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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124. 카사블랑카, 하얀 집들의 도시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여행을 준비하면서 모로코의 수도가 카사블랑카(Casablanca)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카사블랑카는 모로코 최대 도시이자 산업의 중심지이지만 정작 이 나라의 수도는 라바트(Rabat)다. 그만큼 모로코에 대해서는 무지했었다.

호텔에서 나와 메디나로 가는 길목은 마라케시나 에싸위라에서 보던 풍경이 아니다. 유럽과 다름없이 건물들이 우뚝우뚝 솟아있고 세련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예전 모습이 보존된 일종의 구시가인 메디나는 이 넓은 도시에서는 장신구처럼 앙증맞게 느껴진다. 메디나가 잘 보존된 모로코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카사블랑카의 메디나는 규모도 작다. 


현대적인 거리를 걸어 메디나 입구로 간다. 성벽의 둥근 문을 넘어서면 세상이 달라진다. 메디나 바깥은 21세기이고 안쪽은 17세기쯤 되는 풍경이랄까? 그러나 마라케시나 에싸위라에서 메디나에 머물면서 이미 그 모습을 알고 와서인지 커다란 감흥은 일어나지 않는다. 모로코의 특산품인 가죽제품을 늘어놓고 파는 가게들이 많다. 여태 모로코 여행을 하며 봐 왔듯 여러 가지 물건들을 파는 상인들의 골목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있다.



릭의 카페(Rick‘s Cafe)에 이른다. 카사블랑카라는 도시는 1949년 제작된 영화 ’카사블랑카‘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영화는 카사블랑카에서 단 한 컷도 찍지 않았다고 한다. 영화의 남자 주인공 릭(Rick)이 카페를 운영하는 데서 영감을 얻어 영화의 분위기를 살린 카페일 뿐이다. 나에게 카사블랑카는 ’As time goes by‘라는 유명한 삽입곡보다는, 영화의 감동을 노래한 버티히긴스의 ’Casablanca‘의 애잔하고 허스키한 음색으로 각인되어 있다. 오히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 대표인 윈스턴 처칠과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비밀 회담을 한 곳이 카사블랑카라는 것이다.



카사블랑카로 입국하는 사람들은 바쁘게 당일치기로 둘러보고 다른 도시로 간다더니 오늘은 여행자를 실은 비행기도 오지 않은 모양이다. 여행자가 많지는 않다. 릭스 카페 앞에서 서성대다가 나처럼 그냥 발길을 돌리는 서양인 가족이 있어서 먼발치로 그들을 따라간다. 나와 같은 목적지를 향해 걷는 것이 확실하다.

그렇게 메디나의 골목을 지나 카사블랑카에 오면 꼭 가야 하는 곳, 하산 2세 모스크를 향해 간다. 근처에 군부대라도 있는 것인지 군인들이 정복을 입고 근무하고 있다. 그러다 “Ecloe Royale Navale”이라는 표지를 만난다. ‘왕립 해군학교’정도 되려나?


건너편 골목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거리를 오가는 근엄해 보이는 군인들과는 달리, 오래된 골목 안의 빨래와 작은 가게 사이를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편안해 보인다. 골목과 빨래, 평범한 사람들 이런 풍경을 바라보는 마음은 언제나 편안해서 좋다.

카사블랑카에서 딱 한 가지만 봐야 한다면 이것이면 된다는, 그 명성만큼이나 웅장한 하산 2세 모스크가 위용을 드러낸다. 카사블랑카의 서쪽 끝 대서양 해안을 매립하여 건축했다고 한다.


이 모스크는 실내에만 2만5000명, 광장까지 10만 명이 동시에 기도할 수 있는 사원이다. 모스크는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알하람 모스크‘, 메디나의 ’예언자 모스크‘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사원이고 미나렛(Minaret)은 210m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여행지에서 들르는 곳은 대부분 수천 년, 수백 년 전 유적지인데 비해 이곳은 현대 기념물인 것이 이채롭다. 1990년대 초에 완공한 건물이라고 하니 그리 오래된 유적도 아니다. 국민성금으로 지었다는 이곳의 이름이 ’국민 모스크‘가 아니고 ’하산 2세 모스크‘인 것은 유감이다. 아직도 왕정인 모로코의 정치현실이 다분히 느껴지는 대목이다. 



하산 2세 모스크에서 바라보면 멀리 카사블랑카 등대가 보인다. 카사블랑카 등대를 향해 가다가 돌아보면 하산 2세 모스크가 그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다. 등대와 모스크를 잇는 해변은 모로코 사람들 몇 명뿐, 쓸쓸하기도 하다. 아마 등대 쪽에서 바라보면 물 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것이 이 매립지의 끝에 세원을 세운 이유라고도 한다. 



