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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희는 시간을 지배한다
자프란스키, 시간에 대한 철학적 접근
지루함·새출발·근심 등 사적인 시간부터
사회화·경제화, 우주와 영원의 시간까지
문학·철학·과학 넘나들며 ‘시간여행’ 안내
“망각은 시간의 종착역” 새로운 해석 눈길




‘끈 이론’으로 유명한 뉴욕대 석좌교수 미치오 카쿠는 시간을 구불구불한 강에 비유한다. 강의 굴곡에 따라 유속이 다르듯 시간도 중력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단지 상대적인 시간이 아니라 물리적 시간도 다르다는 얘기다.

그런가하면 오스트리아 작가 호프만슈탈은 “시간은 기묘한 것이지.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면,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나 돌연 우리는 시간만 느끼네”라고 노래한다.



우리의 존재를 규정하는 시간은 철학, 문학, 물리학 등의 오랜 주제이며 여전히 미스터리이다.

우리에겐 ‘미움받을 용기’로 잘 알려진 세계적인 철학자 아도르노를 사사한 뤼디거 자프란스키 박사는 ‘지루하고도 유쾌한 시간의 철학’(은행나무)에서 시간이란 비밀의 방을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탐험해 나간다. 그의 방식은 시간의 작용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보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시간을 인식하는 때는 무엇보다 지루할 때이다. “지루함은 언제나 일정 시간 단위가 가지는 상대적 공허함 때문에 시간 흐름 자체를 주목할 때 나타난다”고 미국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진단했다. 인간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지루함을 느끼는 유일한 존재다. 고양이는 하루 20시간을 자도 지루해하지 않는다. 인간은 그걸 못견뎌하며 깨기 위해 몸부림친다.

저자는 모든 지루함은 기다림을 포함한다고 말한다. 정확히 무엇을 기대하는지 모르는 채로 말이다. 인간 실존으로서의 그런 공허한 기다림을 그린 게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여행, 이벤트, 영화, 방송, 인터넷 등 현대 산업의 상당부분은 이런 지루함을 깨기 위해 생겨났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출발도 시간을 느끼는 중요한 때이다. 모든 새출발은 변화의 기회를 품는다. 문학은 그런 새출발의 모험을 종종 담아낸다. 프란츠 카프카의 ‘성’은 새출발의 깃발과도 같은 작품이다. 주인공 측량기사 K 는 새 출발을 위해 어떤 성 발치의 마을로 들어선다. 그는 거기서 놀라운 발견의 기회를 얻는다.새출발은 과거의 희생자로 남지 않고 새로운 일을 마주하면서 달라지는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다. 이는 아도르노 철학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새출발에 이를까? 그 한 방법은 망각이다. 저자는 “망각은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새 출발을 도모하는 예술”이라고 말한다.

새로움의 시간이 있다면, 근심의 시간은 동전의 이면이다.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것에 인간은 두려움을 느낀다. 리스크가 많고 정보가 넘치는 현대사회에서 근심의 시간은 갈수록 늘어난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을 예방하는 보험사업이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시간은 또한 사회화와 연결된다. 저자는 “시계의 지배가 시작되는 곳이 사회다. 시계는 다름 아닌 사회제도”라고 말한다. 사회적 약속의 필요에 의해 시계가 생겨났고, 정보통신기술은 멀리 떨어진 공간 사이의 시간 소통을 가능케함으로써 전 지구적 차원에서 동시 체험을 실현시키고 있다.

사회화한 시간은 자연스럽게 경제화하는데 흔히 말하는 ‘시간은 돈’이라는 인식이 바로 그 것이다.



이런 시간들은 어느 정도 인식하고 느낄 수 있지만 우주의 시간은 더 멀고 아득하다. 우주의 시간을 발견하는 일은 쉽지않다. 저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시간이 가지는 수수께끼는 더욱 아리송해졌다”고 말한다.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공간상 멀리 떨어진 점들 사이에 직접적으로 체험되는 동시성이란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을 동시에 굽어보는 고결한 관찰자는 있을 수 있다. 까다로운 동시성이야말로 신의 존재 증명이 된다.

저자는 “인간은 저마다 고유시간에 둘러싸여, 다른 누구와도 이 고유시간을 공유하지 않는다. 다만 같은 순간에 같은 방향으로 동일한 속도로 똑같이 무거운 질량 곁을 운동하며 지나가는 것하고만 인간은 동시성을 갖는다”며, “결국 인간은 자신의 시간 모나드(단자)인 노마드(유목인)다”고 표현한다.

물리적인 시간이 아닌 내적 시간이라는 것도 있다. 현실이 비현실로, 의식이 무의식으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망각은 시간의 종착역이다.

저자의 통찰이 빛나는 지점은 문학의 시간이다. 저자는 이를 ‘유희의 시간’이라고 이름 붙인다.

현실에서 우리는 시간의 지배를 받지만, 유희의 시간에서만큼은 시간을 지배한다. 문학과 그림, 음악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주권을 행사하게 되는 셈이다.

저자는 이 안에서만이 우리가 충만한 시간을 맛볼 수 있으며, 이는 ‘영원의 시식’과도 같다고 말한다. 이 책은 문학과 철학, 사회학, 자연과학 등의 경계를 넘나들며 깊고 풍성한 시간여행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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