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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디 벚꽃 뿐이랴…‘고향의 봄’이 날 오라하네
전국이 ‘꽃사태’이다.

사람들이 꽃을 좋아하는 이유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다. ‘겨울을 이겨냈기에 봄에 피어난 꽃이 더욱 사랑스럽다’는 말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의 시(詩)로도 우리가 꽃을 좋아하는 이유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수천만명이 1박2일 수십만원씩을 들여가며 교통체증 속에서도 꽃 구경을 다니는 이 초강력 팬덤을 어쩌란 말인가.

‘그저 좋은 것’ 만큼 큰 사랑이 있을까. 봄꽃은 그런 것이다.

그냥 아름답기만 하다면 도시 주택가를 환히 밝혀주는 목련과 아파트 담장 밑 제비꽃에서 생활속 미학을 만끽하는 것으로 족할지 모르겠지만. 꽃은 사랑과 추억을 품었기에 시공을 초월하는 매력을 갖는다.

사천 모충공원, 진해, 영암의 벚꽃, 강화 고려산과 강진 주작산의 진달래, 영동의 배꽃, 삼척 맹방의 유채꽃, 창원 소답동의 살구꽃에는 군대 간 오빠의 군사우편도 걸려있고, 사우디 갔던 남편의 땀에 젖은 사랑 고백도 담겨 있으며, 어릴적 놀던 죽마고우의 얼굴도 그려져 있다.

아이는 진달래꽃을 따먹고, 아빠는 그것으로 술을 담가 마신다. 주정 부리는 남편때문에 집을 나와 속상한 마음에 걷던 그 길의 도화(桃花:복숭화꽃)는 왜 그리 얄밉던지….



▶‘고향의 봄’ 창원 소답동=봄꽃이 주는 사랑과 추억의 스토리가 고향만큼 다채롭고 진한 것도 없다. 유명관광지 못지않게 상춘객들이 고향으로 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이 곡의 작사가 이원수는 두살때부터 경남 창원 소답리에서 자라면서 네 살 아래 이웃집 아이 김종영(조각가)을 친동생 처럼 여기며 지낸 것으로 안다고 남강웅 해설사는 전한다. 노랫속 배경은 김종영의 집과 이 곳을 둘러싼 마을 풍경이다.

이원수는 1980년 회고록을 통해 “내가 양산에서 나긴 했지만 1년도 못되어 창원으로 왔다. 마산에 비해서는 작고 초라한 창원의 성문 밖 개울이며 서당 마을의 꽃들이며 냇가의 수양버들, 남쪽 들판의 푸른 보리, 그런 것들이 그립고 거기서 놀던 때가 한없이 즐거웠던 것 같았다”면서 15세때 ‘고향의 봄’이라는 시를 지은 과정을 설명했다.

‘울긋불긋 꽃대궐’은 이원수와 김종영의 추억이었지만, 9000만 한민족이 오래도록 내고향 스토리인 양 아꼈다. 창원 소답동과 인근 천주산에서는 오는 7일부터 19일까지 ‘고향의 봄 축제’가 열린다. 10일 열릴 천주산진달래축제에는 창원사람 서울사람 부산사람 광주사람 할 것 없이 울긋불긋 꽃대궐을 만끽한다.

▶충북 영동 매천리 배꽃과 복숭아꽃=충북 영동은 추풍령 자락에 있어 일조량이 풍부하고 낮과 밤의 기온차가 커 배와 복숭아 등 과일농사가 잘 된다.

배꽃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은 매천리다. 최고 100년이 더 된 나무까지 낮은 구릉에 배나무 천지이다. 매천리에 배꽃이 피기 시작하는 시기는 4월 중순이다. 하얀 배꽃은 눈꽃 송이를 머금은 풍경과도 닮았다. 차창을 열면 따스한 봄기운 속에 달콤한 배꽃 향기가 콧속을 콕 찌른다.

배꽃 단지 중간중간에 분홍빛 복숭아꽃도 한창이다. 관광지라기 보다는 농부들의 일터이다. 맘씨 좋은 농부들에게 넌즈시 양해를 구하면 ‘배꽃 터널’길 산책을 흔쾌히 허락해준다. 삶의 터전이라 더욱 고향같다.

