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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카페]성형, 다이어트 외모지상주의 이면의 진실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한때 스튜어디스는 아름다운 여성의 대명사로 불렸다. 자연스러운 미소, 얼굴과 몸매의 균형미는 표준화가 돼 있다고 할 누가 봐도 아름답다고 여긴다.

고된 노동을 필요로 하는 스튜어디스란 직업에 왜 굳이 아름다운 몸이 필요한 것일까.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김영사)에서 나오미 울프는 “아름다움은 현대 서구사회에서 남성의 지배를 공고하게 만드는 마지막 신념체계”라고 말한다.



이는 집안 일만 담당하던 여성들이 대거 사회에 진출하면서 수많은 남성들이 자리를 잃을 위험에 처하자 ‘직업에 필요한 아름다움이라는 자격 조건’을 만들어 여성에 대한 고용차별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삼았다는 얘기다.

최근 국내외에서 페미니즘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는 시점에서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는 이런 현상의 맨 앞에 놓인다.

페미니즘의 역사에서 나오미 울프의 이 책은 제3물결이 막 시작되던 시기에 나왔다. 1920년대 여성의 참정권 쟁취를 위한 제1의 물결에 이어 6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제2의 물결은 1980년대까지 사회적 차별 대우 해결을 요구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미국의 베티 프리단은 이 시기 대표적인 페미니즘 이론가로 1963년에 펴낸 ‘여성의 신비’는 ‘페미니즘 경전’에 해당한다. 제3의 물결은 1990년대 초에 시작돼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백인 이외의 여성과 동성애 문제 등으로 관심의 폭이 확대되는데, 이를 선도하는 대표적인 이론가가 나오미 울프다. ‘무엇이 아름다움을강요하는가’는 나오미가 예일대를 졸업하고 옥스포드대 뉴칼리지에서 로즈 스칼라 장학생으로 대학원과정을 마친 뒤 출간한 첫 번째 저서로, 단숨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나오미는 2002년 개정판에서 ‘들어가는 말’을 통해 책이 처음 나온 1991년에만 해도 “아름다움의 이상형에 도전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아주 이단시했고, 그 이상형 또한 아주 엄격했다”며, “전반적으로 아름다움의 이상형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여성답지도 미국인답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그의 말을 감안할 때, 당시 이 책이 사회에 준 충격은 짐작할 만하다. 아름다움을 이용하는 정치적ㆍ상업적 음모, ‘흠 없는 미인’이라는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정신적ㆍ신체적으로 파괴돼 가는 여성의 실상을 낱낱이 파헤친 이 책의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저자는 우선 여성의 아름다움이 보편적이거나 불변인 것처럼 말하는 것을 부정한다. 마치 여성의 아름다움의 논리가 플라톤의 이데아에서 나온 척하지만 아름다움의 기준은 역사적으로 지역마다 달랐고 진화론의 자연선택과도 무관함을 보여준다. 과거 모계 중심 종교에서 나타나는 현상도 이를 뒷받침한다. 과거 모든 문화에서 여신은 애인이 많았으며, “나이 많은 여성과 아름답지만 쓰고 버려도 좋은 젊은이의 결합이 뚜렷한 패턴을 이룬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어 성차별 문제를 정치적ㆍ경제적 속성과 연결시켜 왜 여성이 ‘아름다움의 신화’라는 사회적 덫에 빠져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밖에 없는지 그 매커니즘을 추적, 고발한다.

한 예로, 1972년 뉴욕주 인권항소위원회에서는 ‘아름다움’이 여성에게 합법적으로 일자리를 얻게 할 수도 잃게 할 수도 있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세인트 크로스 대 뉴욕 플레이보이 클럽사건’에서 사람들 눈에 띄도록 되어 있는 직업에서는 ‘아름다움’이 고용에 진정으로 필요한 자격 조건이란 결정을 내린 것이다.

당시 마가리타 세인트 크로스는 플레이보이 클럽 웨이트리스로 일하다가 “바니걸 이미지를 상실했다는 이유로”해고 당하자 소송했지만 위원회는 여성의 아름다움은 여성본인보다 고용주가 말하는 것이 훨씬 믿을 만하다고 가정해 플레이보이 클럽에 그런 평가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충분하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은 계속 반향을 일으켰으며, 일을 잘하려면 아름다워야 한다는 발상이 일반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책은 여성 영웅의 모순된 이미지를 비롯, 거식증, 온갖 수술도구로 몸을 학대하는 현실을 적시하고 그 이면의 음험한 계산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책이 나온지 25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아름다움의 신화는 어떻게 됐을까. 많은 변화와 새로운 변형이 생겼다. 여성의 몸에 대한 인식은 크게 변한게 사실이다. 빼빼 마른 몸이 예쁘지도 건강하지도 않고, 엑스트라 사이즈의 여성도 매력적이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하지만 여전히 이상형은 연예인을 통해 재생산되고 더욱 가혹해지고 있다. 놀라운 것은 여성의 전유물로서 여성을 제재하는 수단이었던 아름다움의 신화가 이제 남성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성의 미용수술은 여성 못지않고 섭식장애 역시 적잖다.

미용산업은 자기 혐오를 토양으로 자라는데 최근 남성의 자기혐오가 새로운 미용산업의 타겟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양성이 모두 상품화의 대상이 됐으니 양성평등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을까? 저자는 “그것은 진보라도 양날의 칼을 지닌 진보일 뿐”이라고 말한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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