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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르미…’ 제작진에, 웃자고 거는 딴지
[헤럴드경제=함영훈 선임기자] 웃자고 만든 ‘멜로 사극’에 죽자고 토론하자는 건 아니다.

행여 있을지도 모를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해 유발’ 가능성을 피해 ‘구르미 그린 달빛’ 제작진들은 전직 내관 출신인 홍라온(김유정)과 임금 이영(박보검)을 혼인시키지는 않았다.

막판 키스신이 있었지만, 온 세상 여인이 다 내것이라고 여길 조선시대 임금이 충분히 할 수 있는 행위라, 키스신 갖고 ‘나중에 둘이 결혼해 잘 먹고 잘 살았을 거야’라고 예단할 논거는 못된다.

결혼이 해피엔딩의 대표적인 풍경으로 기능한 것은 30년쯤 된 컨셉트라 지금의 제작진이 탐낼 이유도 없다.

세자빈(채수빈)에 대해서는 “간택했던 것 없던 일로 하겠다”는 선왕의 지침이 있었기에, 이영은 사상 초유의 총각 임금이 되는데, 이 점은 아무리 창작 멜로사극이라하더라도, 좀 과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간택을 없던 일로 하는 것도 창작의 범위를 넘어 예조의 예규를 ‘창조’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겠다.

차라리 선왕의 승하, 움직일수 없는 왕위 승계의 암시 정도로 끝냈더라면 ‘비상식’이라는 일말의 지적도 없었을텐데 말이다.

방송 담당 기자가 아니라, 문화재, 역사 유적, 지역의 문화인류학을 취재하는 문화관광 담당, 즉 ‘문외한’이라서, 영상미 넘치는 창작 멜로 컨셉트의 사극에 흐뭇한 미소 가득한 딴지를 건다고 이해하기 바란다.

하도 시끄러운 세파속에, 정조를 70%, 광해를 30% 닮은 이영이 부패근절과 위민정치 체제 확립에 성공한 것은 국민 속을 후련하게 했을 것이다. 다만 역사적 실존인물 이름를 사용함으로써 일부 ‘아재’ 시청자와 수능 필수과목이 된 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을 헷갈리게 한 다소의 책임은 제작진이 져야 한다.

사극은 크게 세 종류가 있다.

실록에 엄연히 나오는 인물에 대한 평가가 반영된 것, 야사나 향토사학의 개연성 있는 스토리에 추가적 고증을 반영해 정사의 반열로 끌어올리려 시도하는 것, 아예 이런 저런 요소들을 모두 끌어모아 재미있고도 공익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창작물 등이다.

영조의 어머니 숙빈최씨, 신라의 선덕여왕을 그리는 드라마가 각각 서너편씩 있었는데, ‘사실(史實)’이므로 사학자를 뛰어넘는 제작진의 고증이 필요하다. 사소한 왜곡이라도 발견되면 엄청난 비난을 감수하는게 마땅하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 영화 ‘왕의 남자’는 각각 향토사학의 개연성 있는 구전 스토리와 실록에 한 줄 걸쳐진 것을 토대로 고증과 상상력을 발동한 작품들이다. 의미있는 아젠다의 설정이었다. 이런 드라마는 역사 발굴-창작-왜곡 논란을 야기해도 괜찮다. 모르던 과거를 재생하는데 밀알이 되기 때문이다.

창작의 영역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세번째 장르는 철저히 실존인물을 배제해야 한다. 다만 어디서 본 듯한 설정이 많은 것은 상관없다. 이 세상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지고지순한 ‘순수’ 창작물은 없다.

일부 젊은 재벌의 빗나간 행태를 그린 영화 ‘베테랑’이 대표적이다. 베테랑에 나오는 장면들은 가해자만 서로 달랐을 뿐 실제 있었던 과거 여러 사건들을 유아인이 도맡아 저지리는 것으로 처리됐다. ‘구르미…’도 이랬어야 했다. 역사적 인물의 이름 등 구체적인 팩트를 배제한채, 개연성 있는 스토리의 조합으로 창작함으로써 국민에게 카타르시스와 행복의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이다.

‘구르미…’ 잘 만들었다. 다만, 사극의 제작진은 사학자 이상의 도덕성과 취재력, 합리적 상상력과 시청자 감정정화 능력을 겸비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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