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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87. 짐의 무게는 인생의 무게…“더는 못 걸어”
-까미노 데 산티아고 +16:사아군에서 엘 부르고 라네로까지 17.9km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날씨 걱정은 안 해도 될 정도로 날마다 화창하다. 오늘 잘 걸을 수 있을까 걱정하며 일어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심정이기도 하다. 발의 컨디션대로 걸어보기로 한다. 걷다가 영 견딜 수 없으면 거기서 멈추게 될 것이다. 처음 일주일은 하루에 20km도 벅찼는데 최근에는 하루에 30km 정도는 기본으로 걷고 있어서 오늘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여전한 메세타, 여전한 하늘, 여전한 지평선, 그리고 여전한 내 그림자... 자동차 도로와 함께 가야 하는 길은 순례자들이 걸을 수 있도록 도로 옆에 오솔길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나는 그 길로 가지 못하고 그냥 아스팔트 위를 걷는다.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데 벌써 발이 아프다. 그래도 카메라를 들고 풍경을 찍으며 걷고 있는 걸 보면 덜 아픈 건가 싶지만, 아니다. 많이 아프다.


까미노는 공간이동이지만 시간여행자가 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의 건물들이 남아 있는 스페인 북부 작은 마을들의 풍경과 중세 까미노의 자취들을 보며 걷기 때문이다. 천천히 걸으면서 심호흡을 해 보아도 발이 나아지진 않는다.
한참을 걸어도 풍경은 변함없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다리는 점점 아파온다. 걸으면서 발가락 하나하나가 다 느껴진다. 발가락들이 존재함으로 내 온몸이 지탱된다는 것을 온 신경이 곤두서서 느끼는 중이다. 발가락도 만신창이이지만 설상가상으로 오른쪽 발목도 시큰거리기 시작한다. 어제 너무 무리한 탓일까? 며칠간 발이 아팠는데 이제는 그 때문에 발목에 무리가 가고 있다. 한 걸음을 걷는 게 이렇게 큰 일이 되다니….


다른 날과 달리 풍경마저 삭막하고 황량해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옆에서 보던 케이가 안 되겠는지 배낭을 들어 주겠다고 한다. 그러면 훨씬 나을 거라고 설득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마음은 너무나 고맙지만 등에 매고 있는 짐은 각자의 것이다. 그걸 떼서 케이에게 준다고 얼마나 고통을 덜 수 있을까? 만일 그렇다고 해도 그건 까미노를 걷는 순례자의 자세는 아니다. 내 짐이고 내 고통이다. 이런 상황 자체가 옆에서 걷고 있는 케이의 짐이 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된다. 케이가 그것이라도 짚고 걸어보라고 자신의 스틱 한 개를 건넨다. 이상 없이 잘 걷고 있는 케이가 얼마나 답답할까 싶다.


도로를 따라 10km를 걸어왔다. 다음 마을까지 8km, 마을 풍경이고 뭐고 잘 보지 않던 거리 계산만 하게 된다. 길은 끊임없이 도로를 끼고 이어진다. 스틱에 의지해서 걷기로 하고 케이를 먼저 보내고 천천히 걸어본다. 물집이 잡힌 발이 아픈 것은 알겠는데 오른쪽 발목은 왜 이리 아픈 건지 모르겠다. 그나마 스틱에 의지해서 걷는데도 어제 오후보다 더 아프다. 도저히 걸을 수가 없다.


걸음마를 배우던 아기로 돌아간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걸음걸이를 살피며 걷는다. 그동안 나는 대체 어떻게 걷고 있었던 것일까? 어떻게 걸어야 피로도를 줄이고 무리가 가지 않게 잘 걷는 것일까? 다시 생각해 볼 것이 걸음걸이 밖에 없을까? 한국에서의 나는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다. 어느 정도 아픈 건 티내지 않고 감수하는 편이다. 아픔은 나누면 다른 사람도 힘들어질 것 같아서 즐거움만 나누려고 하는 편인데 여기서는 그게 안된다. 아픔을 참는다고 해서 걸을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발의 고통은 발걸음에서 바로 드러나기 때문에 숨길 수가 없다. 그동안의 나는 인내심이 많은 사람이었던 게 아니라, 상처들이 참을 수 있을 만큼의 크기였던 것뿐이다.
정신력으로 걷고는 있지만 한 걸음 한 걸음이 가시밭길이다. 발가락의 물집도 그렇지만 발목에 무리가 가는 것은 보행 자체를 어렵게 한다. 이런 날을 상상해보지 않아서 당황스럽다. 한국에선 운동 따윈 전혀 안 하지만 여행 나오면 늘 여행 체질이라고 부러움을 사는 편이다. 인도와 남미를 무탈하게 여행하고 까미노에 왔으니 별 무리는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걸을 수 없는 일이 생길 줄은 미처 몰랐다. 한 시간이 영원 같다.


