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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더티 해리
핫도그를 우걱우걱 씹어대는 얼굴에선 “아, 또 내가 나서야 하나”라는 피로감이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막상 범죄 현장에 나가면 막강 화력의 매그넘44 권총을 정교하게 쏴댄다.

1971년 개봉해 5탄까지 나왔던 미국 영화 ‘더티 해리’(한국에선 ‘더티 하리’로 소개)의 주인공 클린트 이스트우드. 그는 악의 척결자다. 해리 캘러핸이라는 이름의 샌프란시스코 강력계 형사다. 법을 지켜야 하지만 범죄자들에겐 너무 쉽게 총질을 해댔다. 악당의 머리에 총구를 대고 ‘오늘이 네 제삿날이다(Go ahead, Make my day)’라고 내뱉은 대사는 당대 최고의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법치국가에선 해선 안 되는 ‘ 사적 보복’이지만, 많은 관객이 카타르시스를 얻었다.

정의를 구현하기엔 너무 느려터진 것 같은 법에 대한 불만과 ‘사이다’ 같이 속 시원한 영웅에 목말랐던 시대가 만들어낸 블랙 코미디다.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당선인. 그는 21세기를 사는 현실의 ‘더티 해리’로 입길에 오른다.

최고 권력자로 낙점된 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아찔한 어록을 쌓아가고 있다. ‘마약을 한 모든 사람들을 죽일 것이다’, ‘성폭행범 남성 3명은 직접 총살한 적이 있다….’

나라 사정이 얼마나 힘들길래 ‘더티 해리’ 같은 캐릭터가 현실의 대통령으로 당선됐을까를 생각하면 그를 ‘괴짜’로 치부하긴 힘들다.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여성혐오 대 남성혐오’의 성(性)대결이 펼쳐진다. 남녀공용화장실이어서 범죄가 발생했으니 폐쇄해야 한다는 처방도 나온다.

세기말적 아노미 현상이 일상이다. 머릿속과 심장은 매일 전쟁을 치른다. 증오는 한 발 물러서면 덧없는 것인데, 마음 속에 쉼표 하나 찍지 못하고 있다.

홍성원 기자/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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