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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123. 길 위의 상념…낯선 대도시 카사블랑카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아침을 먹으러 일층에 내려갔더니 나 말고 손님이 더 있다. 프랑스에서 여행 왔다는 모녀다. 어머니가 모로코인이라 딸이 모시고 모로코로 여행을 왔다고 한다. 나이 지긋한 어머니가 오랜만의 모로코 여행을 흡족해한다고 딸도 좋아한다. 여행 이야기를 나누다가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게 무슨 소사이어티 이름이냐고 되묻는다. 서구인이라고 다들 까미노를 아는 것은 아니었다. 설명을 해주며 아침을 먹는다. 리야드에서 가족적으로 먹는 식사가 이런 맛이구나 싶다. 아침식사 같이 먹는 사람을 만난 것으로도 외로움이 덜어진다. 


에싸위라에 더 머물고 싶지는 않아서 식사 후 짐을 챙긴다. 체크아웃하고 숙박비를 지불하면서 리야드의 주인에게 필요한 것들을 묻는다.
“버스터미널까지 걸으면 시간은 얼마나 걸리고 택시비는 얼마인가요?”
“걸으면 20분은 걸릴 테니 택시 타요. 근데 택시기사가 미터를 안 켜고 요금을 많이 받으려 할 겁니다. 그러면 그냥 7디람만 주세요. 그것으로 충분해요. 난 모로코인들이 정직하지 않게 돈을 버는 게 싫어요.”
모로코에서는 택시 기사들에게 너무 시달려서 그 말이 고맙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럴 수 있을까?
친절한 리야드 주인에게 작별을 고하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메디나의 골목을 걸어 택시를 타러 간다. 여전히 기사들은 미터기를 켜지 않는다. 리야드 주인이 알려준 기본 택시비 7디람으로는 아무도 터미널에 가려하지 않는다. 이제는 택시기사와의 흥정이 점점 피곤해진다. 비를 맞고 걸어갈 수도 없어서 20디람을 주고 택시를 탄다. 현지인이 말해준 적정 가격이 여행자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버스가 도착한다. 차창 밖 풍경들을 바라보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이제 여행은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길 위의 날들은 익숙해졌으며 판단하고 실행하는 단계는 신속해졌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자유,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을 자유 모두를 누릴 수 있는 여행을 즐기고 있다.
문득, 이 여행을 시작하고 나서는 마음속에 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동안 나는 누구에게 그렇게 화를 냈을까? 그것은 마음을 몰라주는 사람들이기도 했고 복잡다단한 이 사회의 현상들이기도 했었다. 길 위에서 떠오르는 사람들은 그리움이 되었고 세상 돌아가는 일은 이미 관심 밖이 된 지 오래다. 여행이 지속되면서 초심자의 생동감은 많이 사라졌지만 마음속에는 작은 평화가 자리 잡았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하루살이처럼 살면서도, 그런 하루를 살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어제 에싸위라에서의 쓸쓸함도 애써 부인하거나 국면 전환하려 하지 않고 담담히 잘 수용했다.


여섯 시간이 걸려서 카사블랑카 CTM버스 터미널에 도착한다. 카사블랑카는 대도시이기 때문에 국제 항공편이 도착하는 곳이지만 볼거리가 많지 않다고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가 많다고 한다. 리야드나 작은 숙소도 별로 없고 비싼 호텔에 묵어야 해서 여행자들이 선호하는 도시도 아니다. 그런 카사블랑카에 왔으니 믿을 것은 아이패드에 담아온 론니플래닛뿐이다. 가이드북에서 안내하는 저렴한 숙소를 찾아간다.
카사블랑카 터미널 근처는 번화가라 사람이 많다. 인상 좋아 보이는 여자들에게 길을 묻는다. 영어는 통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도움까지 받으며 성심성의껏 길을 알려주는 친절한 사람들 덕분에 금방 길을 찾는다.


그러나 찾아간 주소에는 숙소가 없다. 해는 저물어 가는데 이런 낭패가 없다. 근처의 큰 호텔에 들어가 내가 찾던 숙소를 물으니 문을 닫았다고 한다. 이 호텔은 빈 객실은 있지만 객실료가 너무 비싸다. 호텔 직원은 내가 에싸위라에서 오는 길이라고 하니 그곳은 모로코인들에는 좋은 휴가지라면서 그 와중에 부러워하기까지 한다. 가이드북을 뒤지고 있던 나를 잠시 바라보던 직원이 조금 싼 호텔을 소개해 주겠다며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잠시 후 적정한 요금의 쾌적한 싱글룸을 구비하고 있는 다른 호텔 직원이 나를 데리러 온다. 예상보다는 지출이 크지만 이미 어두워지고 있어서 선택의 여지도 없다. 물가가 상대적으로 싼 모로코이니 이런 호사(?)도 나쁘지 않다는 위안을 한다.
배경화면을 바꿀 수 있는 자유도 여행의 즐거움이다. 어제는 쓸쓸한 에싸위라의 바닷가에서 모로코 전통가옥 리야드에서 묵고 오늘은 계획에 어긋나게 모로코 제1의 도시의 현대적인 호텔 싱글룸에서 잠들게 되는 일들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큰 어려움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해 우여곡절 끝에 밤을 보낼 숙소를 얻는 것만으로 감사한 하루가 있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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