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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스러운’ 학문의 전당, 제주향교 대성전 보물 됐다
[헤럴드경제=함영훈] 반만년 역사 동안 우리의 수도(首都)는 ‘외로운 탐라, 보듬어 주어야지’ 하면서도 보듬지 못했던 곳이 제주였다. 제주는 자연 그대로, 그들의 풍속대로 학문과 문화를 가꿔갔지만, 다양한 육지의 문명과 철학을 접변하지 못했다.

그랬던 제주에 이른바 ‘학문’이 도래한 것은 14세기말이었다. 제주향교가 생기고난 이후였던 것이다. 선비들이 태동하고 지식인들이 나라발전과 국난극복을 위해 토론하는 곳이 생겼던 것이다.

제주향교 대성전의 지붕은 양 측면에 삼각형 모양의 합각면이 있는 팔작지붕이지만 경사가 완만하여 합각면의 크기가 작고, 처마에서 추녀 쪽이 치켜 올라간 앙곡과 위에서 내려다 볼 때 추녀 쪽이 빠져나간 안허리곡이 세지 않다. 아울러 건물이 낮아 전체적으로 지면에 달라붙은 듯하지만, 건물의 규모가 커서 안정적이고 장중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특성은 바람이 세고 비가 잦은 제주도의 자연조건에 순응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가장 ‘제주스럽게’ 지어진 독특한 건축양식의 제주향교 대성전이 드디어 나라의 보물이 됐다.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제주향교 대성전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902호로 지정했다. 제주향교는 1394년(태조 3) 제주 관덕정(보물 제322호)에서 동쪽으로 약 400m 떨어진 곳에서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5차례 자리를 옮겨 1827년(순조 27) 현 위치에 들어섰다.

제주향교는 애초 경사지형에 맞추어 ‘홍살문–외삼문–명륜당–대성전–계성사’로 이어져, 강학공간(명륜당)이 앞쪽에 있고 제향공간(대성전)이 뒤쪽에 자리한 ‘전학후묘’(前學後廟) 배치였으나, 1946년 제주중학교가 들어서면서 영역이 축소되고 명륜당이 대성전 남쪽에 신축되어 현재는 ‘좌묘우학(左廟右學)’의 배치를 하고 있다.

공자 등 성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은 1827년 이건 이후 제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제주 지역의 독특한 건축 요소들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공포(栱包:처마 끝의 하중을 받치기 위해 기둥 윗부분 등에 짜 맞추어 댄 구조물)의 경우, 기둥 위에 놓인 주심도리(柱心道里)와 기둥 바깥의 외목도리(外目道里) 사이의 간격이 넓어 익공(翼工, 새 날개 모양의 부재)이 매우 길게 뻗어 나가 있어 육지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를 띠고 있다.

귀포와 배면포 하부에는 처마의 처짐을 방지하기 위해 덧기둥을 설치하였는데, 이는 다른 지역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제주에서도 대정향교와 제주향교 대성전에만 나타난다.

함영훈기자@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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