 2017년 1월 15일 18시부로 근로계약이 만료되었음을 통보합니다. 그동안 고생하신 근로자분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며 귀하의 앞날에 무궁한 안녕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동의 A 아파트에서 근무하는 경비원 7명은 지난 15일 오후 4시께 경비 용역업체인 에버가드로부터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갑작스런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회사가 제시한 3개월 짜리 근로계약서를 거부한 지 두시간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회사 측은 경비원들의 “업무 미비”가 해고사유라고 주장했지만 경비원 측은 “노동 탄압”이라고 맞받아쳤습니다. 언론보도가 나가고 여론이 악화되고 나서야 에버가드는 18일 “예전처럼 경비원들의 1년 짜리 근로계약서에 합의할 예정”이고 “근로자의 편에 서서 이 사안을 해결하기로 했다”며 급히 자세를 낮췄습니다.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동의 A 아파트에 근무하는 경비원 7명이 지난 15일 경비 용역업체인 에버가드로부터 갑작스런 해고 통지를 받았다. 언론보도가 나가자 에버가드는 해고 조치를 철회했지만 아파트 경비원들의 고용불안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지난 17일 경비원 노조가 기자회견을 여는 모습. 이현정 기자/rene@heraldcorp.com

단기근로계약안을 내밀고선 이에 항의하는 경비원을 해고하는 용역업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해 8월에는 서울 도봉구의 한 경비용역업체가 경비원 16명과 3개월짜리 근로계약서를 작성했고, 이중 4명은 재계약을 하지 못해 해고됐습니다.

경비용역업체는 왜 이렇게 단기근로계약안을 가장한 감원에 힘쓸까요?

우선 아파트 입주민대표들이 경비 용역업체를 고른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치열한 입찰 경쟁에서 어떻게든 일감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용역업체들, 그리고 어떻게든 관리비를 절감하려는 입주인대표자들 사이에선 “최저 입찰제”가 그 합의점을 제시해줍니다.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한 업체를 선택하는 것. 인력이 필요한 입장에서는 이것이 이익에 부합하는 가장 합리적인 결정일테죠. 에버가드의 경우, 지난 2014년 말 경비원 1명당 1원 씩 계산해 총 약 70원의 계약금에 A 아파트 경비 일감을 따냈습니다. 추가적인 비용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용역업계에서 이러한 ‘0원 입찰’이 그리 새롭지 않다고 합니다.

힘들게 일감을 얻은 경비 용역업체는 최대의 이윤을 내고자 인건비를 줄입니다. 최소의 임금을 주며 최대의 이윤을 내는 겁니다. 그런데 지난 2014년 A 아파트 입주민의 폭언에 시달리던 50대 경비원이 분신자살한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이듬해부터 최저임금 100% 적용 보장 대상에 경비원을 포함시켰습니다. 합법적으로 임금을 낮추기 어려워진 용역업체는 감원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정부 자료에 따르면, 최저임금의 70%가 적용된 2007년 경비원 고용인원이 전국적으로 7.7% 줄었고, 최저임금이 80%에서 90%로 확대 적용된 2012년에는 10%가 감원됐습니다.

전문가들은 입주민들이 최저 입찰제를 고수하는 한, 용역업체는 인건비 절감에만 집중할 것이고, 이는 곧 경비원의 고용불안과 주민의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전가영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변호사는 “입주민대표들이 용역업체를 고를 때 가격이 가장 낮은 것만 따지다보니 경비원의 부당처우나 부당해고 문제가 계속 되고 있다”며 입주민의 협조와 인식 개선을 통해 가격뿐만 아니라 다른 측면도 고려해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가격을 최우선으로 두면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입주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아파트가 1인당 1개동씩 맡던 경비원을 줄이면서 한 사람당 2개동씩 맡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범죄예방, 제초작업, 택배 보관, 주차 관리 등 다양한 업무를 소화해야하는 경비원들에겐 업무 부담이 가중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이런 업무 부담의 피해는 결국 누가 짊어져야 할까요? 



이런 가운데 몇몇 도시에서는 경비원을 도우려는 자발적인 상생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대전 유성구 아파트 23곳은 경비원의 고용 안정을 위해 경비원을 직접 고용했습니다. 일명 ‘경비원 조례’를 제정하는 곳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지난 2015년 3월 충남 아산시가 아파트 경비원의 고용 유지를 지원하는 조례를 제정했고, 부산의 기장군도 이달초 비슷한 조례안 입법을 예고했습니다. 경비원의 일자리를 유지하거나 창출하는 아파트에 대해서는 경비원 평균 급여의 30%까지 고용 보조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웃의 일자리를 지켜 주자”는 주민의 청원이 계기로 경비원 조례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당장 몇푼을 아끼려다 나를 지켜주는 그분들의 삶에 상처내는 모습. 우리의 자녀들에게 보이고 싶은 부모의 모습은 아닐 겁니다.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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