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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침묵의 살인’ 동반자살 ③] 자살시도자 사후관리, 한국엔 없다
-“처벌에만 주력, 치료통한 예방은 외면” 지적

-자살예방프로젝트 효과 본 핀란드 사례 주목



[헤럴드경제=고도예 기자] 현행법에서는 동반자살을 시도해 살아남은 이를 ‘자살방조죄’로 처벌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치료 명령’은 내려지지 않고 있다. 현행 사법제도가 자살 시도자의 처벌에만 주목할 뿐 치료를 통한 예방은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자살 방조죄로 처벌받거나 풀려나 사회로 돌아온 이들에게 치료 프로그램을 강제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 
현행법에서는 동반자살을 시도해 살아남은 이를 형사처벌대상으로 삼지만, 치료명령은 규정하고 있지 않다. 현행 사법제도가 자살 시도자의 처벌이아닌 치료를 통한 예방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자살예방 문구가 새겨진 마포대교 ‘생명의 다리’.    [사진=헤럴드경제DB]

21일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현재 이들 자살 시도자가 센터나 병원의 상담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경로는 크게 세 가지다. ▷자살 시도로 출동한 경찰이 센터에 심리상담을 의뢰하는 경우 ▷전국의 27개 응급실로 들어온 자살시도자를 병원이 사후 관리하는 경우 ▷본인이나 주변인이 자살예방센터에 심리 상담을 의뢰하는 경우다. 무엇보다 상담이 법으로 강제돼있지 않아 수많은 자살 고위험군 환자들이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선 경찰의 상담 의뢰에는 강제성이 없다. 상담을 의뢰하는 건 철저하게 경찰관 개인의 호의와 재량에 맡겨져 있다. 가령 지난 5월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 피해여성의 보호자는 경찰이 아닌 일선 취재기자의 의뢰로 자살예방센터의 상담을 받게된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수법이 잔혹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지만, 유족에 대한 경찰 측 사후 관리는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강원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박종익 교수는 “경찰이 자살 시도자를 상담의뢰 하는 것은 자의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경찰 입장에서도 이를 강제하는 법이 없어 자살 시도자가 거부할 경우 강제로 센터에 상담을 의뢰할 수 없는 고충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응급실 자살시도자 사후관리 사업은 비교적 성과를 내고 있다. 이는 자살 시도 후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를 지속적으로 상담토록 하는 사업으로 지난 2013년부터 보건복지부의 추진으로 전국 27개 병원에서 시행중이다.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사업이 시행된 뒤 응급실 사후관리를 받은 자살시도자의 사망률(5.9%)은 그렇지 않은 이(14.6%)의 절반 수준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다만 해당 사업을 진행 중인 27개 병원이 아닌 다른 응급실로 환자가 이송될 경우 사후관리를 보장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서울대학교 정신과 안용민 교수(전 자살예방협회장)는 “전국의 응급실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돼있지는 않다”며 “병원 측에서 사업을 진행중인 27개 병원으로 환자를 옮기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사후관리를 받지 못한 자살 시도자들은 자살의 유혹을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2013년 보건복지부가 전국 17개 병원 응급실을 방문한 자살시도자의 실태를 조사한 결과, 자살시도자 중 과거 자살을 시도했던 이의 비율은 31.8%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한 사람의 자살을 개인의 비극으로만 치부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판단도 가능해 보인다. 앞서 WTO는 한 사람의 자살이 최소 5~6인의 주변인들에게 우울감, 자살충동 등을 심어줄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전문가들은 법원이 자살시도자들에게 치료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각종 제도와 법을 손질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자살방조자들에 대한 현행법 체계가 ‘처벌’에서 ‘치료’로 선회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박형민ㆍ이은주 연구원은 논문에서 “현재 가정폭력사범에 적용되는 것처럼 상담받는 것을 조건으로 기소유예하거나, 성폭력 치료강의 수강명령처럼 자살 미수자에게도 자살예방 수강명령을 내릴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야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더해 강원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박종익 교수는 “이같은 내용을 입법함과 동시에 현재 선언적인 내용으로 이뤄진 자살예방법을 대폭 손질해야 한다”고 했다.

이구상 서울시자살예방센터 부센터장도 “자살 고위험자에 대해 법원이 치료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와 법무부가 협력해야 한다”며 “중앙부처가 협력해야 각 지역 간 서비스의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이미 자살 예방 대책을 시행해온 해외의 사례도 곱씹어볼 만 하다. 일본은 지난 2005년부터 자국 내 19개 병원에 내원한 자살시도자에 대해 사후 관리를 하고 있다. 주기적으로 자살시도자를 면담하고 진료하며, 치료를 권유하는 방식이다. 이밖에 일본은 2006년 자살대책기본법을 제정하고 매년 자살예방에 수천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그 결과 일본의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005년 22.1명에서 2013년 18.7명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과거 세계 자살률 1~2위로 손꼽히던 핀란드는 1987년부터 10년 간 국가 주도 아래 ‘자살예방프로젝트’를 시행했다. 자살자 전원에 대해 유가족 면담과 경찰 수사기록, 의료정보를 바탕으로 이른바 ’심리적 부검‘을 시행했다. 이 결과를 토대로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대대적 자살예방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인구 10만 명당 30.3명에 달했던 핀란드의 자살률은 시행 20여년 만인 지난 2012년에 이르러 절반 가까이로 대폭 떨어졌다.

yea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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