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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김숨 “소설은 힘들게 썼는데 나한테도 감동스럽지 않으면 고통”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 ‘원고지 2200매, 책 360쪽’

소설가 김숨(41)의 ‘바느질하는 여자’(문학과지성사)를 받아들고 조금 웃었다.

엉뚱하다. 그리고 ‘김숨답다’고 생각했다.

요즘 소설의 길이는 경장편이 대세이다. 원고지 5, 600매, 손에 잡기 쉽고 후루룩 가볍게 읽는게 요즘 트렌드다. 심지어 150매도 있다. 소설가 황석영은 최근 ‘해질 무렵’을 내면서 700매를 넘겼는데 너무 길다고 560매로 줄였다고 했다. 

소설가 김숨. 
사진=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그런데 한 손으로 잡기에 버거운 소설이라니.

16일 헤럴드스퀘어에서 만난 작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더한 얘기를 했다.

“이것도 줄어든 거에요. 원래 3000매까지 갈 거라 생각했어요. 쓰고 싶은 얘기가 더 많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진이 빠져서 초고를 출판사에 얼른 보내버렸어요.”

‘바느질하는 여자’는 말 그대로 바느질로 생계를 꾸리는 여자들의 얘기다. 오래 전, 시장통에 형성돼 있던 한복가게 등에서 일하는 바느질 품으로 쌀과 밀가루를 버는 여자들의 얘기다. 누비 바느질만으로 자신의 긴 인생을 살아내는 수덕과 그녀의 배 다른 두 딸, 화순과 금택 이 사는 ‘우물집’을 중심으로 얘기가 펼쳐지지만 위 아래, 옆으로 바늘이야기는 확산된다. 제 손으로 옷을 지어 입었던 부령할매와 미싱이 들어오기 시작한 엄마 수덕, 예술로 평가받기 시작하는 금택의 세대까지 3대의 바늘에 대한 집념과 사랑, 두려움, 30여명의 수다한 바느질하는 여자들의 삶까지 작가는 묵묵히 엮어간다.

소설 속 수덕은 바느질 손이 맵기로 입소문이 나 있다. 옷을 지어 입으러 촌구석까지 손님들이 찾아든다. 그렇다고 세상이 알아주는 명장은 아니다. 작가는 그런 바느질하는 여자들이야말로 진짜 명장이라고 말한다.

“그 분들이 귀한 거죠. 못배우고 체계적으로 풀어낼 수 없어서 그런거지. 인생을 바쳐서 해온 따라갈 수 없는 뭐가 있잖아요. 육화된 기술 그런 게…”

홈질을 무한반복하고 있는 바느질하는 여자들을 따라가다보면 작가 김숨을 보는 듯하다. 무명과 광목, 양단 등 작가가 펼쳐놓는 천과 바느질의 이야기는 다채롭고 미묘한 맛을 준다.

김숨이 바늘을 잡은 건 십자수, 퀼트, 스웨덴 자수 등 요즘 여자들이 좋아하는 바느질이 아니라 전통 침선인 누비 바늘이다.

오로지 똑같은 한땀 한땀으로서만이 옷이 지어지는 정직한 바느질이다.

“ 저한테는 바늘을 업으로 살아가는 여자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와요. 천도 좋아해요. 제가 좋아하는 대상들이어서 저절로 인연이 닿은 것 같아요.”

소설 쓰는 9개월동안 김숨은 바느질을 배우러 다녔다. 바늘 잡는 법, 매듭짓는 법, 누비 바느질의 기초를 배웠다.

작가가 자연스럽게 마치 누비 바늘을 쥔 듯 가볍게 천을 뜨는 동작을 선보였다.깃털이 한번 팔랑거린 듯 했다.

김숨은 소설짓기와 누비 바느질이 비슷하다고 했다. 우선 둘다 뭔가 만들어내는 점에서 그렇다.

“홀로 앉아서 버티는 거잖아요. 왜냐면 그래야 한 땀이라도 뜨니까. 시간을 잡아먹는 것도 똑같아요. 손은 동적인데 몸은 정적인 것도 그렇고.”

그런데 둘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바느질은 잘하든 못하든 옷을 지으면 누군가를 주거나 내가 입을 수 있고 만족스러운 거 같아요. 소설은 그렇지 않잖아요. 옷은 잘 만들었든 그렇지 않든 정성을 다해서 만들면 가치가 발생하는데 소설은 힘들게 썼는데 나 자신에게도 감동스럽지 않으면 고통스럽죠.”

소설 속의 바느질 하는 여자들은 하루 10시간, 20일에서 한달 꼬박 땀을 떠야 옷 한벌을 짓는다.

소설은 어떻까. 김숨은 오전 5시간, 9개월만에 소설 한 권을 지었다.

똑같은 바느질이지만 바늘을 쥔 사람에 따라 바느질은 제각각이다. 누구는 손이 매워 곱고 단정하고 아름답지만 또 누구는 투박한대로 멋이 있는 경우도 있다.

소설짓기도 다르지 않은 듯 하다.

올해 한국소설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독자의 취향이 달라졌다고 작가가 그걸 따라가야 할까.

“좋은 소설은 누군가 찾아 읽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요. 쓰는 사람은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한 노력을 하는 수 밖에 없는 거고요. 독자에서 출발하느냐, 나에서 출발하느냐 할 때, 저는 저에서 출발한다고 말해요. 독자와 만나는 선이 내 가까이 있으면 좋지만 멀리 있는 걸 억지로 끌어올 수 는 없는 거 같아요. 그렇게 되면 나의 세계도 잃는게 아닐까해서….”

작가는 얼마전 서점에서 톨스토이의 ‘부활’을 잠깐 보다 놀랐다고 했다. “이렇게 좋을 수가”

“마흔이 돼서 새삼 그걸 안 거에요. 고전이라는 거 읽기 쉽지 않거든요. 쉽고 가볍게 쓰는게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보편적이고 인생의 근원적인 걸 독자들에게 던져주느냐, 문학적으로 자기만의 스타일로 전해주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소설가 김숨. 
사진=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김숨은 40대의 글쓰기에 대해 “편한게 있다”고 했다.

“더 이해하고 쓰는 거죠. 나이가 어렸을 때는 지나쳤던 타인의 인생과정을 감정이입 없이 고스란히 알게 되는 것, 소설가에게 나이드는 것은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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