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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천으로…1박2일 ‘100만년 시간여행’
임진강과 한탄강 합류지점 동이리 남쪽엔
송도 8경중 하나인 장단석벽 주상절리대
북쪽엔 수평절리대가 한폭의 수묵화 연상

온가족과 동이리·은대리 강변 걷다보면
어느새 ‘연천 100만년’ 상상의 나래가 활짝



연천은 양파 같은 고을이다. 벗겨도 벗겨도 새롭다. 새로운 발견은 또다른 궁금증을 낳는다. 조선의 종묘가 서울 종로3가에 있다면, 고려의 종묘는 연천에 있다. “서양에만 있고, 멍청한 동양에는 없다”면서 서양인들이 수천년 동안 아시아를 깔보는 빌미가 됐던 50만년전 양편가공형 주먹도끼(Acheulean Hand-axe) 즉 ‘첨단 구석기’가 연천에서 발견돼 중국,일본 등 아시아인 전체가 덩달아 환호하며 칭송했던 곳이다. 북으로 가다 끊어진 신탄리역 인근 폐터널 안, 위로 솟는 ‘역(逆)고드름’은 위에서 내려오는 고드름과 언젠가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상상도 흥미롭다. 아직도 소요산역에서 신탄리역을 오가는 비둘기호 완행열차 기적이 울리는 가운데, 연천을 음미하는 여행자는 흥미로운 상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연천에 남아 있는 100만년전 지각변동 흔적과 50만년전 문화재 앞에서, 연천과 인연을 맺은 광개토왕-경순왕-왕건-이성계-2016년 세모(歲暮)의 여행자 사이, 시간 차는 그리 크지 않다.


4세기에 축조된 연천 호로고루(사적 제467호)는 임진강가에 위치한 고구려 성곽으로 이곳에 오르면 고랑포 여울목과 임진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남북쪽은 현무암으로 된 자연의 절벽을 이용하고 동쪽에만 성벽을 쌓은 호로고루성은 고구려 성곽의 특징을 그대로 간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진은 임진강에 위치한 호로고루성 전경.

연천군은 오는 1월7일부터 한달 간 이어질 ‘2017 연천 구석기 겨울여행’ 축제 때, 이 곳을 찾는 여행자 모두 구석기인으로 만들겠다고 벼른다. 이 겨울 연천에서 1박2일 여행한다는 것은 100만년을 사는 것이다.

100만년의 신비부터 들여다 보자. 송도8경 중 하나였던 임진강 장단석벽의 주상절리대는 임진강과 한탄강이 합류하는 동이리 일대에 있다. 지리적으로 한반도 중심인 ‘중부원점’ 바로 옆이다. 통일부는 한반도통일미래센터를 중부원점에 두었다.

동이리에는 높이 40m, 길이 1.5㎞에 달하는 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지난 23일 때마침 눈이 내려 한폭의 수묵담채화를 그린다. 약 100만년전 홍적세 중기 무렵 철원 북쪽에서 분출한 용암은 철원-연천 일대에 넓은 용암대지를 형성했다. 화산활동이 끝난 후 용암대지가 강의 침식을 받게 되자, 현무암이 기둥(柱) 처럼 세로 받향으로 곧게 끊어지는 주상절리가 만들어진다. 90도로 꺾인 절벽에 V자형 조각도를 아래 위로 파낸 듯한 요철(凹凸) 사이로 바람에 흩날리던 눈발이 내려 앉았다 녹기를 반복한다. 제주의 그것 보다는 절리의 크기가 작아 귀엽고, 부스러진 흔적이 보인다.

구석구석 발걸음을 옮겨보았다. 동이리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다 한탄강 초입에서 북쪽으로 꺾어지는 지류, 차탄천 변의 은대리. 이곳 월왕교(橋) 아래 협곡 외벽은 세로 무늬의 주상절리인데, 북쪽으로 가면 갈수록 가로 무늬의 수평절리(판상절리)가 외벽을 장식한다. 동이리와 은대리의 거리는 불과 8㎞.

수평절리는 지상의 무거운 것들에 눌려 수평 구조를 갖던 땅밑 화강암들이다. 그들은 왜 솟아 올랐을까. 이게 전부는 아니었다. 차탄천을 따라 북쪽 통현리 고인돌 공원 방향으로 더 가면, 수평절리이긴 한데 마치 주상절리 처럼 세로로 가지런히 돌탑 같이 쌓인 절벽도 있고, 절벽 상단부는 주상절리인데 하단부는 수평절리인 곳도 보인다. 허, 참…. 차탄천의 절벽은 신비하고 놀랍다.

