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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증의 라면②]절대 강자 없는 춘추전국시대…‘모디슈머’가 승부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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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정환ㆍ김성훈 기자] “라면 먹으면서 운동했어요”

1986년 아시안게임에서 육상 3관왕을 차지한 임춘애 선수의 우승소감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된다. 그 때 라면은 가난의 상징이었다.

라면은 1963년 9월 국내에 처음 출시됐다. 삼양식품의 창립자인 고(故) 전중윤 회장이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라면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음식이라고 할 수 없는 5원짜리 ‘꿀꿀이죽’을 서민들이 먹는 걸 목격하면서다. 그는 과거 일본에서 라면을 시식한 걸 기억하고, 이게 식량문제 해결의 유일한 길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삼양라면의 출고가격은 개당 10원. 어려운 식량사정과 고가의 곡물가를 고려, 가난한 서민들도 손쉽게 먹을 수 있도록 가격을 정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라면은 국내 면의 대표주자로 올라섰다.

현재와 같은 매운 맛 라면 시장은 1980년대 이후 형성됐다. 수프 맛에 연구개발(R&D)이 집중되면서 한국 라면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매운맛 라면이 나온 것이다.

대표적인 매운 맛 라면은 바로 ‘신(辛)라면’이다. 한국의 대표 먹거리로 자리잡으면서 때로는 훌륭한 간식으로, 때로는 식사용으로 한국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올 초 블룸버그와 시장조사기관인 유로모니터는 한국인의 1인당 면류 소비량을 연간 9.7kg으로 집계했다. 면 강국인 일본(9.4kg)을 제치고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라면시장 부동의 1위인 신라면은 1986년 출시돼 30년 가까이 시장을 호령하고 있다. 그만큼 라면 시장은 보수적이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2004~2013년 한국인이 좋아하는 라면 브랜드 1~5위는 신라면, 삼양라면, 안성탕면, 너구리, 진라면이다.

하지만 이들 ‘빅5’도 언제까지 안주할 수는 없는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2010년까지 점유율 88%에 달하던 이들 라면은 최근 71%로 17%포인트나 떨어졌다. 새로운 맛과 프로모션으로 무장한 ‘신(新) 라면’이 해마다 출시되면서 이들 빅5의 아성이 무너지고 있다. 라면의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라면의 새로운 시대를 예고한 건 지난 2011년 출시된 ‘꼬꼬면’이다. 지상파방송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개그맨 이경규가 만든 것으로 알려진 꼬꼬면은 빨간 국물 일색이던 라면시장에 ‘하얀국물’ 열풍을 일으키며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했다. 당시 꼬꼬면은 지난해 과자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허니버터칩’ 못지 않았다. 출시 한 달 만에 6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품귀현상을 일으켰고, 수많은 ‘미투(Me too) 제품’을 양산했다.

이후 국물 없는 ‘모디슈머’들이 SNS를 통해 자신만의 요리 비법을 앞다퉈 공유하면서 입소문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봤다. 장수제품 중 하나인 비빔면은 ‘골빔면(비빔면+골뱅이) ’참빔면(비빔면+참치)‘ 등으로 재탄생했다. 모디슈머란 제조사에서 제시하는 표준방법대로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해 내는 소비자를 말한다.

라면시장의 지각 변동은 식음료 업계에 부는 ‘매스티지(masstige)’ 바람과 무관치 않다. 매스티지(Masstige)는 대중(Mass)과 명품(Prestige Product)의 합성어로,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고품질 제품이나 서비스 등을 즐기고자 하는 실속형 소비를 의미한다.

최근 먹방ㆍ쿡방의 인기로 ‘작은 사치’를 누릴 수 있는 먹거리에 기꺼이 투자하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프리미엄급 라면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 끼를 먹더라도 근사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메뉴로 탈바꿈하면서 점점 고급화되어 가고 있다.

최근 메스티지족을 사로잡은 건 농심의 ‘짜왕’이다. 지난 4월 출시된 농심 짜왕은 굵고 쫄깃한 면발과 불맛이 느껴지는 진한 풍미의 간짜장 소스로 소비자들의 입맛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출시 한 달 만에 국내 라면시장 2위로 올라서고, 한달 매출만 100억원을 넘어설 정도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찬바람이 불면서 프리미엄 짜장라면의 경쟁은 오뚜기 진짬뽕 등 프리미엄 짬뽕라면으로 옮겨 와 업체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라면업계 관계자는 “1인가구의 증가로 간편식 시장이 성장하면서 자신만의 레시피로 한 끼를 해결하려는 모디슈머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라면 시장도 모디슈머 트렌드에 힘입어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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