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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남역 사건 100일②]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국가기관 곳곳서 ‘성차별적 언행’
- 양성평등 확산해야 할 정부가 ‘성 편견’ 홍보물

- 성범죄 전담 재판부 마저 ‘2차 가해’로 얼룩

- 공무원ㆍ법조인 양성평등 관점 부족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과 성 차별은 비단 개인의 문제일 뿐 아니라 사회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성 평등 문화를 확산하고 관련 제도 기반을 마련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히려 정부가 편견을 조장하거나 양성 간 갈등을 심화시키는 내용의 캠페인이나 홍보물을 제작하는 경우가 많아 논란이다.

최근 정부가 국가건강정보포털에 ‘여성의 아름다운 가슴의 조건’에 대해 묘사한 자료가 게재돼 논란이 일었다. 사이트의 ‘건강/질병 정보’ 게시판에 올라온 이 글에는 여성의 가슴이 어떤 형태를 갖춰야 아름다운지 항목마다 수치를 나열하고 있었다. 여성의 가슴에 대해 “남편에게는 애정을 나눠주는 곳”, “여성으로서의 의미와 자존심이 표현되는 곳”이라는 표현들이 나와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 했다는 비판도 일었다. 내용이 건강을 위한 정보와는 거리가 먼데다 바람직한 여성의 신체 형태가 있다는 고정관념을 조장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제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성관계를 암시하는 듯한 내용의 투표독려 동영상 광고를 내보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 광고의 여성은 “오빠, 그거 해 봤어요?”라고 남성에게 묻는다. 남성이 “초면에 벌써부터 진도를···”이라며 당황하자 여성은 “진짜 저랑 하고 싶으시다는 건지. 오빠랑 하고 싶기는 한데 아직 그 날이 아니라서”라고 말한다. 광고는 두 남녀가 투표하러 가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며 여성이 남성과 하고 싶은 것이 ‘투표’였다는 반전을 내세운다. 그러나 ‘알아들으면 최소 음란마귀’라는 제목은 이 광고가 성적 상상을 자극하기 위해 기획됐음을 암시하고 있다. 
[사진설명= 지난 20대 총선 당시 노골적인 성관계 비유로 논란이 됐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광고의 한 장면.]

정부 대표 블로그인 ‘정책공감’은 설을 앞둔 지난 1월27일 ‘명절맞이 준비 팁’이라는 명목 아래 성 고정관념을 담은 글을 올렸다. 이 홍보물은 결혼 1년 차인 여성이 처음 맞는 명절인 설날에 가족과 결혼식에 참석한 지인들을 위한 감사 선물, 명절 음식을 혼자 준비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이 홍보물을 본 많은 시민들과 누리꾼들은 “명절 준비는 여성 혼자 하냐”며 “가부장적 문화를 조장하는 내용”이라고 비판했다.

홍현주 여성가족부 성별영향평가과장은 “공무원 사이에 성인지적 관점이 아직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올해 1월부터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발간하는 홍보물에 대해 전국 17개 성별영향분석평가센터에서 성파별적 내용이나 성역할 고정관념이 담기지 않았는지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약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를 단죄해야 할 법정 역시 잘못된 성인식으로 가득 찼다.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재판에 동행하는 활동을 하는 한국여성민우회의 ‘첫사람’은 지난 18일 서울의 한 지방법원 성폭력전담재판부를 4시간 동안 방청한 뒤 판사와 검사, 변호사들이 가한 언어적 2차가해 실태를 카드뉴스로 제작했다. 
[사진설명= 성폭력 피해자들의 마지막 보루인 성범죄 전담 재판부에도 성차별과 2차가해는 벌어지고 있었다. 한국여성민우회 ‘첫사람’이 성범죄 전담 재판부를 방청한 뒤 이들의 잘못된 언행을 기록한 카드뉴스를 제작했다.]

‘정의로워 보이는 사람들의 말’이라는 제목의 이 카드 뉴스는 성폭력을 단죄해야 할 법조계가 가진 여성의 성에 대한 편견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한 판사는 “성 경험이 많은 여성과 적은 여성은 대응방식이 다르다”며 “성경험 없는 여성이 모텔에 쉽게 가지 않는다”며 성폭행의 책임을 피해 여성에게 돌렸다. 한 검사 역시 “피해자들이 외모가 예뻤냐, 주로 외모가 예쁜 학생들만 만졌냐”며 여성의 외모가 성폭력의 원인이 된 것처럼 표현하기도 했다.

변호인들은 피해자가 가해자의 삶을 망치고 있는 것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죄명이 커서 피고인이 앞으로 살아가는데 충격이 있다”거나 “가해자와 관계가 나빠져서 앙심을 품고 신고한 것 아니냐”는 식이다.

‘첫사람’ 활동에 참가한 한 여성민우회 관계자는 “법조인 개인의 인식이기 보단 우리 사회 전반적인 여성 차별적인 인식이 재판에서 드러난 것”이라며 “관련 교육도 받지 않고 전문성이 없는 법조인이 성범죄를 집중적으로 다룬다고 양성평등에 대한 감수성이 생기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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