지상에서 지하로 작용하는 압력 만큼, 지하에서 위로 작용하는 힘이 같을 때 지질은 안정과 균형을 이룬다. 어느 순간 연천에서는 이 상하 간 역학 균형이 깨진다. 철원 화산폭발 이후에도 수차례 용암 분출과 침식ㆍ융기 활동이 벌어지면서, 주상절리가 선점하던 자리에 지하의 수평절리가 솟아오르고, 둘 간의 자리다툼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

수평절리 아래 강물과 맞닿는 지점엔 용암액이 물과 직접 닿아 생기는 거품형 바위 ‘클링커(clinker)’ 군락도 발견되는데, 지속적인 화산 활동으로 연천 일부 지역에서 지상과 지하가 뒤바뀌고 이 클링커 현상이 동반했을지도 모른다.

세미나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60대 할아버지, 30대 아버지, 20대 고모, 초중생 자녀가 동이리와 은대리 강변을 걸으며 ‘연천 100만년’에 대해 상상력의 나래를 펴며 재잘거리는 것은 테마여행의 풍요로운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군남면 선곡리에서 삼곶리에 이르는 연강나룻길은 색다른 구경거리가 반긴다. 연강은 임진강의 옛 명칭이다. 희귀 동식물와 야생 숲이 임진강과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만들어낸다. 전체 길이 16㎞인 이 트레킹길은 ▷여울길(두루미 테마파크→산등성이길 →개안마루:3.1㎞) ▷시간길(개안마루→옥녀봉→현무암 지대→어촌 체험관→돌무지무덤:4.3㎞) ▷통일길(임진강 평화습지원-태풍전망대:8.3㎞) 등으로 쪼개 다닐 수 있다. 여울길의 두루미 테마파크에서는 천연기념물 조류, 수달, 고라니, 어름치 등을 볼 수 있고, 경치가 아름다워 장님이 개안(開眼:눈을 뜸)했다는 개안마루는 겸제 정선의 화폭에 담긴 곳으로 유명하다.

시간길의 중심은 연천 동서남북이 발아래에 펼쳐지는 옥녀봉이다. 여성 이름인데 산꼭대기엔 10m 높이의 벌거벗은 그리팅맨(인사하는 남자) 조각상이 세워져 이채롭다. 신분증을 군에 제출하면 불과 수백m 앞 북한땅을 조망할 수 있는 태풍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



반대편 임진강 평화누리길 11코스는 동이리 주상절리, 당포성, 숭의전까지 이어진다. 숭의전은 고려의 종묘로 태조 왕건을 비롯해 4명의 왕과 16명 충신의 위패를 봉안했다.

두개의 물이 휘감아도는 이곳을 50만년전 조상들 처럼, 소수림왕과 광개토왕, 왕건, 이성계와 세종도 최고의 요충지로 꼽았다. 고려말 우왕은 연천 천도를 도모했다. 이성계 역시 이곳을 조선의 수도로 삼으려 했으나 개경과 불과 100리 거리여서 행여 고려복원 세력들의 공격을 받을까 두려워 한양을 선택했다. 세종은 이곳에서 대신부터 병졸까지 모두 참가하는 연례 군사훈련을 지휘했는데 연천 송절원(松折院)은 세종이 숙식하던 곳이었다.

연천 중심가를 흐르는 물길과 도로가 모두 열 십(十)자를 그리고 한반도의 정중앙이라는 점에서, 서울과 평양의 중간점인 연천을 통일한국의 수도로 삼아야 한다는 김규선 군수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숭의전에서 연천의 서쪽끝 고랑포로 가는 길에는 4세기 고구려 3대성 중의 하나로 남진정책의 거점이던 호로고루성과 경순왕릉이 있다. 호로고루성은 현무암 천연 절벽위 평지에 두 겹 석벽과 흙을 쌓은 뒤, 지하 및 지상 구조물을 조성한 곳이다. 성 아래 휘돌아 가는 임진강과 크고 작은 삼각주, 주변의 아름다운 생태가 발 아래 펼쳐져 ‘성지(聖地)’라는 느낌을 준다.

신라의 마지막왕 경순왕이 고랑포에서 죽고 매장됐음은 18세기에야 확인됐다. 그가 마지막생을 살았던 고랑포는 물길과 육로로 개성, 철원, 포천, 양주, 김포를 이어주던 십자로였다. 80년전 3만명이 살았고, 화신백화점 전국 7개 점포 중 한 곳이 성업할 정도로 번성했지만, 지금은 단 한명도 살지 않는다. 뭔가 아픔이 있었을 것 같은 미스테리이다.

연천은 대충 훑어봐서는 진면목을 알수 없다. 새로운 매력이 여행자의 발을 묶는다. 때론 연민의 정으로, 때론 신비롭고 유쾌한 기분으로.

함영훈 여행선임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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