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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국내 미술시장 뒤흔드는 ‘이우환 위작설’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이우환 위작’ 논란이 병신년 벽두부터 국내 미술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경찰에 의해 위작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엔 작품 감정서가 위조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15일 K옥션(대표 이상규)에서 열린 정기 겨울경매에서 4억9000만원에 개인 컬렉터에게 낙찰된 1978년작 ‘점으로부터 No. 780217’의 작품 감정서가 위조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감정서가 조작된 것으로 밝혀진 이우환 화백의 1978년작 ‘점으로부터 No. 780217’. [사진제공=K옥션]

K옥션은 국내 최고 화랑인 현대화랑을 모체로 하고 있는 경매회사여서, 이우환이라는 한국 현대미술 거장 뿐만 아니라, 국내 메이저 경매회사, 거대 화랑까지 줄줄이 굴욕을 면치 못하게 됐다.

현재까진 감정서 위조만 결론이 난 상태다. 작품 진위 여부는 조사 중에 있다.


▶감정서 진위여부도 확인 안해…국내 메이저 경매회사 압수수색 ‘굴욕’=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와 복수의 미술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5일 K옥션은 경찰 압수수색을 받았다. 경매 관련 자료는 물론 문제가 된 이우환 작품 한 점을 압수당했다. 이우환 위작 사건을 조사해오던 경찰은 이에 앞선 지난해 10월과 12월 위작 유통 의혹이 제기된 화랑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한 바 있다. 화랑에 이어 국내 메이저 경매회사에 대한 압수수색이 펼쳐진 것.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미술품 경매회사로써는 치명타를 입은 셈이다.

K옥션의 가장 큰 실책은 감정서 진위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데 있다. 문제의 감정서는 내고 박생광의 작품 감정서 틀에, 운보 김기창의 작품 접수번호를 합성한 가짜로 밝혀졌다. K옥션 측은 “감정서까지 검증을 못한 시스템에 실수가 있었다”고 자인했다.

2012년 이후 이우환 위작설이 국내 미술시장에 떠돌기 시작하면서부터 한국감정협회는 공식적인 이우환 작품 진위 감정을 중단한 상태였다. 이후 미술계에서는 박명자 현대화랑 회장과 신옥진 공간화랑 사장이 이 화백 작품 감정을 대신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모 기업 수장인 박 회장 말만 믿고 검증에 안일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에 대해 이상규 K옥션 대표는 “초기에는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이 화백을 직접 찾아가 진품 여부를 사인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 화백 작품 거래가 많아지자 일일이 그런 과정을 거칠 수 없었기 때문에, 감정협회 측에서 현대화랑에 이 화백 작품을 가져다 놓으면 이 화백이 가끔 들러 작품을 봐 주고, 오케이를 하면 감정서를 내 보내기도 했다”면서 “이 화백이 박 회장, 신 사장에게 위임장을 써줬지만, 두 분이 검토만 하다가 끝났기 때문에 작품 감정을 대신해 왔다는 건 사실과는 다르다”라고 해명했다.

▶모든 문제의 시작은 이우환 화백이었다?=“컬렉터 한 분이 그러더라고요. 이 모든 책임은 이우환이 져야한다고 한다고요. 본인이 직접 ‘내가 본 작품은 모두 진짜’라고 해서 분란을 일으켰다는 거죠.”

미술계 인사 A씨의 말이다.

미술계에서는 이 화백이 애초에 나서지 말았어야 한다는 쪽과, 이제라도 나서서 진위 여부를 덮지 말고 제대로 밝혀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갈린다.

전자의 경우 작품 감정에 대한 것은 감정 전문가들의 영역에 맡기고 작가는 감정에 나서지 않는 게 작가 자신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는 논리다.

A씨는 “시장에 무수히 떠도는 가짜 작품들은 작가가 판단하기 쉽지 않을 만큼 교묘한 것들이 많다. 작가가 섣불리 나서 진위를 판단하면 위험하다”며 “가짜를 진짜라고 오판해서 서류를 떼 주는 순간 진짜마저 가짜라는 의혹을 받게 되고 작가에 대한 신뢰는 순식간에 무너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후자의 경우에는 이제라도 이 화백이 직접 나서 모든 상황을 정리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미술계 또 다른 인사 B씨는 “그동안 이 화백의 입장 자체가 클리어하지 않았던 것 같다”면서 “내가 본 것 중 위작은 없다는 식으로 살짝 발을 빼는 듯한 모양새를 취했기 때문에 이를 악용하는 세력들이 더 커졌다. 공개시장 말고 딜러들을 통해 움직이는 시장에서 떠도는 가짜들까지 이 화백이 다 알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제라도 진위를 명확히 밝히거나, 밝힐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전문기관의 판단에 맡기는 등 정확한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조작된 감정서(맨 왼쪽)와 김기창, 박생광 작품의 원본 감정서. [사진제공=한국화랑협회]

▶끊이지 않는 위작 논란…도대체 왜?=미술품 위작은 어제 오늘 문제가 아니다.

