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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몸에 새겨진 트라우마…나에게 집중할때 치유될 수 있다
평온한 호흡·신체이완된 상태 유지
요가 통해 증상 완화 효과 입증
가슴 조여올땐 신체감각에 주의 집중
감정변화 느껴지고 통제능력도 향상



아들을 폭행하고 시신을 훼손한 부모의 왜곡된 친권이 사회문제화되고 있는 가운데 당사자 역시 어릴 적 많이 맞고 자랐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학대받은 아이, 가정 폭력은 심각한 심리적 상처를 남기고 결국 자기통제력을 빼앗아 파국을 낳는다는 사실을 또 한번 방증한 셈이다.

인간은 놀라운 회복력으로 역경과 재난을 딛고 제자리로 돌아오지만 정신적 외상 경험은 사라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당시 상황의 위험을 암시하는 신호가 잡히면 다시 활성화되고 뇌회로를 뒤흔들어 놓는 것이다.


외상후 스트레스 분야 최고의 권위자인 베셀 반 데어 콜크 보스턴 의과대 교수의 신작 ‘몸은 기억한다’는 저자가 70년대 말 보훈병원에서 베트남 참전군인을 대상으로 처음 클리닉을 연 경험에서 시작한다. 당시만 해도 외상후 스트레스라는 진단명이 없었다.

콜크 교수는 참전 군인 21명을 대상으로 로르샤흐 검사를 실시했다. 잉크방울이 번지는 모습을 보고 난 반응에서 21명 중 16명의 군인이 전시 상황에서 겪은 트라우마를 다시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5명의 반응은 더 놀라웠다. 아예 머릿속이 하예진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 검사를 통해 저자는 정신적 외상을 입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책은 저자가 처음으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환자를 진료한 때부터 최근까지 다양한 임상사례를 통해 트라우마가 어떻게 뇌를 변화시키고 몸에 물리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체계적으로 들려준다. 또 저자가 시도해본 다양한 치료방식의 결과들이 들어있다.

트라우마 장애를 안고 있는 이들은 상처 입은 과거 속에 묶여 현재를 살지 못한다. 뇌는 위급한 상황이 되면 신체를 방어 모드로 전환시켜 비상체제로 돌입하는데, 트라우마 장애가 생기면 24시간 비상체제를 유지하려 든다. 그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 그 상태로 살 수는 없으므로 우리 몸은 비상체제 돌입시 방어하게 만드는 뇌부분의 기능을 멈추게 한다. 그래서 진짜 위험한 일이 생겨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게 되거나 엉뚱한 것에 반응하게 된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 뇌는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되고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게 된다. 

“정신적 외상이 발생하는 기본적인 과정에 관한 폭넓은 정보가 밝혀지면서 증상을 완화시키거나 손상을 원상 복구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도 열렸다.(…) 사회의 일원인 우리 모두가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트라우마 예방에 충실히 임했으면 한다.“(‘몸은 기억한다’에서)

흔히 일상에서 겪는 일들은 대부분 곧바로 잊히지만 모욕을 당하거나 끔찍한 일이 벌어지면 그 사건에 대한 강렬한 기억이 정확하게 오래 남는다. 분비된 아드레날린의 양이 많을수록 기억도 더 정확하게 남는다. 하지만 이것도 어느 정도 범위까지만 적용된다. 공포감을 느끼면 특히 ’피할 수 없는 충격‘으로 두려움을 느끼면서 이 시스템도 제압돼 망가져버린다.

사건이 발생한 트라우마 상황을 재현한 신경과학 실험을 보면 뇌가 어떻게 바뀌는지 알 수 있다.

실험실에서 소리와 이미지, 감각을 정신적 트라우마가 발생한 실제상황처럼 재현하자 기억은 바로 활성화됐다. 이와 동시에 감정을 말로 표현할 때 활성화되는 영역과 현재 자신의 위치를 인지하는 영역이 포함된 전두엽이 작동을 멈춘다.새로 유입되는 감각의 정보를 통합하는 시상도 작동을 멈춘다. 이런 상태가 되면 의식적인 조절이 불가능하고 정서적 뇌가 지휘권을 장악하게 된다. 정서적 흥분 상태가 되는 것이다. 정상적인 상황에선 이성적 뇌와 정서적 뇌가 협력해 하나로 통합된 반응을 만들지만 과잉 흥분 상태에선 균형이 깨진다. 새로 유입된 정보를 적절히 저장하고 통합하는데 필요한 다른 외영역과의 연결도 끊어진다. 즉 이성적 뇌가 정서적 뇌를 적절히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상처가 수시로 현재에 출현하는 고통스런 상황에서 벗어날 길은 없을까?

이를 변화시키려면 우선 정서적 뇌에 의식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저자는 약물 이용에 앞서 감정을 느끼는 방식을 바꾸는게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호흡하고 노래하고 움직이는 활동을 통해 각성체계를 직접 훈련하는 것이다. 저자는 10주간 요가를 하면 어떤 치료로도 효과가 없었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이 크게 감소한다는 사실을 들려준다. 또 평온하게 호흡하고 신체가 대체로 이완된 상태를 유지하도록 만드는 법을 배우는 것도 유익하다.

저자가 들려주는 치료와 회복의 핵심은 바로 자각이다. 우선 심장이 부서지고 뱃속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참을 수 없는 느낌과 가슴을 조여 오는 신체 감각에 주의를 집중한다. 그러면 시시각각 변화하는 감정을 인지할 수 있고 그 감정들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도 향상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신체감각을 관찰하고 견딜 수 있어야 안전하게 다시 과거와 마주할 수 있다.

뇌파신경치료도 도움이 된다. 4개월간 뇌파신경치료를 한 10세 아이의 그림을 보면 처음에는 가족 초상화를 그린 게 3세 수준이었던 게 점점 정교하게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세월호와 메르스 등 개인적 트라우마뿐 아니라 사회적 트라우마도 우리에겐 마주해야 할 문제다. 저자는 “정신적 외상을 남긴 과거의 잔재에 대한 통제력을 쥐고 자기 자신이라는 배의 선장으로 되돌아가는 게 해결책”이라고 밝혔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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