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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도전의 ‘새출발 독트린’…공정, 균형, 인문학
[헤럴드경제=함영훈기자] 삼봉 정도전(1342~1398)이 만들어 이성계의 이름으로 반포한 1392년 태조 즉위 교서는 조선의 ‘새 출발 독트린’이다. 무력 혁명 세력의 논리도 끼여 있지만, 오늘날 되새겨도 괜찮을 선의의 국가운영 덕목이 적지 않다.

호포(戶布) 감면, 국둔전(國屯田:군수 용도 토지 갹출) 폐지 등 민심 얻기 방안으로부터, 충신ㆍ효자ㆍ의부(義夫)ㆍ절부(節婦) 포상, 즉위식 이전까지 범했던 일반 범죄의 사면 등 오늘날과 비슷한 ‘정치적 은전’도 보인다.

▶드라마 ‘정도전’ 이미지 [헤럴드사진DB]

이런 항목은 후순위이다. 정출헌 부산대(한문학) 교수는 17개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첫째 항목 즉 ‘종묘사직을 바로잡고 고려 왕족을 대우하겠다’는 사회통합 의지와 둘째 항목, ‘과거시험의 개혁’이라고 적시했다.

제2항목의 교서내용은 세부적으로, ▷문과 무과의 균형적 중시, ▷중앙의 국학(國學:성균관)과 지방 향교(鄕校)의 균형적 발전과 고른 인재 육성, ▷좌주(座主)니 문생(門生)을 내세워 공적인 선발을 사적 은혜로 여기던 과거시험의 전면 개편 등을 담고 있다. 새 나라를 함께 다스릴 문무 관료들을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의해 선발하겠다는 정책의 천명이었다.

특히 공정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과거시험의 절차을 밝히고, 출제 범위를 사서오경(四書五經)으로 특정한 점은 눈에 띈다. 당시로서는 불교서적을 제외하고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인문학들이다.

‘인문’을 거론하기에 앞서 잠시 고개를 돌리면, 이 교서의 마지막 항목은 새 나라 건설에 협력하지 않은 자에 대한 처단내용이다. 정도전의 스승이던 이색 등이 서인강등 및 유배를 당했고, 정도전의 절친 도은 이숭인은 곤장 및 유배형을 받았는데 한달뒤 유배지에서 맞아죽었다.

정도전은 이숭인과 정치적으로 갈라지기전 해외출장 가는 도은에게 우정이 담긴 유명한 말을 선물로 건넨다.

‘일월성신(日月星辰)은 하늘의 文(문)이요, 산천초목(山川草木)은 땅의 文이며, 시서예악(詩書禮樂)은 사람의 文이다. 그러나 하늘의 문은 기(氣)로써 되고, 땅의 문은 형(形)으로써 되지만, 사람의 문은 도(道)로써 이룩되는 까닭에, 문을 ’도를 싣는 그릇‘이라 하니, 그것은 인문을 말하는 것이다’ 라는 말을 전한다.

정도전은 도성 사대문의 이름을 인의예지(仁義禮智)에서 한 글자씩 따서 명명했고 한복판에는 보신각(普信閣)을 두어 그 모두가 ‘신뢰(信)’에 근거해야 함을 분명히 했다.

정 교수는 2일 이성계의 즉위교서를 한국고전번역원 고전산문에 소개하면서 “모든 백성을 그런 인문정신으로 거듭나게 만들어 보겠다는 국가 비전은 경이롭기까지 하다”면서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나라의 모습을 매일 목도하고 있는 요즘, 범상하게 읽었던 즉위교서가 새삼 떠올랐다”고 소회를 밝혔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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