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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마아파트’가 사라지고 있다
70·80년대 택지개발사업 일환 조성
현재 상계주공등 1만3000여가구 남아
빠른 노후화 진행에 대부분 재건축
남은 곳은 지역슬럼화 우려도


그래픽 디자이너 정다와(34) 씨는 틈날 때마다 아파트 사진을 찍는다. 특히 5층짜리 저층아파트를 렌즈에 담는다. 재건축을 앞둔 수십여 곳을 찾아 사진 수천장을 남겼다. 가장 최근엔 강남구 개포동 주공아파트를 훑었다.

왜 하필 저층아파트일까. 그는 “어린 시절 경험했던 저층아파트 사람들의 삶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 공간에서 다양한 삶이 모여 어떤 문화를 이뤘는데, 재건축을 거치면 그런 부분이 사라지는 게 아쉬웠고 기록으로 남기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2단지’가 철거된 자리에서 부지 정리작업이 진행 중이다. 여기엔 35층짜리 초고층 아
파트가 새로 들어선다./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정 씨와 같은 사람들의 아쉬움과 애정을 뒤로하고 5층 이하 ‘꼬마 아파트’들은 야금야금 줄어 들고 있다. 특히 과거 정부와 서울시가 계획적으로 공급했던 대단지 저층아파트 대부분은 이미 재건축을 끝마쳤거나 사업 막바지 단계에 있다.

개포동 일대에 자리 잡은 개포주공아파트는 저층아파트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다. 일대에서 재건축 사업이 가장 빨리 진행됐던 2단지는 32개 동(1400여가구)은 흔적도 없이 철거됐다. 흙이 드러난 이 자리에선 굴착기와 덤프트럭이 부지를 정리하고 있다. 3년 뒤에는 35층짜리 매끈한 새 아파트가 솟아오른다.

나머지 개포1ㆍ3ㆍ4단지와 시영아파트(총 1만1000여가구)도 올해와 내년 사이에 순차적으로 철거와 새 아파트 착공이 진행된다.

강동구에선 이주를 마친 고덕주공2단지를 비롯해 저층 아파트로 구성된 3~7단지에서 약 8400여가구가 허물어진다. 단지 안 조경수가 아파트 키를 훌쩍 넘어서는 저층단지 특유의 풍경을 보는 일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한때 서민들의 동경의 대상=수도(首都)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집이 턱없이 부족했다. 정부와 서울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70~80년대에 서울 곳곳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만들었다. 1976년 나온 ‘아파트지구 개발사업’과 1980년대 ‘택지개발사업’은 대표적인 택지조성 프로젝트였다.

아파트지구 개발사업은 ‘저밀도’(5층 이하)와 ‘고밀도’(10~15층)로 나눠 관리ㆍ진행됐다. 잠실, 청담ㆍ도곡, 화곡, 암사ㆍ명일, 반포지구 등 5개 지구가 저밀도 아파트지구로 선정돼 5층짜리 저층아파트 5만여가구가 건설됐다.

이보다 늦게 시작된 택지개발사업은 서울의 외곽인 상계, 개포, 고덕, 목동을 지구로 묶어 대규모 아파트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였다. 단지별로 저층과 중층이 뒤섞인 형태로 만들어졌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현재 서울연구원)이 2008년 낸 보고서에 따르면 저밀도 아파트지구에 조성된 저층아파트의 평균 용적률은 93.1% 수준에 그쳤다. 또 대부분의 가구가 전용면적 40㎡ 내외의 소형면적으로만 구성됐다. 노후한 단독주택이나 다가구주택에 사는 서민들에게 쾌적한 주거환경을 제공하겠다는 취지에 어울리는 구조였다.

신혼시절이던 1983년에 송파구 ‘잠실시영’ 13평(전용면적 41㎡ 내외)을 매입해 들어간 김 모(57)씨는 “처음엔 동대문에 살다가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당시 1350만원을 주고 이사 왔다”며 “신혼부부나 어린 자식을 둔 이웃들이 많았는데 교류하면서 정감 있게 살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낡아가는 아파트…슬럼화 우려=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에는 현재 1990년 이전 준공된 약 4만5000여가구의 저층아파트가 있다.

주민들이 재건축조합이나 추진위원회를 꾸려서 정비사업 절차를 밟고 있는 3만여가구를 제외하면 이 숫자는 1만3000여가구 수준으로 크게 줄어든다.

이 가운데 소위 ‘사업성’ 측면에서 시장의 조명을 받는 곳은 노원구 상계동에 있는 주공아파트 저층단지(1~3ㆍ5ㆍ10ㆍ14단지),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저층단지(7ㆍ11ㆍ12단지) 정도다. 주택 수요가 몰리는 지역인 데다 기반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추가 용적률을 높여 더 많은 일반분양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80년대 후반에 준공된 터라 재건축 연한이 도래하는 내년 이후부터는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저층아파트는 서대문구, 용산구, 강서구, 관악구 등에 흩어져 있다. 대개 한두개 동으로만 구성된 소규모 ‘나홀로 단지’들이다. 전체 가구수가 40~60가구에 그쳐 단지로 부르기에 어색한 곳들도 수두룩하다.

이 가운데엔 80년대 후반에 준공돼 재건축이 가능한 연한이 도래하면 사업에 들어갈 수 있는 곳도 있지만 여건이 녹록지 않은 곳도 많다.

서대문구 연희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연희동과 북아현동에만 수십가구짜리 저층아파트가 대여섯 군데 되는데 소유주들이 소극적이기도 하고 주변 주민들하고 협의도 잘 안 돼서 정비를 엄두도 못 내는 상황”이라며 “제대로 수리도 이뤄지지 않은 채 낡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저밀도ㆍ저층 아파트라고 해서 전부 다 사업성이 좋은 건 아니다. 오히려 강남 이외의 일부 지역에서는 정비사업의 동력을 얻지 못하면서 주택의 노후화가 빠르게 진행돼 지역 슬럼화 현상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박준규 기자/n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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