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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라스틱 연금술사’ 최정화의 비밀공간을 엿보다
부표·장독등 일상속 사물이 작품으로
작업실도 작품·잡동사니 경계없어
보그誌 ‘한국패션100년’행사에 작품설치
濠·伊등 세계적 미술관 그의 작품 소장



현대미술가 최정화(55)의 아뜰리에에는 ‘신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서울 종로구 연지동 철물골목 오래된 양옥집 안마당은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녹색 식물들로 가득하다. 5년 된 덩굴나무는 벽면을 타고 옥상까지 이어졌고, 사람 손바닥보다 이파리가 더 큰 알로카시아 화분이 작업실 천장까지 닿아 있다. 크고 작은 장독들은 죄다 뒤집어진 채 원 모양으로 도열해 있고, 지하 어둑한 공간에는 모양이 다른 플라스틱 의자들이 둥그렇게 모여 있다. 마치 주술의 의미를 지닌 제단처럼. 

최정화는 ‘플라스틱 연금술사’로 불린다. 싸구려 플라스틱을 이용한 설치작품을 주로 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① 최정화 작가가 화단 장독대 사이에서 포즈를 취했다. 작가는 원 모양으로 늘어놓은 장독대들 사이로 “우주의 기를 모은다”고 말했다. ②, ③ 최정화의 작업실. 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최정화는 가장 핫한 한국의 현대미술가다. 많은 해외 컬렉터, 미술관 관계자들이 ‘좋아하는 한국 작가’로 주저없이 최정화를 꼽는다.

그의 작품은 전세계 곳곳에 있다. 전시를 여는 곳마다 그의 작품을 컬렉션한다. 핀란드 헬싱키에 소재한 키아스마(Kiasma) 현대미술관, 이탈리아 로마의 국립현대미술관 맥시(MAXXI), 호주 브리즈번 현대미술관 고마(GoMA) 등 전시가 연 세계 유수 미술관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했다. 일본은 각 현마다 최정화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최정화 작가는 오는 8월 열리는 ‘헬싱키 페스티벌’의 아트나잇을 직접 디렉팅한다. 비슷한 시기 패션잡지 보그가 주최하는 ‘한국패션 100년’ 기념 행사에도 그의 작품이 설치될 예정이다. 9월 일본 사이타마현과 이바라키현에서 열리는 트리엔날레도 준비중이다. 최근에는 미국 보스턴미술관에서 사상 최대 규모로 열린 현대미술 그룹전에도 참여했다.

▶일상과 예술에 대하여=“이건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버려져 있던 것들이에요. 부표로 쓰던 것들이죠. 부서지고 깨졌지만 유물이죠. 저건 아프리카에서 사람이 죽을 때 같이 묻어줬던 목베개고요.”

최정화 작가의 연지동 작업실에는 전세계 각지에서 모은 수집품들이 가득했다. 때 묻은 일본산 탱탱볼 세트부터 병따개까지, 일반 가정에서라면 얼마 후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만한 것들이다.

작가는 “일상이 고고학”이라고 했다. 탱탱볼 세트에서는 “우주가 보인다”고 말했다.

“씨앗과 열매는 불일불이(不一不二).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에요. 열매를 맺으려면 씨앗이 죽어야하고, 열매가 죽어야 씨앗이 되죠. 일상과 예술의 관계도 같아요. 매 순간 순간 일상의 모든 것이 고고학적 유물이에요.”

어눌한 듯한 말투로 자신의 작업 철학을 명쾌하게 전달하는 그는 혹시 ‘천재과’는 아닐까. 아니나다를까 천재들만의 영역(?)인 ‘백지 답안지’를 그 역시 학창시절 내던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건이 그를 미술가의 길로 이끌었다.

“아이큐요? 80이 넘은 적이 없었어요. 하기 싫어서 대충했거든요. 고2 말 쯤이었나. 수학시험에 백지를 냈어요. 거기에 감독관의 얼굴을 그렸죠. 재미가 없어서요. 엄청 맞았어요. 그땐 막 때릴 때니까. 그 때 지나가던 미술 선생님이 그 답안지를 보시고는 내가 데려가겠다 하셨죠. 그 때부터 미술하게 된 거에요.”

▶관계맺음에 대하여=플라스틱이라는 싸구려 소재가 현대미술의 현장에 나오게 된 데는 그의 엄청난 수집벽이 있었다. 그는 수십년간 ‘일상의 유물’들을 수집했다. 그리고 수집벽은 곧 소재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저는 물건을 모셔요. 제게 아이디어를 주고 제 생각을 발전시켜 주는, 작은 물건들 하나하나가 사부님들이죠. 어렸을 때부터 모았대요. 길 가다가도 단추나 옷을 주워 오고. 심지어 중학교 때 언제 어디를 가면 버스표랑 토큰 같은 게 많이 떨어져 있는지 알았을 정도예요. 그러다가 순금도 주었죠. 제가 물질의 세계는 좀 알아요(웃음). 작업을 위해서 모았다면 잘 안 됐을 거에요. 그런데 그냥 이게 생활이니까.”

작업실에 놓여진 모든 것들은 서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리고 관계맺음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었다. 현관문 앞에 놓여 있는 슬리퍼들이 이를 말해준다. 함께 있을 때 그 ‘싸구려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학창 시절 ‘문청(문학청년)’이었던 그는 지금도 책을 끼고 산다. 휴대전화는 아예 없다.

그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인용했다. “자세히 봐야 아름답고 오래봐야 사랑스러워요. 어느 것 하나 하찮은 게 없어요.”

그는 “인공적인 것을 무시하고 나쁘다고 할 게 아니라 어떻게 쓰고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플라스틱 작품은 단순히 플라스틱이라는 ‘소재’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최정화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건넨 시 한구절. 오규원의 ‘두두(頭頭)’다. “두두시도 물물전진(頭頭是道 物物全眞). 사물 하나하나가 전부 도이고 진리입니다.”

김아미 기자/ami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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