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속에서 운다/네 발도 아니고 두 발로 서서 운다(…)무덤 속에서 배가 터진다/무덤 속에서 추한 찌개처럼 끓는다”(‘피어라 돼지’)
화자는 서시격인 ‘피어라 돼지’에서,“사실 나 돼지거든. 있지, 나 태어날 때부터 돼지였어”라고 고백으로 시작한다.
선방에서 면벽수행중인 화자의 머릿속은 온통 슬픔과 불안으로 가득차 있다. 스님은 마음속 돼지를 끌어내고 돼지우릴 청소하라고 말한다. 돼지더러 돼지를 끌어내라니 아이러니하다. 생각은 집요하게 따라붙는다.
“고개를 들어본 적 없는 예예 돼지. 밤하늘 드넓은 궁창을 우러르기만 해도 무서워 뒈져버리는 돼지. 돼지는 돼지는 돼지라고 생각하는 뒈지는 돼지”
왜 내가 벽을 보고 나를 버려야 하는걸까. 스님의 죽봉이 어깨를 친다.
돼지는 도처에 있다. “아빠는 숫자를 멋는 돼지고요. 엄마는 엉덩이가 뺨에 달린 돼지에요.”(‘어두운 깔깔 클럽’), ”나는 돼지인줄 모르는 선생이에요 매일 칠판에 구정물만 그리죠“(‘돼지禪’).
2부 ‘글씨가 아프다’에서 시인은 죽음의 구덩이에서 종국에는 다시 돼지로 부활하는 무수한 돼지들의 징표를 부적, 시, 제문, 예언, 알레고리 같은 기호에 담아낸다. 이어 세상의 모든 약한 존재자들을, 죽음과 부활을, 사랑과 욕망을, 성과 식을 제 몸에 구현한 다면체 돼지의 출현을 생생하게 그린다.
이번 시집 ‘피어라 돼지’는 지난 2월 말 프랑스에서 출판사 에디시옹 시르세를 통해 불어로 번역,출간됐다. 시인은 3월17일 파리도서전에 참석한 데 이어 3월21일부터 낭트 등 몇몇 도시를 돌며 순회낭독회를 갖는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