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침묵의 살인’ 동반자살 ②] 혼자 살아남았더라도, 자살방조죄
-최근 10년 동반자살 시도자 1100명…작년 163명

-생존시 자살방조죄 처벌…자살 재시도 위험 높아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나…예방교육없이 방치


[헤럴드경제=김현일ㆍ고도예 기자] #. ‘함께 떠날 분 연락 주세요. 제 카톡은…’.

사업실패로 빚에 시달렸던 A(37) 씨는 인터넷 블로그로 함께 자살할 사람들을 찾았다. 10대부터 30대까지 세 명의 남성이 A 씨에게 연락을 해왔다. 각자 학업과 이성교제 문제 등으로 삶을 비관하던 이들이었다. A 씨는 이들과 함께 강원도의 한 민박집에서 미리 준비한 연탄을 피워 동반자살을 시도했다. A 씨와 함께 온 세 남성은 결국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다. 신음하던 A 씨는 민박집 주인의 신고로 병원에 후송됐다. 병원 치료로 홀로 목숨을 건진 A 씨 앞에 기다리고 있는 건 경찰 조사였다. 경찰은 세 남성의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A 씨를 재판에 넘겼다. 결국 A 씨는 자살방조죄가 인정돼 올 3월 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사진=자살이 한국사회에서 두통거리가 돼 온 것은 사실이지만, 요즘엔 나아가 동반자살이라는 새로운 사회문제에 직면해 있다. 사진은 관련 이미지.]

‘자살율 세계 1위’라는 오명에서 수년째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최근 ‘동반자살’이라는 새로운 사회 문제에 직면해 있다. 가족 간 동반자살 뿐만 아니라 인터넷으로 만난 사람들끼리 함께 목숨을 끊는 ‘인터넷 동반자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5일 경남 통영에서 서로 모르는 사이인 남성 4명이 숨진 채 발견된 데 이어 같은 달 28일 경기도 안산에서도 남녀 4명이 함께 목숨을 끊었다. 이달 5일에도 전남 광양의 한 펜션에서 20∼30대 남녀 4명이 동반자살하는 등 유사 사고는 계속되고 있다.

경북대 수사과학대학원 이호산 씨가 2006∼2015년 경찰청 과학적범죄분석시스템(SCAS) 자료를 토대로 분석 발표한 ‘국내 동반자살 최근 10년간 동향’ 석사과정 학위논문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1186명(생존자 포함)이 동반자살을 시도했다. 2006년 35명이었던 동반자살 시도자 숫자는 2009년 137명으로 전년보다 2배 가까이 급증했고, 지난해 163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연간 평균 총 자살자가 1만4000여명인 점을 고려할 때 1%는 동반자살을 선택한 셈이다.

이 중 동반자살을 시도했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은 이에게는 자살방조죄가 적용돼 법적 처벌이 내려진다. 형법 제252조 2항은 ‘사람을 교사 또는 방조해 자살하게 하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진=자살이 한국사회에서 두통거리가 돼 온 것은 사실이지만, 요즘엔 나아가 동반자살이라는 새로운 사회문제에 직면해 있다. 사진은 관련 이미지.]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대검찰청 자료를 분석해 발표한 ‘한국의 자살 발생의 사회적 요인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2004~2013년 발생한 자살방조 사건 137건 중 약 40%는 동반자살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검거 경위를 보면 병원 치료 후 체포된 경우가 45건(33.1%)으로 가장 많았다. 이는 동반자살 시도 후 살아남아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혹은 퇴원 직후에 체포된 사례가 많았음을 보여준다. 현행범 체포도 10건(7.4%)을 기록했는데 동반자살을 시도한 장소에서 살아남아 머물러 있다가 검거된 경우다.

이들이 재판에 넘겨져 유죄를 선고받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다. 대부분 집행유예나 1년 미만의 징역형을 받고 풀려나 또다시 자살을 시도할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형사정책연구원의 분석 결과 집행유예가 57.7%로 가장 많았고, 징역형이 40.4%를 차지했다. 징역형의 경우 7~12개월 미만이 24건(48.0%), 13~18개월 미만이 12건(24.0%)으로 전체의 70% 이상이 1년6개월에 못미쳤다. 드물게 보호관찰이나 사회봉사 명령이 함께 선고된 사례도 있었지만 사법기관이 처벌에만 집중할 뿐 궁극적으로 자살예방을 위한 노력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 처리단계에서도 ‘혐의 없음’으로 처리된 사건이 24.8%, 기소유예 처분된 사건은 10.9%로 나타났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형민 박사는 “동반자살을 시도했다 살아남은 사람은 또다시 자살시도할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군이다. 집행유예와 함께 자살 예방을 위한 수강명령을 선고할 필요가 있다”며 “대부분 별다른 조치 없이 석방되거나 방치되는 현실은 심각하게 검토돼야 한다”고 했다.

joz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