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의 부인 노순애 여사가 28일 오후 9시 39분 향년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SK그룹은 노순애 여사는 SK그룹 창업의 종잣돈이 된 ‘인견 열한 고리’를 찾게 한 지혜로운 아내로, 조용한 내조로 대주주 일가의 화목을 일궈낸 큰 어른이라고 설명했다.
노순애 여사는 1928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났다. 교하 노씨 규수로 1949년 4월 22세에 수성 최씨 장손이었던 두 살 연상의 최종건 창업회장을 만나 백년가약을 맺었다. 최종건 회장의 큰누이 고 최양분 여사가 노순애 여사의 조용하고 얌전한 태도가 마음에 들어 아버지 최학배 공에게 적극 추천했던 것이다.
결혼한 이듬해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한강 방어선이 무너진 지 채 24시간도 못돼서 전화(戰禍)가 수원까지 닥치자 최종건회장은 동생 최종현회장, 아버지 최학배 공과 함께 잠시 집을 떠나 피난길에 올랐다. 노순애 여사는 맏며느리로서 남편을 대신해 시어머니와 함께 집을 지켰다.
그 해 9월 서울이 수복된 후 집으로 돌아온 최종건 회장은 만삭이 된 아내를 데리고 처가가 있는 용인으로 향했다. 추수기라 일손이 바쁜 때였으므로 친정에 가 있으라는 시어머니의 배려였다. 노순애 여사는 대화 중에 자연스럽게 공장얘기와 서울 창고에 사두었던 인견사는 어떻게 됐겠느냐는 이야기를 꺼냈다.
이에 최종건 회장은 곧바로 서울 창신동에 있는 창고를 들러, 천만다행으로 폐허 속에서도 고스란히 놓여잇던 인견사 열 한 고리를 찾았다. 노순애 여사의 한 마디로 되찾은 이 열 한 고리의 인견사가 바로 오늘날 SK그룹을 있게 한 종잣돈이 된 것이다.
노순애 여사는 평소 말수가 적고 나서는 것을 무척 꺼려했다. 특히 가정 일에는 한 치의 소홀함이 없었으며 넉넉한 시골 인심을 느끼게 하는 스타일이었다. 최종건회장이 창업초기시절 한 달 동안 공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재건에 힘쓸 때에도 노순애 여사는 집에 오지 않는 남편을 원망 한 마디 없이 묵묵히 지켰다.
뿐만 아니라 종갓집 맏며느리로서 수많은 제사를 비롯한 집안의 안살림 외에도 고생하는 직원들을 위해 손수 식사를 챙기기도 하는 등 자신의 고달픔보다는 남편과 자식들, 그리고 시동생, 시누이까지도 챙기는 전형적인 한국 여인이었다.
최종건 회장은 기분 좋게 술이 취해 집에 돌아오면 아내 노순애 여사의 손을 잡고 거실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했다. 춤을 추다가 더욱 기분이 좋아지면 아이들을 거실로 불러 내 큰딸에게 피아노를 치게 하고 아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단란하고도 행복한 가정의 바탕에는 노순애 여사의 헌신적인 가족애가 있었다.
노순애 여사는 보살계까지 받은 신실한 불교신도로 법명(法名)을 정법행(正法行)이다. 남편 최종건 회장의 병세가 악화돼 요양하고 있을 때, 비록 남편의 병이 의학적으로는 어쩔 수 없을지 몰라도 부처님의 대자대비로 틀림없이 쾌유될 것을 믿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 별세 후에는 줄곧 불공을 드리며 남편의 명복을 빌었다. 대기업회장 부인이지만 호강을 누려볼 기회도 없이 남편을 떠나 보낸 노순애 여사는 이러한 불심으로 일가친척의 화목을 일궈낸 집안의 큰 어른이었다.
결혼 24년 만인 1973년 최종건 창업회장과 사별하고 지난 2000년에는 큰 아들 최윤원 회장을 후두암으로 먼저 보내는 슬픔을 겪기도 한 노 여사는 2002년 둘째 아들 최신원회장과 함께 사재를 출연해 장학재단인 ‘선경최종건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에 취임해 후학 양성과 사회봉사활동을 펼쳐왔다.
노순애 여사는 2016년 1월 28일 89세의 일기로 영면했으며, 고인의 유족으로는 최신원SKC회장, 최창원SK케미칼 부회장, 그리고 딸 최정원, 최혜원, 최지원, 최예정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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