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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車, 필름 위를 달리다]‘Wings’부터 ‘Civil War’까지...배우 뺨치는 ‘車車車’
[헤럴드경제=정태일 기자]사랑하는 딸이 적에게 납치됐다. 딸은 적의 전용기에 갇혔고, 전용기는 서서히 속도를 올리며 활주로를달리기 시작한다. 애가 타는 아버지는 달리던 차로 철망을 뚫고 활주로로 진입했다. 전용기를 향해 돌진하는 차는 굉음을 내며 5000rpm을 지나 6000rpm까지 찍었다. 끝내 차는 이륙 직전의 전용기 속도를 따라잡으며 랜딩기어와 충돌했다. 아버지는 기적적으로 비행기의 이륙을 막았고, 마침내 전용기까지 들어가 딸을 구할 수 있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비상하려던 전용기를 저지한 차는 포르쉐 911이었다.

이는 리암 니슨 주연의 ‘테이큰 3’ 후반부 장면이다. 수많은 영화팬들은 이 영화 최고의 장면으로 포르쉐 911이 비행기를 따라잡는 순간을 꼽았다. 변함 없는 액션을 선보인 노장의 리암 니슨에게도 박수가 쏟아졌지만, 영화팬들을 사로잡은 이는 다름 아닌 포르쉐 911이었다. 이 한 장면으로 포르쉐 911은 스포츠카로서의 매력을 십분 드러내며 지금까지도 영화팬들에게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테이큰3’에서 비행기 이륙을 저지했던 포르쉐 911

영화에 등장하는 장면이 많지 않지만 단 몇 번의 신(scene)만으로 강렬함을 드러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배우들이 있다. 이들은 놀라운 연기력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훔친다고 해서 ‘신 스틸러’라고 불린다.

포르쉐 911처럼 영화에 PPL(Product Placement)로 등장하는 차들은 단순 상품을 넘어서 점점 관객의 시선을 훔치는 ‘신 스틸러카’가 되고 있다. 아우디 R8은 2008년 ‘아이언맨’부터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애마’로 활약하며 최근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시빌워’에서도 어김없이 매력을 발산했다. 

‘아이언맨’부터 ‘캡틴 아메리카:시빌워’까지 토니 스타크의 애마로 나오는 아우디 R8

이처럼 명차들이 수많은 PPL 상품을 제치고 배우 뺨치는 연기를 선보인 것은 불과 몇년 전 얘기만은 아니다. 영화 속 자동차 PPL이 100여년의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수많은 차들이 ‘내공’을 쌓은 끝에 지금의 ‘연기력’을 과시할 수 있게 됐다.

마케팅 업계에서는 자동차가 흥행에 성공한 영화에 등장해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를 1920년대부터 보고 있다. 헐리우드 영화 중 1927년 개봉한 무성(無聲) 전쟁영화 ‘Wings’에는 포드 자동차가 PPL로 등장했다. Wings는 1920년대 헐리우드 최고 흥행작이었다. 이 영화에서 포드 자동차는 총 26분간 노출됐다. 

‘졸업’에 나온 알파 로메오 스파이더 1600 듀엣

1930~1950년대 헐리우드 영화 속 자동차 PPL이 뜸하다가 1960년대 최고 흥행을 기록한 ‘졸업(1967년)’에 알파 로메오와 역시 포드 자동차가 나왔다. 이후 1970년대 최대 흥행작 ‘죠스(1975년)’에는 쉐보레, 캐딜락, 머스탱 등의 차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이들 차 모두 단순 모습만 드러낸 것이 아니라 출연진들이 직접 운전하는 차로 노출됐다. 

‘E.T’에 등장한 아우디 5000s

이 때까지만 해도 대중차 브랜드들이 주로 PPL로 나섰지만 SF 혁명을 일으킨 ‘E.T(1982년)’에서는 쉐보레와 함께 프리미엄 브랜드 아우디의 차량이 영화에 등장했다. 아우디 차량은 E.T에서 무려 1시간30분 넘게 노출되며 전세계 E.T팬들에게 아우디 홍보를 톡톡히 했다. 

아우디의 E.T 출연은 서막에 불과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영화 티켓 가격이 떨어지고, 영화사들 제작비가 줄면서 점점 PPL에 대한 의존도는 올라갔다. 이는 2000년대 들어 더욱 뚜렷해졌고 자연스럽게 대작들이 단가가 높은 고급차들과 손잡는 결과로 나타났다. 

‘다크나이트’에 나온 슈퍼카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LP640

미션 임파서블(1996년), 본 아이덴티티(2002년) 등을 거쳐 2000년대 최대 수익을 올린 ‘다크나이트(2008년)’에는 포드와 함께 닷지, 메르세데스-벤츠 여기에 슈퍼카 브랜드인 람보르기니까지 등장했다. 람보르기니는 1시간45분 동안 노출되며 사실상 영화 전반에 걸쳐 모습을 드러냈다.

007 시리즈에서 주인공 제임스 본드 곁에 있던 ‘본드카’ 정도만 ‘액션카’로서 부각되다 각종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시리즈에 자동차들이 비중 있게 사용된 이유도 결국 돈이 필요한 영화사와 홍보 플랫폼이 필요한 자동차 기업 간 ‘비즈니스’가 통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도 뒤늦게 인셉션(2010년)에 제네시스를 투입해 관객들의 관심을 사는데 성공했다. 이후 마블사, 넷플릭스와 2년 동안 계약해 미국의 슈퍼히어로 시리즈물 ‘더 디펜더스’에 차량을 협찬키로 했다.

마케팅 학계에서는 자동차가 영화 PPL로 유독 돋보이는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설명한다. 영국의 다국적 회계컨설팅기업 PwC에 따르면 자동차가 영화 PPL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빈도와 노출시간에서 최상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패션의류는 1신에 10초 미만으로 나와도 성공할 수 있지만, 자동차는 영화 내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성공적 PPL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국내 한 마케팅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처럼 단가가 높을 경우 기업에서 영화사에 유리한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입장이다보니 PPL 차를 주인공에 붙여서 나가기 쉬운데 이런 경우 웬만한 조연급 배우 수준으로 노출 빈도가 높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killpas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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