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인간 패배의 날, 인간들은 쓴잔을 들이켰다
알파고 승리에 시민들 씁쓸·당혹


프로 바둑 기사 이세돌 9단이 돌을 던지는 순간, TV나 컴퓨터 중계를 보던 사람들의 입에서는 짧은 탄식이 터져나왔다. 단순히 응원하던 스포츠 선수의 패배가 아니었다. 인간이 만든 기계가 인간을 뛰어넘고 나아가 인간이 지배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나온 한탄이었다.

일부 시민들은 “인류가 기계에 패배한 날, 술이라도 마셔야겠다”며 주점으로 향했다.

많은 시민들은 알파고의 승리에 대해 허탈함과 함께 불안감을 느꼈다고 했다. 택시기사를 하는 송원갑 (67) 씨는 “많은 영역에서 기계가 사람의 자리를 빼앗고 있는데 바둑도 그렇게 된 것 같다”며 “기계가 사람을 지배하는 세상이 곧 도래하겠다고 느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오늘 패배를 교훈 삼아 이세돌이 꼭 이겼으면 좋겠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주부 이희숙(52ㆍ여) 씨 역시 “바둑은 그래도 게임이니까 이렇게 사람들끼리 속닥대고 말겠지만 공장이나 연구소 같은 데서 물건을 만드는 것이나 연구하는 것마저 더 잘하게 된다면 거기 있는 사람들은 있어야 할 이유가 사라질 것”이라며 인공지능 발달에 의해 단순 노동 뿐 아니라 숙련 노동자마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을 우려했다.

많은 이들은 인공지능을 가진 컴퓨터에 의해 인간이 종속당하거나 전멸되는 ‘매트릭스’나 ‘터미네이터’ 등 디스토피아 SFㅁ 영화를 떠올리기도 했다. 성미정(26ㆍ여) 씨는 “나도 모르게 인간과 인공지능 대결에 편가르기를 해 인간 편을 들고 있더라”며 “인공지능에게 패배한 역사를 안고 사는 세대가 되고 싶지 않았다”고 허탈감을 드러냈다.

알파고의 승리는 이미 예견된 것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대학원생 강병철(27) 씨는 “어차피 바둑도 돌을 놓는 수는 한정되어 있고, 컴퓨터가 이론적으로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할 수 있으면 컴퓨터가 무조건 이기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러나 여전히 인간의 두뇌의 능력를 믿는 이들도 있었다. 대학생 윤치호(26) 씨는 “솔직히 말해 이번 경기에선 이세돌 9단이 최선을 다하는 것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며 “남은 4경기는 이 9단이 가볍게 이길 것”이라고 자신했다.

원호연 기자/why37@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