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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아미 기자의 제주섬 표류기ㆍ끝] ‘제주 난민’들을 정말 화나게 만들었던 것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아휴 여기 전쟁터야. 무슨 폭격 맞은 거 같아.”

바로 뒷 줄에서 서 있던 한 여성이 전화통화로 이같이 말하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사흘만에 항공기 운항이 재개된 25일 오후. 이전까지 혼란은 비할 바가 아니었다. 진짜 전쟁은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비행기 티켓을 받으려는 수만명의 체류자들이 한꺼번에 제주공항으로 몰려 들었다. ‘발권 전쟁’은 폭설보다 더한 재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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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미 기자의 제주섬 표류기②] 사흘만에 열린 하늘길…이 또한 지나가리라


제주공항 25일 모습.

▶진짜 전쟁은 지금부터 시작= ‘23일 결항된 승객 중 대기번호 1-700번 손님은 17~19시, 700번 이후 손님 18~20시, 그리고 대기하지 않은 결항 손님은 19~21시 출발 김포 또는 인천 특별기로 모실 예정입니다. 탑승을 원하는 고객께서는 최소 1시간 30분 전 공항 도착하여 수속을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아시아나항공으로부터 문자를 받은 건 오후 2시 22분. 23일 오후 5시 45분 제주발 김포행 비행편이 결항됐던 기자는 25일 밤 9시 10분 김포행 비행기를 확약해 놓은 상태였다.

일부 저가항공사들이 결항 승객들을 현장 대기시켜 혼란을 빚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은 결항이 시작된 23일 탑승 예정자부터 차례대로 자동 예약하게 했다.

그런데 아시아나항공도 대기번호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저 문자를 받은 이후였다. 혼란스러워졌다. 대기번호는 뭐고, 자동 예약되는 건 뭔가.

안내 문자를 받자마자 곧장 호텔 체크아웃을 한 뒤 렌터카를 반납했다. 밤 9시 10분 비행기였고, 문자에 따르자면 1시간 전까지만 공항에 도착하면 되는 것이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단 서둘러 공항으로 갔다.

▶기다리라…?=오후 4시 30분경. 이미 각 항공사 창구 앞에서부터 대기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있었다. 카트를 연결시켜 노숙 자리를 펴 놓았던 사람들과, 박스 노숙을 했던 사람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가운데 대기 행렬이 뒤섞여 대혼잡을 이뤘고, 카트나 캐리어를 밀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대기 행렬과 부딪힐 때마다 짜증 혹은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가 ‘문자 안내’, ‘자동 예약’ 시스템 등으로 타 항공사에 비해 불편을 덜어주긴 했지만, 승객들 입장에서 기약없는 줄서기를 해야 하는 건 결국 전 항공사가 마찬가지였다.

기자 일행도 ‘아시아나 줄’ 맨 끝을 찾아 합류했다. 2시간이 넘게 기다렸다. 대기줄이 게이트 앞에 정체돼 있는 동안에는 밀려드는 인파에 끊임없이 치여야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비행편 확약을 받은 상태에서도 이렇게 계속 기다려야 하는 건가. 일행 중 하나가 창구 상황을 살펴보고 오겠다고 나섰다. 몇번을 왔다갔다 하더니 결국 7시 15분 특별기(OZ8420)로 출발 시간을 2시간 가량 앞당긴 티켓을 손에 쥐고 돌아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새치기’가 가능한 건가. 내용을 들어보니 비행시간이 촉박한 사람들을 위한 별도 창구가 있었는데, 그 쪽으로는 대기자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직원에게 얘기하니 더 빠른 비행편으로 교환도 가능했다.

▶‘제주 난민’들을 정말 화나게 하는 것들=예고된 재앙은 차곡차곡 순서대로 진행됐다. 수속과 발권, 짐을 부치는 데에도 3시간 가량 걸렸지만, 비행기 탑승 후에도 활주로에서 1시간 가량을 보내고 난 9시 50분이 돼서야 비로소 이륙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비행기들이 2~3시간 가량 출발 지연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공항으로 몰려 들었고, 기다림이 계속되는 건 당연했다.

사실 천재지변으로 비행기가 결항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공항 내 체류객들에게 간식을 배급하면서 수량 제한을 뒀다거나 하는 건 문제가 될 것도 아니었다.

‘변’을 키운 건 사건이 벌어진 이후 수습 과정이었다. ‘원칙’이 없었다. 각 항공사들마다 현장 대기와 문자 안내가 제각각이었고, 문자 안내 역시 하염없이 기다리고만 있어야 했다는 것. ‘기다리라’는 말이 불렀던 과거 참사가 떠올랐다면 지나칠까. 기다리는 것이 원칙이지만, 끝까지 기다리지만은 않았기에 조금이라도 더 빠른 비행편을 얻을 수 있었던 아이러니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결항된 승객들은 어디서 어떻게 얼마동안 기다리면 되는지 물어볼 수 있는 곳이 한군데도 없었다는 점이다. 지자체, 공항공사, 항공사 어느 곳도 책임있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게다가 비행편 자동안내 시스템이었다면 왜 ‘e티켓’ 같은 건 발급하지 않았던 걸까. 문자로 티켓 발권을 해 줬더라면 수만명의 체류객들이 급작스럽게 공항으로 몰리는 일은 피할 수도 있었다. 아니면 최소한 문자 전송만이라도 결항 순서대로 시간 차이를 두고 했더라면 23일 결항 승객과 24일 결항 승객이 한꺼번에 몰려들지 않았을지 모른다.

55시간에 걸친 기자의 제주섬 표류기는 끝났다. 그러나 26일 오전 8시 현재, 제주공항에는 퀭한 눈, 떡진 머리, 피곤에 찌든 체류객들이 아직 남아 있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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