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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 칼럼] 만능양념 시대의 불편함 - 김다은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항간에 알려진 프랑스 중산층의 기준은 네 가지이다. 외국어 하나 정도는 할 수 있고, 즐기는 스포츠가 있고,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고, 남들과 다른 맛을 내는 요리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가장 프랑스적인 기준은 아마도 네 번째 일 것이다. 세계적인 미식가로 알려져 있는 프랑스인들은 자신만의 레시피에 자부심이 대단한 편이다. 대부분 어머니의 그 어머니로부터 내려오거나 오랜 자신의 손맛에서 개발된 레시피이다. 그래서 유학시절, 프랑스 가정에 초대를 받으면 너무나 맛있어서 집에 가서 만들어보고 싶으니 제발 그 레시피를 알려달라고 사정하라는 조언을 받았던 적도 있다. 그래야 한국유학생이 쉽게 프랑스인들의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되어 다음에 또 초대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TV나 블로그를 통해 훌륭한 레시피를 소개하는 열풍이 상당히 지속되고 있다. 그래서 감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일류 셰프들의 레시피를 따라할 수 있게 되었고, 요리 초보자들도 용기 내어 간단하게 음식을 만들 정도의 실력이 가능해졌다. 그런데 이러한 음식 열풍을 타고 나타난 것이 있다. ‘만능양념’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지인의 집들이 초대를 받아 갔다. 여느 집들이가 그렇듯 다양한 음식들이 넘치게 차려졌다. 매우 정성스럽게 준비된 담백하고 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린 것이었다. 그런데 식사 중에 이 ‘만능양념’ 이야기가 나왔다. 그 양념만 사용하면, 이렇게 고생하지 않고 쉽게 최고의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각자 자신이 사용하는 누구의 혹은 어느 회사의 만능양념이 더 낫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만능양념을 판매하는 쇼핑몰까지 서로 정보를 주고받았다. 그 활기찬 대화 속에서 집주인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갔다.

만능양념은 말 그대로 국 찌개 반찬 등 어느 곳에 사용해도 최고의 요리가 된다는 뜻이다. 참으로 오만한 양념이 아닐 수 없다. 어느 음식에 넣어도 누구의 입맛에도 맞는 최고의 요리를 만드는 양념이 감히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만능양념’이란 이름은 음식 종류도 초월하고 사람의 입맛도 초월하는 절대양념인 양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잘 생각해보면, 음식을 만드는 시간과 노력을 줄여주는 ‘편리’한 양념이지만, 각 개인의 음식문화와 섬세한 미각을 평준화시켜버리기에 장기적으로는 ‘불편’한 양념이 될 수도 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각자의 요리법을 최고로 여기는 프랑스에서는 우리처럼 요리 프로그램이 많지 않다. 보고 배우면 똑같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 가정에 초대받아서 레시피를 받아오는 것은 매우 어렵고도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 프랑스 미식가들보다 더 강자가 있다. 우리 어머니들이다. 그들은 프랑스 여성들보다 더 섬세한 손맛과 미각과 양념의 레시피를 가지고 있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진정 미각의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각 가정의 특색있는 레시피를 갖는 것이다.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내려오는 혹은 자신의 오랜 손맛에 의해 태어난 유일한 레시피! 옛 성현이 말씀하셨던가. 모두가 좋다고 하는 사람은 아부하는 성격이 있을 수 있어 좋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고. 양념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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