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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청업체의 비극…乙의 눈물] 갑의 ‘법’·을의 ‘밥’…안전은 또 뒤에 있었다
구의역·진접역 잇단 사망사고
수칙·법규 못지킨 작업환경
관련 법률안 19대국회서 폐기
시간·비용 들어도 폐단 잡아야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에 이어 남양주시 진접역 폭발 사고로 숨진 이들은 하청업체 근로자 중에서도 비정규직이거나 일용직임이 드러났다. 우리사회의 을(乙) 또는 병(丙)이 안전사고에 쉽게 노출되고 그 결과 목숨을 잃기도 쉽다는 것이 확인되자 사회적 분노가 일고 있다. 특히 이들의 안전을 담보할 법에 빈틈이 많고 원청업체 등이 이를 이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의역 사고나 남양주 폭발사고 모두 안전 수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고가 벌어질 때마다 관련 법규가 더해졌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거나 법규 자체의 빈틈이 많아 현장에서 실효성이 떨어졌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 플랫폼에 포스트잇 꽃이 피었다. 19살 청춘 김모 군이 목숨을 잃은 그 곳에서 시민들은 희미하게 아스러져간 청춘에게 편지를 보냈다. 9-4 플랫폼은 물론, 구의역 역무실까지 덮은 시민들의 편지는 1000건이 훌쩍 넘었다. 헤럴드경제는 시민의 마음이 담긴 포스트잇을 모두 촬영한 후, 문자화했습니다. 그 중 반복되는 문구를 제외한 528건의 편지를 지금은 하늘에서 편히 쉬고 있을 김 군에게 전하려 한다. 1000여건이 넘는 시민들의 메세지 중 528건을 고른 것은, 김 군의 사고가 있었던 5월 28일을 잊지 말자는 의미다.

지난해 스크린도어 보수 인력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서울메트로는 스크린 도어보수 시 ‘2인 1조’운영 방침을 세웠다. 1명이 보수 작업을 할때 1명은 전동차가 진입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하청업체인 은성PSD는 실제로 1명을 보수현장에 보내고도 2명이 나간 것처럼 서류를 작성했고 서울메트로 측이나 감독책임이 있는 서울시는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현장 실사를 나가지 않고 서류상으로만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진접역 폭발 사고에서도 안전 법규는 무시됐다. 시공사인 포스코건설의 안전책임자는 폭발 사고 당시 시공현장에서 벗어나 있었고 안전 체조 등 관련업무는 감리단 직원이 실시했다. 하청업체인 매일이엔씨는 화재 감시인을 두지 않아 소화 시설 관리와 가스 누출 여부 확인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산업안전보건법 상 설치해야 하는 환기시설과 누출경보기는 비용과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설치되지 않았다.

이처럼 하청 근로자들의 안전을 담보할 법규가 무력화되면서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2012년 1134명에서 2015년 955명으로 줄었음에도 중대재해 사망자 중 하청노동자 비율은 2012년 26.4%에서 2014년 39.1%로 오히려 늘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도급 단계가 늘어날수록 관련 비용을 아끼기 위해 안전 수칙을 무시하는 경향이 커진다”며 “그 위험 비용은 비숙련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떠넘겨진다는 게 최근 일련의 사건으로 확인된 것”이라고 했다. 

구의역에 붙은 추모 포스트잇

이같은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적어도 생명이나 안전 관련 업무는 하청을 주지 못하도록 하고 정규직 근로자만 쓰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지난 2014년 10월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 등은 ’생명안전업무 종사자의 직접고용 등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기업에 부담이 된다”는 정부ㆍ여당의 반대로 19대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다.

안전 법규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기업에 대한 페널티도 지나치게 작다는 지적도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상 근로자 보호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돼 있지만 사업주가 직접 안전 수칙을 무시하라는 명령을 한 것이 확인되지 않으면 징역형이 선고되기 어렵고 법인이 무는 벌금 역시 취한 이득에 비해 지나치게 적다는 게 시민단체와 노동계의 지적이다. 그나마도 원청업체의 경우 사용자의 고의성 입증이 어려워 기소율이 3.1%에 그친다.

이에 기업의 과실로 소비자나 근로자가 피해를 입었을 경우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더 많은 손해배상이 가능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안 사무처장은 “이번 사고로 범국민적 합의가 무르익은 만큼 국회가 나서서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김태영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는 “싱가포르의 경우 버스가 인도를 침범할 가능성이 극히 적음에도 인도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시민들도 그에 드는 예산이 필요하다고 믿는다”며 “시민들 역시 다소 불편하거나 시간과 비용이 더 들더라도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문화를 조성해야 기업이 안전에 투자할 유인이 생긴다”고 했다.

원호연 기자/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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