이어지는 해변을 따라 대도시의 높은 건물들도 이어진다. 메디나를 제외하면 이 거대한 도시의 풍경은 다분히 현대적이다. 카사블랑카가 모로코의 경제수도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구시가인 메디나가 그대로 보존된 다른 모로코 지역과는 다르다. 신시가는 스페인이나 프랑스 어느 도시의 풍경이나 다름이 없다.

높은 빌딩 사이로 차로 가득한 거리를 걷는다. 남들은 스쳐 지나간다는 카사블랑카에서 이틀이나 머물기 때문에 시간이 많다. 하산 2세 모스크를 보았으니 오늘 다른 도시로 출발해도 되지만 여유를 부려보기로 했다. 호텔 싱글룸에서의 편안한 잠자리에서 하루를 더 머물 것이다. 



오전에서 오후로 넘어가는 햇살이 따갑다. 대형 쇼핑센터인 트윈타워로 가서 고작 마트에 들어가 생필품들을 산다. 트윈타워 부근이 번화가라는데 비어있는 매장도 많다. 부득이하게 모로코에서 이 도시 한 군데만 방문하게 되었다면 모를까, 카사블랑카는 관광지로서의 매력은 없는 도시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개발된 도시라 프랑스식의 노천카페가 많은 정도다. 세계 어디에 가도 볼 수 있는 대도시 풍경에는 감각이 반응하지 않는다. 생필품을 사고 시가지 구경도 했으니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카사블랑카(Casablabca)는 ‘하얀(Blanco) 집(Casa)’이라는 뜻이다. 남는 오후는 론니플래닛이 추천하는 워킹 투어를 따라가 본다. 카사블랑카의 유래가 된 유서 깊은 건물들을 찾아가 보는 것이다.

새하얀 대성당(Cathedrale du Sacre Coeur)에서 투어를 시작한다. 국민의 99퍼센트가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에서 이런 성당이 있다는 게 놀랍지만 이것은 1930년대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것이다. 지금은 학교, 영화관, 문화센터 등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성당 앞 계단에 앉아 햇살을 피한다. 남학생들이 공을 가지고 놀면서 여행자를 힐끗거린다. 선명하게 맑은 오늘, 하얀 대성당 앞에서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이 마음속의 사진으로 각인된다. 파란 하늘 아래 잔잔한 하루가 강물처럼 흘러가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도착한 모하메드 5세 광장(Place Mohammed V)이다. 모함메드 5세는 스페인과 프랑스에 분할 점령되던 모로코를 독립시킨 왕이라서 모로코인들의 절대적인 추앙을 받는다고 한다. 카사블랑카의 공항 이름도 모하메드 5세 공항이다. 광장 뒤편의 법정(Palais de justice) 앞을 에 바삐 오가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분주하고 심각해 보인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비둘기들이 광장을 점령하고 있다. 어디를 가도 광장이야 비둘기들의 놀이터이긴 하지만 이렇게 징그러울 만큼 많은 비둘기 군단은 모하메드 5세 광장에서 처음 본다. 앞으로 웬만한 비둘기 떼에는 놀라지 않을 것 같다. 비둘기에 신이 난 것은 아이들뿐이다.



예쁘고 현대적인 트램이 수시로 다니는 깨끗한 거리는, 이곳이 리스본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만큼 유럽적(?)인 풍경이다. 골목마다 주차된 차들 사이를 헤집고 지나가다 보면 이곳이 모로코라는 것마저 잊게 된다.

거리에서는 프랑스풍이 가미된 모레스크(mauresque :무어식) 건축물과 당시의 모로코 전통 스타일이 살아있는 건물들을 만날 수 있다. 이 건물들은 1930년대의 건축물이 재건축되거나 보존된 것이다. 모로코의 섬세한 타일이 남아 있기도 하고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기도 한 아름다운 건물들을 보며 걷게 된다. 지금도 사용되는 이 건물들은 은행이나 관공서, 우체국, 호텔, 극장 등 다양하다.



카사블랑카에 들를 것인지 고민했는데 오길 잘했다. 1980년대에 완공된 하산 2세 모스크에서 현대의 모로코를 보게 되었고 센트럴 지구에 남아있는 1930년대 풍의 하얀 건물들만 돌아다녀도 식민지였던 모로코의 근대 역사도 알게 된다. 메디나와 사하라의 이미지로 여행자를 부르는 나라이지만, 유럽과 아프리카를 잇는 모로코의 위치와 그 문화가 혼재된 모로코의 단면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지금까지는 카사블랑카 하면 영화 ’카사블랑카‘만이 떠올랐지만 이제는 그릴 수 있는 풍경들이 너무 많아졌음에 감사한다. 모로코에서 낯선 대도시를 방황하는 일을 상상하지 못했지만, 이런 발걸음도 괜찮다. 마라케시, 에싸위라에 이어 카사블랑카까지, 모로코의 다양한 얼굴과 마주하고 있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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