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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점·선·면이 만든 자연의 정수…유영국의 ‘자유’를 만나다
-국립현대미술관 유영국 회고전
‘한국추상의 선구자’ 탄생 100주년 기념
절정기때 유화·미공개 작품등 전시

“늘 새로운 시도, 예술가 소임으로 생각”
3원색의 긴장과 균형에서 ‘힘’ 느껴져…
1999년 절필까지 60년간 100여점 망라


“국민학교 때 였을 겁니다. 선생님이 아버지 직업조사를 하시는 날이었는데, 농사지으시는 분, 장사하시는 분, 배타시는 분 이렇게 친구들이 손을 드는데 우리 아버지 직업은 안나오더라고요…선생님이 ‘아버지 뭐하시냐’ 물으니 제가 ‘화가십니다’ 이렇게 답을 했는데, ‘무슨 그림 그리시냐’ 하셔서 ‘모던아트 합니다’ 하니 급우들이 까르르 웃었지요” 화가 유영국의 장남 유진(66ㆍ카이스트 신소재 공학과 명예교수)의 기억이다. 반 친구들이 모던아트를 모르고 놀린다고 하자 아버지는 “그럼 아방가르드 한다고 해라”고 말씀하셨단다. 이때가 1950년대다.

‘한국 추상의 선구자’, ‘작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라는 별칭이 따라다니는 화가 유영국(1916-2002)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회고전이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은 ‘유영국, 절대와 자유’전을 덕수궁관에서 내년 3월 1일까지 개최한다고 밝혔다. 올해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했던 한국의 근대미술 거장 시리즈(변월룡, 이중섭, 유영국)의 마지막 전시다. 이번 전시에는 화가로 첫 발을 내디딘 1937년부터 절필한 1999년까지 60여년간의 작품 100여점을 총 망라해 선보인다.

작가의 최고 절정기로 꼽히는 1960년대 유화작품 30여점을 비롯해 1970년대 이후 일반에 미공개 됐던 작품 10여점도 같이 공개한다. 유영국은 초기부터 추상에 전념했다. 1935년 일본 도쿄 문화학원 미술과에 입학한 이후 비교적 자유로운 학풍에 힘입어 급진적으로 추상미술을 추구했다.

화가의 ‘무기’인 붓을 던져버리고 베니어판과 골판지, 자와 컴퍼스를 활용해 구성적 작업에 열중하기도 했다. 당시 모더니즘이 급격하게 유입됐던 도쿄에서 그는 무라이 미사나리, 하세가와 사부로 등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추상미술 리더들과 교우하며 자신의 예술관을 확립해 나갔다.

그의 작품속에는 점, 선, 면, 형, 색 등 기본적 조형요소가 주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색상도 빨강, 파랑, 노랑 등 기본 3원색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대담한 형태와 색채는 긴장과 대결을 통해 균형감각을 유지하면서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캔버스안의 기하학적 조형은 고향인 울진의 깊은 바다, 산맥, 계곡, 붉은 태양으로 변한다. 사실적 자연의 모습을 담은 것은 아니지만 추상화된 자연은 오히려 더욱 직접적으로 자연의 ‘정수’에 가깝다. 이런 그의 작품은 2010년대에도 소구력을 지닐 정도로 모던하다.

최근 재평가를 받고 있는 이우환보다 나이가 20세이상 많은 이전세대 작가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전시를 기획한 김인혜 학예연구사는 “유영국은 예술가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역할을 해야하고, 구태의연한 발상을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늘 추구했다. 그게 예술가의 역할과 소임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나이 60까지는 형태에 대한 기초공부를 좀 하고” 그 이후에는 자연으로 더 부드럽게 돌아가겠다며, 일종의 조형실험을 계속했던 유영국의 개인적 삶은 그의 그림처럼 일관성있게 평온한 것만은 아니었다.

1943년 태평양전쟁 포화속에서 귀국,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10년간 그림을 그리지 못하기도 했다. 이 기간 어부로, 양조장 주인으로 생활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그러나 생활인으로 유영국의 모습도 화가 유영국처럼 아이디어가 빛났다. 고향 울진에서 양조장을 하면서 소주를 판매했는데 그 소주 이름이 ‘망향(望鄕)’이다. 실향민 어부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술이 됐고, 이것을 바탕으로 모은 자산에 힘입어 나이 40에 서울로 올라오며 본격적 화가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서울에 온 이후로는 신사실파, 모던아트협회, 현대작가초대전, 신상회 등 한국의 가장 전위적 미술단체를 이끌기도 했고, 1964년 첫 개인전을 개최한 후 2002년 타계할때까지 9시부터 6시까지 작업실에서 규칙적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러나 작품만 하면서 행복했던 시기엔 병마가 함께 했다. 1977년 심장박동기를 달았고, 세상 뜨기까지 뇌출혈 8번, 입원만 37번 했다. “10년동안 그림을 그릴 수 없었던 그 시간에 대한 보상을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되뇌었다는게 그의 아내 김기순(96)의 전언이다.

그의 절필작은 붉은 산봉우리가 하늘로 하늘로 뻗어나가는 이미지다. 그렇게도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작가의 마음이 절절하다. 관람료는 덕수궁입장료를 포함해 3000원이다.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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