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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공포와 불안감이 주식(主食)이 된 일상
1988 쌍문동엔 공포가 있었을까? 저 멀리 한켠에 묵혀 있던 골목길의 추억을 끄집어낸 인기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기억하는 골목길엔 공포가 없기 때문이다. 같이 웃고 같이 우는 그런 지극히 일상적인 ‘희로애락’이 담겨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골목길이 마냥 우리네 기억회로 속 ‘희로애락’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루탄이라는 ‘정치적 공포’를 피해 달리던 미로같은 골목길은 출구 없는 공포감의 시작이자 끝의 공간이곤 했다.

공포는 칠정(七情)인 ‘희로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 중 네 번째 구(懼)다. 구(懼)는 의미 부분인 心(마음 심)과 발음 및 의미 부분인 瞿(볼 구)가 합해진 말로, 마음(心)이 놀라 두 눈(目目)을 크게 뜨고 새()처럼 두리번거리며 보는 심정을 뜻한다. 그만큼 공포는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며, 인간 보통의 감성이다.

하지만, 2016년 세밑 정서를 이끌고 있는 ‘공포’는 사뭇 다르다. 테러에 대한 공포를 시작 으로 중국발 경제위기에 대한 공포, 북한 수소폭탄 실험에 대한 공포…. 공포의 대상은 한 둘이 아니다. 마치 만국공용의, 만물의 꼬리표 마냥 따라 다닌다. 

한 마디로 ‘공포의 시대’다. 하다못해 “공포가 일상이 된 시대를 살고 있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테러는 더 이상 저 멀리 이역만리 중동 일부 지역의 서글픈 일상이 아니다. 테러에 대한 공포는 미국, 유럽 전역으로 수출되고 있고, 어느 새 한국인의 마음 한 켠에도 테러에 대한 공포가 숨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이고 해외 테러 기사를 찾아 읽고, 공포를 느낀다.

중국의 위안화 절하로 인한 글로벌 주식시장의 폭락 역시 ‘공포’의 대상이기는 마찬가지다. 신문지 한 장에 의지해 지하철 역사에 웅크린 채 밤을 지새워야 했던 외환위기 당시의 공포감도 다시 치환되고 있다. 가뜩이나 살기 힘든데, 언제 잘릴지 모르는데, 언제 취직할지 모르는데…현재에 대한,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어느새 공포심으로 옷을 갈아 입고 있다.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 역시 만만치 않은 공포다. 하늘을 나는 요새로 불리는 B-52 전략 폭격기가 한반도 상공을 날고, 바다에는 핵 항공모함이 떠다닌다. 언제 한반도가 핵폭탄의 불구덩이가 될 지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는 실제적인 공포가 되고 있다.

공포는 지극히 자연스런 감정이지만, 극에 달하면 이단을 낳기 마련이다. 9ㆍ11 테러 이후 공포와 두려움이 극에 달한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주자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그렇다. 인간의 합리적인 이성의 잣대로 보면 쉽사리 이해가 안간다. 하지만 트럼프의 거침없는 막말과 행동은 미국인의 가슴 속 응어리로 남은 공포를 먹고 산다. 공포의 역설이다.

이제 선거판도 얼마 남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트럼프 처럼 ‘공포’를 먹고 살지 모른다. 또 다른 공포를 낳지 않기 위해선 ‘공포’를 먹고 사는 이들을 경계해야 한다. 그게 공포를 살고 있는 우리가 자식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다. 

hanimom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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