그렇게 도저히 걸을 수 없는 걸음을 간신히 옮겨 다음 마을인 엘부르고라네로(El Burgp Ranero)에 겨우 도착한다. 마을 입구에서 기다리던 케이는 내가 길 어딘가에서 쓰러진 줄 알고 걱정했다고 한다.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다. 나는 아프다고 해도 막연히 기다리던 케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미안하다. 여기서 케이와 헤어지는 일이 있어도 절대 짐이 되지는 말아야지 다짐을 한다. 사실 나는 더 이상 걸을 수가 없다.
케이도 그동안의 피로가 누적되어 피곤하긴 하다고 한다. 비슷한 조건인데 내가 티 나게 더 아플 뿐이지 케이에게도 쉬운 길은 아닐 것이다. 내 고통만 들여다보고 걸으니 다른 사람은 편히 가는 걸로 보였던 것이다. 어쨌든 오늘은 고작 17.8km 걸었는데 여기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알베르게에 등록을 한다. 이 알베르게는 숙박비가 정해진 게 아니라 기부제다. 벽에 설치된 도네이션 함에 알아서 숙박비를 넣는 시스템이다. 보통 시립알베르게 숙박비 5유로를 넣어 둔다. 친절한 오스피탈레로 아저씨가 이층으로 방 안내를 해준다. 내 배낭을 번쩍 들어 옮겨주면서 너무 무겁다고 깜짝 놀란다. 내 배낭은 나만 지고 다녔으니 다른 사람의 짐과 비교할 수가 없었는데 객관적으로도 무겁긴 한가 보다. 내 걸음걸이와 발상태를 보고는 그 다리로는 무거운 배낭을 매고 걷지 못할 거라고 심각하게 이야기한다. 내일은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좋을 거라는 충고도 해준다. 생각이 많아진다. 버스라, 걷기 위해 왔는데….
전통 방식으로 지어진 이 알베르게에는 방이 나뉘어 있어도 천정은 없다. 누우면 나무로 얽은 지붕이 그대로 보이는 구조라 특이하다. 창가 쪽에 침대를 정하고 다리를 쉰다. 발을 치료하고 붓기 시작한 오른쪽 발목에 압박붕대를 칭칭 두른다. 아파서 들어왔지만, 대낮에 걸음을 멈추고 알베르게에 들어오니 할 일을 못하고 빈둥대는 기분이다. 시간은 많고 사람도 없어서 편하게 씻고 빨래도 해서 뒷마당에 넣어 놓는다. 햇볕은 따스한데 바람이 잘 불어 침낭을 펴서 오랜만에 일광소독을 한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돌아 알베르게 앞 벤치에 앉아본다. 걷지 않으니 바람이 차갑게 느껴져서 햇빛 잘 비치는 양지가 좋다. 마을에서 가끔 노인들이 의자에 가만히 앉아 햇빛 쬐이는 걸 보며 걷곤 했는데 오늘은 내가 딱 그 모습이다. 따스한 햇살에 졸음이 밀려온다.
고요한 오후, 일층 휴게실에서 오스피탈레로 아저씨가 버스시간표를 알려준다. 마침 내일이 월요일이라 버스가 아침에 온다며 버스를 타고 레온으로 가라고 한다. 그리고 짐을 줄여야 한다고 심각하게 충고를 한다. 산티아고 우체국으로 짐을 덜어 보내면 2주 동안 보관해주는 서비스를 이용하라는 것이다. 그의 말이 모두 맞기도 하고 그의 진심 어린 충고가 고맙기도 하다.
쓰지 않는 옷가지와 잘못 가지고 온 가이드북을 싸서 한 곳에 모으니 그것만으로도 꽤나 무겁다. 이만큼의 짐을 덜어 산티아고로 보내 놓고 가볍게 걸으면 발도 더 나을 것 같다. 까미노 위에선 짐의 무게가 인생의 무게라 하더니만 배낭 속엔 진짜 쓸 데 없이 짊어진 것들이 많다. 인생에서도 쓸 곳이라고 없는 짐을 지고 가면서 어려워하는 것은 아닐까? 까미노에서도 욕심 때문에 내려놓지 못한 짐이 이토록 나를 아프게 하는데, 인생이라고 그렇지 않을 리가 없다.


시간이 많고 사람은 없어 저녁을 만들어 먹고 싶지만, 오늘이 일요일이라 작은 마을에는 문을 여는 메르까도가 없다. 알베르게 근처의 바에 가서 오랜만에 메뉴델페레그리노(Menu del Peregrino)를 주문한다. 바에선 말이 잘 안 통해서 주문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을 지경이다. 다른 손님들은 사람들은 맥주나 마시며 TV의 축구경기에 열중하고 있는데, 순례자 두 명만 오랜만의 정찬과 와인에 감사하며 이른 저녁을 먹는다.
오후에는 알베르게에 세 명의 순례자가 더 들어온다. 모두 한 번쯤은 같은 알베르게에 묵은 적이 있어 구면이다. 가냘픈 몸에 나이가 지긋하고 얼굴이 많이 그을린 스페인 할머니도 여기에 묵는다. 수줍은 듯 눈인사만 하는 분인데도 다시 만나니 반갑다.


어둠이 내린 후 오스피탈레로 아저씨는 퇴근하고, 알베르게 일층 휴게실의 벽난로 앞에서 몸을 덥히며 책을 읽는다. 까미노에서 다시 읽기 시작한 <그리스인 조르바>가 때로는 이만큼 밖에 안 되는 나를 비웃기도 하고, 때로는 힘들어도 그대로 주저앉지는 말라고 격려하기도 한다. 온갖 길을 걷는다고 생각해도 아직 걷지 못한 길이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는데 막상 내일 버스를 타야 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가라앉는다. 만일 조르바가 들었다면 내키는 대로 하면 되지 그게 무슨 걱정거리나 되느냐고 면박을 줄 것 같지만 말이다.
책을 덮고 방으로 올라가 누워도 금방 잠이 오지 않는다. 이 생각 저 생각에 뒤척이는데 난데없이 옆 침대의 스페인 할머니가 소근 소근 혼잣말로 하시는 기도소리가 들린다.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는 없는 간절한 속삭임이 침대 위를 날아와 내 마음에 닿는다. 보름달이 뜬 건지 은은한 달빛이 밤새 창문을 두드린다.



정리 = 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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