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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아미 기자의 제주표류기] 렌터가 반납연기는 천운, 하룻밤은 구했는데, 다음은...
[헤럴드경제(제주)=김아미 기자] “오후 5시 45분 비행기 어떻게 되는 건가요?”

“5시 45분 비행기는 없는데요? 오후 4시 비행기와 오후 8시 비행기가 있습니다.”

그럴리가 없었다. 분명 제주에서 김포가는 아시아나항공 토요일 오후 5시 45분 비행기편을 예약해 놓은 터였다. 다시 한번 확인해보겠다는 직원. 잠시 후 수화기 너머 목소리.

“죄송합니다. 5시 45분 비행기는 결항돼서 없는 걸로 나왔습니다. 오늘 제주에서 김포가는 5시 45분 항공편은 결항입니다. 이후 비행 일정도 불투명한 상태입니다. 다른 날짜로 다시 예약하시겠습니까?”
 
우려가 현실이 됐다. ‘1월 23일 제주출발 김포도착 8986편이 기상으로 결항되었습니다’라는 문자를 받은 건 오후 2시 25분. 비행 시간을 고작 3시간 남짓 앞둔 때였다.

항공 결항은 난생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것도 폭설이라는 ‘천재지변’ 그 한 가운데서 말이다.

일요일 김포행 비행편은 이미 폭설 이전부터 만석이었고, 따라서 예약 가능한 가장 빠른 다음 비행편은 월요일 오전 8시 5분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빠른 판단이 필요했다. 이대로 렌터카를 반납하고 공항으로 가서 기약없는 ‘뻗치기’를 할 것이냐. 아니면 월요일 출근 및 중요 기자간담회 일정 등을 포기하고 눌러앉아 제주섬 표류기를 쓸 것이냐.

결국 판단의 저울은 후자로 기울었다. 온전히 타의에 의해, 정확히는 하늘의 뜻에 의해. 

사진=제주 표류 첫날 숙소였던 메종글래드호텔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항공기 결항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성산일출봉에서 제주공항까지 약 50㎞. 렌트한 차량으로 30㎞ 정도를 가는데 이미 2시간 반이 소요된 상황이었다.

타이어에 체인 장착같은 건 당연히 해본 적 없었다. 도로는 급속도로 얼어붙었고, 잠깐 동안 세워놓았던 차를 다시 출발하려고 시동을 밟았을 땐 타이어가 헛바퀴를 돌았다.

그래도 빠른 판단은 고생을 줄여줬다. 일단 렌터카를 반납하지 않기로 했다. 숙박 어플리케이션으로 당일 예약 가능한 공항 인근 호텔도 재빠르게 예약했다. 다행히 패키지 할인 이벤트를 하고 있는 호텔이었다.

아시아나 콜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십여분만에 직원과 통화 연결이 됐고, 항공편은 25일(월요일) 오전 8시 5분으로 확약을 걸어뒀다.

공항을 십여킬로미터 가량 남겨놓은 상황에서 내비게이션 도착지를 제주공항에서 공항 인근 호텔로 급선회했다.

‘부디 숙소까지만….’

엉금엉금 기어가기를 한시간 남짓. 드디어 호텔에 도착했다.

로비를 가득 메운 사람들. 단체로 제주도에 왔다가 단체로 항공기가 결항돼 단체로 호텔로 들어온 사람들이다.

23일 오후 3시. ‘금일 제주공항 강설 및 강풍예보가 하루종일 예보되어 있어 항공편들이 순차적으로 결항되고 있습니다. 금일 대기는 힘든 상황이며 익일 기상예보도 좋지 않아 월요일 이후로 변경해주시기 바랍니다.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23일 오후 7시 11분. ‘내일(24일)도 예보상 항공기 운항불가가 예상됩니다. 운항 재개시에는 문자로 재전송해드리겠습니다.’

항공 폐쇄와 결항이 계속되고 있다는 안내 문자를 받으며 발빠르게 숙소를 잡은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제주항공 폐쇄 첫날 공항을 빠져나오지 못해 종이 박스 노숙을 한 사람들의 숫자가 1000여명. 만약 그대로 렌터카를 반납하고 공항으로 갔더라면, 교통편이 없어 공항을 빠져나오지도 못한 채 노숙 대열에 합류해야 했을 터였다. 
사진=주차해놓은 차들 위로 눈이 수북히 쌓여있다.
사진= 차선은 눈이 덮혀 사라져 버렸고, 자동차들은 거북이 운행을 하고 있다.


▶기약없는 제주섬 표류기…육지 밟을 날은 언제=이튿날. 눈발은 사그라들기는 커녕 더욱 무서운 기세로 굵어졌다.

24일 오전 8시 48분. ‘금일 강풍 및 강설로 인해 13시 출발편까지는 전편 결항되었으며 이후편 운항 여부는 불투명합니다.’

24일 오전 11시 35분. ‘제주항공 악기상으로 내일(25일) 09시까지 공항 활주로가 폐쇄되었습니다. 탑승 가능 5시간전에 문자로 재안내드리겠습니다.’

저녁 9시 30분경. 25일 오후 8시까지 또다시 제주공항 폐쇄가 연장이 결정됐다. 당연히 예약을 걸어둔 25일 오전 항공편도 날아갔다.

두번째로 콜센터에 전화를 걸었을 땐 30분 넘게 대기를 해야 했다. 가까스로 직원과 통화 연결. 예약 가능한 날짜는 27일 수요일 밤 9시 5분 인천행이었다.

이쯤되면 말 그대로 기약없는 표류다. 눈 앞이 캄캄해졌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긍정의 마인드로 시간을 보내기엔 제주섬은 감옥같은 ‘겨울왕국’이다.

또다시 숙박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하룻밤 더 묵을 곳을 골랐다. 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에 전날보다 조금 저렴한 호텔을 구하기로 했다.

표류 이튿날 숙소로 정한 곳은 신라스테이 제주. 업체 측에 물어보니 결항 고객들에 한해 연박이 무료로 제공된다고 했다. 천만(!)다행이었다.

숙소는 정했으나 ‘할 일’도 ‘갈 곳’도 없었다. 32년만에 폭설이 내린 제주도는 곳곳이 ‘화이트 아웃’ 상태다. 음식점 대부분이 문을 닫았고, 공항 근처 내국인들이 갈만한 몰(Mall)도 마땅히 없었다.

일단 시간을 때우기 위해 시내 극장으로 향했다. 2016년 골든글로브 작품상과 남우주연상(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 빛나는 영화 ‘레버넌트’를 보기로 했다.

이런! 살인적인 혹한을 뚫고 살아 돌아온 남자의 이야기다. 내용을 알았으면 보지 않았을 영화다. 영화마저 끝끝내 봄이 오는 것을 보여주지 않고 끝났다.

제주 하늘 뒤덮은 눈구름 사라질 날 언제일까. 눈 그친다고 바로 비행기 뜰 수 있을까. 시내 곳곳에서 제설 작업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것도 원망스럽고, 항공 폐쇄 결정이 찔끔찔끔 이뤄지는 것도 화가 난다.

24일 밤 10시 30분 현재. 눈발은 더욱 굵어지고 있다. 
사진= 24일 밤이 되자 눈발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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