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정조 독살 논란 부른 ‘격식 파괴’ 정치편지 보물 된다
[헤럴드경제=함영훈기자] 정조는 왕권이 약화되고 신권(臣權)이 강해진 때인 1776년 보위에 오른 뒤, 정국을 쥐락펴락 하는 노론 정권의 전횡에 밀려 자신의 의지를 제대로 펴보지 못하다 임금이 된지 15년가량 지난 뒤에야 실오라기 같은 정치 네트워크를 얻는다. 바로 노론 벽파이다.

정조는 자신이 등극한 직후 중용한 신진관료로부터 실시간 국정 자문을 얻으면서도, 노론 벽파의 수장 격인 좌의정 심환지와 ‘격식파괴’ 편지 정치를 진행했던 것이다. 베테랑과 소장파, 보수파와 개혁파 간 균형의 정치를 실행하려는 시도였다.

정조와 심환지 간 300통에 달하는 편지는 ‘정조 어찰첩(正祖 御札牒)’이다. 정조가 1796~1800년까지 4년간 좌의정 등 고위직을 역임한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로 날짜순 6첩으로 나뉘어 묶여 있다. 날짜는 심환지가 기록했다.

 
[사진= 정조어찰첩]

당시의 정치상황을 엿볼 수 있는 이 편지는 일반적인 어찰의 격식과는 달리 생활 문체를 쓰거나 한글과 이두식 표현, 속담과 구어 등을 구사해 눈길을 끈다. 마치 벤처기업 사장이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에 대응해 신속한 의사결정을 하려고 이메일 의견수렴 및 결재를 벌이는 것과 비슷한 느낌도 준다.

이 편지 헤제본이 7~8년전 성균관대 출판부에서 발간된 이후 정조 독살설 진위 논란이 퍼진 바 있다.

속내야 어찌 됐건 반대 정파의 중심 인물과 의견 교환을 지속적으로 벌였다는 점, 벽파계가 국왕을 지지하는 내용이 편지에 포함돼 있는 점, 정조 사망전 서찰 중 자신의 병세를 언급한 대목이 있는 점 등 때문에 일부 사학자들이 “독살이 아니다”는 주장을 폈던 것이다.
[사진= 부산 복천동에서 출토된 신라 금동관]

하지만 상당수 사학자들은 “요절한 정조의 독에 의한 피살설을 뒤집을 만한 직ㆍ간접 정황은 없다”며 다시 이같은 병사(病死)설을 일축하기도 했다.

미스테리 ‘정조 어찰첩’이 국가 보물로 지정예고됐다. 늦은 감은 있지만, 다행이라는 평가이다.

문화재청은 30일 정조 어찰첩과 정유재란 이후 나타난 삼불형식의 전형인 고창 문수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등 9건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경국대전의 모체가 된, ‘신권(臣權)의 원조’ 정도전의 조선경국전, 석굴암 본존불 등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의 양식 계통을 따른 봉화 청량사 건칠약사여래좌상 및 복장유물(奉化 淸凉寺 乾漆藥師如來坐像 및 腹藏遺物), 경주가 아닌 곳의 신라 고분 중 하나인 양산 금조총 출토 유물 일괄(梁山 金鳥塚 出土 遺物 一括), 경주와 거리가 좀 떨어진 부산 복천동에서 출토된 신라 금동관(釜山 福泉洞 出土 金銅冠), 세조의 장자인 의경왕 명복을 비는 묘법연화경 등이 보물 예고 문화재에 포함돼 있다.
[사진= 양산 금조총 출토된 금제 유물]
[사진= 고창 문수사 시왕상]

abc@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