인근 심천면 고당리 영동국악체험촌에서는 공연 감상은 물론 사물놀이, 거문고, 난타 체험도 할 수 있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에서 가장 큰 북 ‘천고(天鼓)’를 두드려보는 것은 여행 무용담 최고의 소재이다.

▶김천 이화만리의 자두꽃=김천 역시 자두, 포도, 복숭아, 사과, 배와 같은 과일이 많이 재배되는 고장이다. 그중 자두는 전국 생산량 20%에 달한다. 자두꽃은 3월말 개화돼 4월에 절정을 이룬다. 희고 앙증맞은 꽃잎 다섯 장과 샛노란 수술이 달린 생김새가 매화를 닮았다. 복숭아와 비슷하지만 진한 자줏빛이어서 ‘자줏빛 복숭아’라는 뜻으로 자도(紫桃)라고 하다가 자두가 되었다. ‘오얏나무 아래에선 갓끈을 고쳐매지 마라’는 격언이 있는데, 바로 그 나무가 자두나무이다.

이화만리는 ‘자두꽃 향이 만 리를 간다’는 뜻이다. 김천자두꽃 축제는 오는 9일에 열린다. 폐교를 리모델링한 ‘이화만리 커뮤니티센터’가 축제의 주 무대다. 꽃마차 만들기(마을 퍼레이드), 자두꽃 주민 노래자랑, 자두 음식 만들기, 가족 미술 대회 등 다양한 행사가 축제의 흥을 더한다. 도자기 만들기, 염색, 자두 따기 등 체험 프로그램은 덤이다.

▶강진 주작산길의 진달래=강진의 봄 들판에는 초록빛 보리가 자라고, 주작산 덕룡산에는 진달래로 불이 난다. 기암괴석 사이에 핀 연분홍 진달래는 듬직한 농촌총각의 품에 안긴 예쁘장한 시골처녀 같다.

주작산 진달래 산행은 자연휴양림~소석문~덕룡산~휴양림(숙박)~주작산~오소재 코스가 일반적이다. 흔들바위를 지나 덕룡봉에 올랐다가 작천소령을 거쳐 휴양림으로 내려오며, 2시간쯤 걸린다.

흔들바위를 지나면서 가파른 오르막이다. 이마에 땀이 흐를 무렵 덕룡봉 정상에 이르는데, 진달래가 바다 처럼 펼쳐진다. 암릉 너머 푸른 들판과 강진만은 운치를 더한다.

▶벚꽃 진달래 져도 봄꽃 6월까지 줄줄이 핀다= 오는 10일 진해군항제, 영암왕인문화축제, 여의도벚꽃축제가 일제히 끝나고, 진달래와 도화가 지더라도 ‘꽃사태’는 계속된다. 고양국제꽃박람회가 오는 29일부터 5월 15일까지 화려하게 펼쳐지는 것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봄꽃의 향연이 이어진다.

달빛 먼 길, 내님이 풀물에 배인 치마 끌고 오시는 풍경이 떠올려지는 백합화 들길은 4월하순부터 5월까지 만들어진다. 순백, 결백한 지고지순의 사랑을 상징한다.

제주에선 1월부터 핀 수선화는 거제에서 4월초 개화한다. 일운면 와현해수욕장에서 왼쪽 산길을 따라 5분 정도 들어가는 예구마을(공곶이)의 수선화는 꽤 오래 피어있어 5월에도 볼 수 있다.

남해 장평소류지와 거제 외도의 튤립은 4월 하순 5월초 피어난다. 야생 수국은 5월부터 두 달 가량 꽤 오래 피면서 마음을 줄 듯 말 듯 애태운다.

진달래는 사랑의 기쁨, 배꽃은 위안, 복숭아꽃은 사랑의 노예, 유채꽃 쾌활, 수국은 도도함을 상징한다고 한다. 동서고금 남녀노소는 하나 같이 ‘꽃말’을 만들고, 퍼뜨리며, 새로 고친다. 자신의 희로애락을 전면적으로 이입할 정도로, 꽃을 좋아하는 마음은 가히 모태적 본능이다. 어릴 적 고향 추억이 봄꽃 향기를 타고 온다.


함영훈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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