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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위기의 푸드학 ①]식품 금수 러시아 ‘신토불이’ 바람
-美 오트밀 대신 전통 보리죽 ‘카샤’·고기수프 ‘보르시치’ 다시 찾아…구소련 식문화 접목한 새 메뉴 외식업계 트렌드로



경제환경이 바뀌면 식문화도 바뀐다. 디플레이션 늪에 빠진 일본에서는 최근 저가의 돈부리, 편의점 도시락, 주먹밥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크림합병 이후 경제제재에 직면해야 했던 러시아에서는 이른바 ‘신토불이’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경제 개방 이후 러시아에서는 점심을 두둑히 먹던 문화에서 아침과 점심은 간소하게 먹고 저녁을 든든하게 먹는 습관이 형성됐다. 아침 메뉴도 귀리, 보리, 수수를 이용해 죽을 끓인 카샤(kasha)나 고기 수프를 뜻하는 보르시치(Borsichi)에서 미국산 오트밀을 찾았다. 하지만 2012년 크림 합병 후 러시아의 식탁은 카샤와 보르시치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지난 10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치즈 페스티벌에는 러시아산 치즈를 맛보기 위해 수십만 명이 현장을 찾았다. 러시아 내 외국산 치즈 비중은 2012년 46%에서 2014년부터 적용된 경제 제재로 2015년 20%까지 떨어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러시아 내 치즈 생산량이 증가하고 있다”라며 “두브로보스코예 지방 등의 축산업자들은 금수조치로 판매량이 늘었다고 기뻐했다”라고 전했다. 와인도 마찬가지다. 2015년 프랑스산 와인의 러시아 와인시장 점유율은 51.1% 감소했다. 금수조치로 프랑스 및 영국산 와인을 구매하기 어려워지면서 러시아 기업들이 와인사업에 뛰어든 덕분에 러시아산 와인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가게와 레스토랑 등이 탄생하게 됐다. 러시아의 2위 석유회사 루크오일은 크림반도에 위치한 마산드라 와이너리에 투자하겠다고도 밝혔다.

농산품의 40%를 수입해왔던 러시아의 지난 2분기 수입 농산품의 비중은 22%로 감소했다. 기후 때문에 수입해왔던 야채와 과일의 비율도 각각 40%에서 35%, 90%에서 88%로 하락했다.

하지만 간편하고 음식을 추구하는 외식문화는 바뀌지 않았다. 경기침체로 러시아인의 실질소득이 감소하면서 외식을 하더라도 간편하고 저렴한 음식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구소련 식문화를 접목한 새로운 메뉴들이 외식업계에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크림반도 산 보타르가(생선알을 소금으로 염장 후 건조시킨 식품)와 양파칩, 러시아산 맥주를 파는 레스토랑이 최근 모스크바에서 인기를 끄는가 하면, 러시아의 힙스터(최신유행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소형 러시아산 그릴 바도 인기를 끌고 있다. 러시아산 유기농 식품으로만 운영되는 레스토랑도 등장했다.

하지만 외국산 식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최근 외국산 치즈나 와인 등을 불법거래하는 식당들이 늘었다고 전했다. 모스크바의 고급레스토랑 지하에는 웨이터를 통해 “금지된 치즈들”의 메뉴판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명 러시아 식품매장에는 외국산 치즈를 원하는 소비자들을 위해 불법 영업자들의 전화번호를 적은 종이가 곳곳에서 붙여져 있다. 익명을 요구한 러시아 여성은 텔레그래프에 “프랑스산 블루 치즈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라며 “맛의 차원이 다르다”라고 말했다. 러시아 당국은 지난 8월 외국산 치즈를 불법으로 들여온 밀매업자 6명을 체포하기도 했다.

외국산 식품을 그리워하는 러시아인들의 모습은 외식업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맥도날드와 KFC 등 미국 식품산업을 대표하는 업체들에 제재를 가하겠다고 밝혔지만, KFC와 버거킹, 맥도날드는 지난해 각각 러시아내 100개, 60개, 50개 내외의 신규매장을 확장했다.

문재연 기자/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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