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프리즘] 아듀, 전세난민
어수선한 봄의 문턱, 가속 페달을 세게 밟지 않길 잘했다. 라디오의 기습 선곡에 마음이 흔들렸다. ‘지금도 못 잊었다면/거짓이라 말하겠지만/이렇게 당신을 그리워하며/헤매이고 있어요…’ 20년 전 쯤 나온 노래 ‘그 사랑이 울고 있어요’였다. 못잊은 사랑 따위를 떠올린 게 아니다. 여의도에서 원효대교를 타고 용산으로 가던 중 귀에 들어온 옛 가요일 뿐이다. 한강의 이쪽이든 저쪽이든 빼곡히 늘어선 아파트 중 ‘내 것’은 없다는 무소유의 자괴감이 가수의 처연한 목소리 때문에 부풀어 올랐다.

노래는 속삭였다. ‘당신은 행복을 위하여/돌아서야 했나요/내 모든 꿈들은 사라져 갔어도….’ 행복. 기복신앙 차원에서도 그 많은 부모들이 기원했던 것이다. ‘국민 행복시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을 국가적 캐치프레이즈로 격상한 건 현 정부의 수장이다.

“어차피 전세 시대는 가게 되는 것”, “전세라는 것은 하나의 옛날의 추억이 될 것”(박근혜 대통령ㆍ2월 23일 국정과제 세미나)

귀를 의심했다. 지지율로 현세(現世)를 살아야 하는 대통령의 입에서 나올 법한 문장인가해서다. 18.6%. 이 정부 집권 3년 동안 전세가가 이 만큼 올랐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전셋값 탓에 서울을 등지는 인구가 많다는 건 이미 클리셰(상투적인 말) 수준이다. “어떻게 해야 돼요? 8000만원 올려 달라네요” 액수만 다를 뿐 지금 이 시각에도 전셋값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는 이들의 숫자를 셀 수 없다.

정부의 답은 나와 있다. “기업형 임대주택(뉴스테이)이나 이런 쪽으로 가야 한다”, “뉴스테이라는 이름도 멋있지 않나. 사실 뜨려면 이름이 좋아야 된다”(박 대통령)


전세대책? 현 정부에선 금기어쯤 된다. 한 언론이 이 대책에 관해 거론했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전혀 검토되고 있지 않다’다. 특별히 ‘전혀’에 강조점이 붙었다. 이전 정권 소속 공무원(그들은 역대 모든 정권의 핵심 멤버다)들이 전세난을 풀기 위해 머리를 쥐어짰던 것과 판이하다. 전세는 ‘아오안(아웃 오브 안중ㆍ안중에 없다)’이란 거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국회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패러디해 전세난의 현주소를 본다. 주(主) 발언자는 전세난 관련 기사의 네이버 댓글(A)이고, 피쳐링은 이석현 국회 부의장(B)ㆍ조원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C)다.

A:서울 깨끗한 아파트는 부자들 사는 곳이다. 꿈 좀 버려라 아줌마들아.

C:(B를 향해)전혀 아닌 사실을 이런 식으로 하시면 안 됩니다.

B:그렇게 말하는 국민도 있다고 표현하고 있잖습니까.

저금리 시대여서 전세가 ‘멸종위기종’이란 건 대세다. 집주인이 은행이자로 벌 돈이 없으니, 월세로 눈을 돌린다. 문제는 연착륙이다. 수 십년간 전세의 이점을 체득한 서민들에게 묘책없이 월세로 갈아타라는 건 무리다. 최고 정책결정자는 뉴스테이에 의존해전세에 관한 한 의식의 액셀러레이터를 너무 깊게 밟았다. 한 건설사 임원이 말했다. “대통령이 전세든 월세든 살아봤대요? 뉴스테이…. 시범타죠. 이 정권 끝나는 2018년 이후에 뉴스테이 맡은 기업들이 계속할지 보시죠”
 
hongi@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