B씨는 “예전에는 암암리에 거래되던 미술품이 지금은 경매, 아트페어 등을 통해 공개 시장에서 거래되다 보니 문제가 드러나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개되지 않은 시장에서의 위작 거래가 상당히 많다”면서 “과거 한 갤러리 고객이 밀린 공사대금 대신 미술품을 받아 와 진품이냐고 묻는 경우가 있었는데 100이면 99 대납받은 미술품은 다 가짜였다”고 말했다.

미술계 또 다른 C씨는 감정서 위조가 K옥션의 일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경매회사에서도 작품 감정서 위조 문제가 거래 전에 발견된 일이 있었다”면서 “작품 사이즈 등 정보는 다 똑같은데 작품 색깔만 바꿔치기 해 감정협회에 재검증을 받고 위작임을 밝혀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결국 문제는 부실한 감정시스템이다. 현재 국내에서 실질적인 미술품 감정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곳은 사단법인 한국미술품감정협회 부설기관인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과 한국고미술협회 두 곳 정도다.

감정평가원에서는 한국화랑협회와 한국미술품감정협회 소속 인원 7~10명이 주 2회 감정 업무에 참여해 작품 진위 여부를 판단하고 문서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미술품감정협회에 따르면 하루 보통 5점에서 많게는 20점 정도를 감정하고, 감정 당일 오후에 서류를 작성한다.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는 판단을 보류하기도 한다.

문제는 작품 진위 여부 판단이 ‘전문가’로 불리는 이들의 경험적 지식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생존 작가의 경우 작가의 판단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작가가 진짜라고 해 버리면 위작도 진품이 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진품의 원본 감정서가 유실된 경우가 많고, 이럴 경우 감정서를 쉽게 재발행 해주는 관행도 문제로 지적된다.

미술계 인사 D씨는 “국내에서는 비용을 지불하고 진품임을 확인 받으면 감정서를 재발행해 주는데, 이 때문에 감정서 위조가 쉽게 이뤄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위조범들이 진품에 대한 감정서 재발행을 요구한 후 원본을 받으면 이것을 조작해 위작 작품의 감정서로 둔갑시킨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 쿠사마 야요이 같은 경우 재단에서 작가의 작품 진위 여부를 데이터에 의해 확인은 해주지만 원본 감정서는 절대 재발행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결국 ‘화랑 소유한 경매회사’ 구조적 문제?=미술계 일부에서는 화랑을 소유한 경매회사의 ‘공정거래’ 문제도 함께 제기하고 있다.

현재 국내 양대 경매회사인 서울옥션과 K옥션은 각각 국내 굴지의 화랑 가나화랑과 현대화랑을 모체로 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상장사인 서울옥션은 이호재 가나아트 회장(서울옥션 회장)을 비롯한 장남 이정용 씨, 차남 이정봉 씨에 이 회장의 손자까지 가족 및 친인척들이 지분 33.64%를 보유하고 있다. 비상장사인 K옥션 역시 현대화랑의 장남 도현순 씨와 박 회장의 남편 도진규 씨 등 가족이 지분 57%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관계사 형태지만 실질적인 소유주는 화랑인 셈이다.

미술계에서는 현대화랑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우환 작가의 작품에 대한 감정서 위조 논란이 현대화랑이 대주주로 있는 K옥션에서 벌어지게 된 데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

미술계 한 인사는 “경매회사가 화랑을 갖고 있게 되면 경매를 통해서 화랑 소속 작가들의 작품 가격 조작과 담합이 얼마든지 가능해진다”며 “이번 사건 같은 경우도 옥션과 화랑의 유착관계로 인해 곪았던 게 결국 터진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경찰 수사가 지지부진 한 것도 문제로 지적했다.

그는 “해당 작가를 취급하는 화랑과 그렇지 않은 화랑 사이의 묘한 반목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면서 “한쪽에서는 빨리 수사하라고 떠들고 한쪽에서는 미술시장 회복을 위해서 조용히 덮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미술시장에서는 온갖 루머가 떠돌고 있는데, 하루라도 빨리 경찰이 명확하게 수사 결과를 발표해야 이러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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