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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돌맏과 똘마니
[쉼표] ‘똘마니’라는 단어는 어떤 조직 수장의 측근이나 수하라는 뜻으로 변질됐다.

‘마노라’가 지체 높은 주군, 주인이라는 뜻에서 자기 아내를 낮춰 부르는 표현으로 격하된 것처럼 말이다.

매관매직이 횡행하던 조선 후기, 스무살도 안돼 관직에 오른 ‘어린 나리’를 두고 ‘얼라리’라 부르며 놀린 것은 통쾌하지만, 똘마니와 마노라의 의미 변질은 참으로 안타깝다.

‘똘마니’의 어원은 ‘똑똑한 사람’을 가리키는 인명 조성어 ‘돌’과 ‘으뜸’, ‘첫째’를 뜻하는 ‘맏’이 합쳐진 ‘돌맏’이라고 국어교사 출신의 최규성 작가는 설명한다. ‘으뜸으로 똑똑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삼국시대 이후 많이 쓰인 이름인데, 신라 선덕여왕도, 당나라군을 몰아내고 삼한통일의 화룡점정을 찍은 화랑 죽지랑도, 충절을 지킨 박제상도 모두 ‘돌맏’으로 불렸다.

‘돌’의 뜻이 퇴색됐다고는 하지만, 꾀돌이, 날쌘돌이, 똘이장군 등에서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 ‘전문가’라는 좋은 의미가 남아있다.

선친이 교사 출신이던 ‘반상의 신’ 이세돌의 이름 역시 이같은 ‘돌’의 뜻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이세돌의 누나인 이세나 월간바둑 편집장은 “바둑을 무척 좋아했던 아버지께서 기재棋才)가 출중한 동생을 많이 아끼셨다. 막내 아들에게 세돌이란 이름을 지어주신 걸 보면 정말 선견지명이 있으셨다는 생각이 든다”고 회고한 바 있다.

세돌은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슈퍼컴퓨터 CPU(중앙처리장치) 1202대를 가진 인공지능 알파고를 바둑으로 제압한 최초의 인류이다.

세돌이 이뤄낸 아름다운 인간승리의 숭고함을 새겨보면, 그가 지구촌의 진정한 ‘돌맏’이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이세돌은 잊혀졌던 ‘돌맏’의 참뜻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함영훈 선임기자/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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