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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색화, 가격 얼마나 오를 것인가보다 중요한 건 시장 폭 넓히는 것”
- 정윤아 크리스티 스페셜리스트 인터뷰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세계 미술시장 정상에 오른 한국 작가들(The Koreans at the Top of the Art World)’.

미국 유력 주간지 ‘뉴요커(Newyorker)’가 9월 30일(현지시간)자로 보도한 기사의 제목이다. 뉴요커는 뉴욕 록펠러센터 크리스티 웨스트갤러리에서 열린 ‘한국 현대추상미술과 단색화(Forming Nature : Tansaekhwa Korean Abstract Art)’ 그룹전을 비중있게 소개했다. 

11월 28일 열린 홍콩 크리스티 이브닝 세일에서 김환기 작품이 경매에 부쳐지고 있다. [사진(홍콩)=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크리스티 측에 따르면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뉴욕타임즈나 월스트리트저널이 크리스티, 소더비 경매를 정기적으로 보도하는 것과 달리, 뉴요커는 관련 보도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

이는 블룸앤포, 페로탱, 페이스, 티나킴 등 뉴욕 블루칩 갤러리들이 잇달아 한국 단색화 전시를 여는 것을 세계 미술사의 유의미한 현상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 뉴욕 록펠러센터 1층에 위치한 크리스티 웨스트갤러리에서 한국 단색화 전시가 열렸다. [사진제공=정윤아]

지난 11월 28일 홍콩에서 열린 크리스티 이브닝 세일에서 김환기, 윤형근, 정상화, 박서보의 작품 6점이 Lot 넘버 1부터 6까지 올라 화제가 됐다. 6점 모두 열띤 경합을 벌였고 솔드아웃 됐다.

이보다 앞서 크리스티는 뉴욕(10월 6일~25일)과 홍콩(10월 8일~12월 4일)에서 각각 한국 현대추상미술과 단색화 그룹전을 열었다. 김환기, 이성자, 박서보, 정상화, 윤형근, 이우환, 하종현, 정창섭을 소개하는 전시였다. 

홍콩 크리스티 갤러리에서 열린 한국 단색화 전시 전경. [사진제공=정윤아]

뉴욕과 홍콩 전시, 단색화 경매를 총괄한 건 정윤아(46) 크리스티 스페셜리스트(Associate vice president)다. 정 씨는 20년 가까이 뉴욕과 한국에서 갤러리스트, 아트 컨설턴트로 일하다가 지난 2011년부터 크리스티에 몸 담고 있다.

정 씨를 7일 헤럴드 본사에서 만났다. 그에게 세계 미술시장에서 한국 단색화 열풍의 정확한 원인과 전망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달 28일 홍콩 크리스티 이브닝 세일에서 780만홍콩달러에 낙찰된 박서보의 묘법.

▶최근 뉴요커에서도 한국 단색화 기사를 비중있게 보도했다.

-뉴욕에서 단색화 작가들의 개인전, 혹은 소규모 그룹전은 있었지만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그룹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스페셜 이슈만 다루는 뉴요커에서 크리스티 경매 기사가 나간 것도 10년만이었다. 피카소나 모딜리아니의 최고가 경신 기사도 다루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최근 급속도로 서구 메이저 갤러리들이 관심을 가지니까 뉴요커도 이러한 현상을 의미있게 본 것 같다.

▶홍콩과 뉴욕 전시는 어땠나.

-김환기, 이성자 작품은 비매로 전시장에 내놨다. 사실 이번 전시는 판매 목적보다도 좋은 작품들을 보여주는 게 더 중요했다. 두 작가의 작품을 제외한 단색화 작품들은 대부분 판매됐다. 아시아는 물론 미국, 유럽 컬렉터들이 많이 샀다.

▶해외 컬렉터들은 왜 단색화를 좋아하나.

-서양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는 세련된 비주얼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 동양적인 정신성(Spritual)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단색화는 자세히 보면 볼수록 굉장히 명상적이다. 서구적이면서도 동양적인 것, 그것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다.

▶서구 모노크롬과 많이 다른가.

-서양 사상은 이분법에 바탕을 둔다. 서구 모노크롬 역시 다색에 대한 반대 개념이다. 인간과 자연, 주체와 객체, 나와 너를 대립적으로 본다. 반면 동양적인 사상은 대립이 아닌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단색화는 다색의 반대 개념으로써 단색이 아니라 자연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한 결과로써의 단색이다. 박서보는 사이 톰블리(Cy Twombly), 하종현은 로버트 라이먼(Robert Ryman), 윤형근은 마크 로스코(Mark Rothko)와 종종 비견되지만, 그건 외적인 것만 봤을 때 이야기다. 인쇄물로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 작품을 보면 완전히 다르다. 예를 들어 사이 톰블리는 자신을 놓은 상태의 에너지로 즉흥적으로 그리지만, 박서보는 자신을 잃지 않은 상태로 수묵화를 그리듯 반복한다.

▶단색화를 주식시장의 뜨는 종목처럼 ‘돈’으로만 보는 이들도 있다

-여느 시장처럼, 미술시장 역시 저평가된 작품들을 재조명하려는 욕망이 있다. 예술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작품을 시장에서 재평가하고, 거기서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이윤을 시장 참여자들이 공유하는 것이다. 그것이 틀리다고는 할 수 없잖나. 재밌는 건 예술적으로 역사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작품들이 인위적으로 가격이 오르면 반드시 조정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충분히 검증된 단색화는 세계적으로 안정된 시장을 만들 수 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단색화 쏠림 현상 때문에 국내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는 불만도 있다

-미술 작품은 예술성에 대한 시장 전체의 암묵적인 합의가 있어야 장기적으로 폭넓고 안정적인 시장이 만들어진다. 일부 컬렉터들만 작품 좋다 해서는 시장이 형성되지 않는다. 단색화에만 관심이 치우쳐 있는 것 때문에 젊은 작가들은 불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서구 시장에서 단색화가 안정된 시장을 형성하면 한국 모던추상, 컨템포러리 분야까지 소개하기에도 더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정윤아 크리스티 스페셜리스트

▶단색화의 정신성이라는 건 어찌보면 부여된 의미 아닌가.

-서양 추상회화는 형태(Form)에 초점을 맞추지만 김환기나 이성자 같은 한국 추상화가들은 형태보다 내용(Contents)에 관심을 가졌다. 고유의 문화적 뿌리를 형태 속에 녹여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김환기의 점은 기하학적인 형태로써의 점이 아니라 한국의 자연이고 풍경이다. 그는 조국 하늘의 별을 생각하며 하나 하나 점을 찍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그림을 마주했을 때 작가의 마음을 느끼게 되고 한국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색화가 왜 좋은지 모르겠다면.

-미술에 대해 강박을 가질 필요가 없다. 대신 너무 빨리 내 취향을 결정해버려서도 안 된다. 마음을 닫으면 좋은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니까. 다만 정말 많이 봐야 한다. 미술은 많이 봐야만 스스로 확신(Confidence)이 생긴다. 보고 또 보고 했는데도 그 작품이 와 닿지 않으면 나와 궁합이 안 맞는거다. 판단을 내리기 전에 충분히 보고 즐기고, 그리고 그 이후 나의 취향에 대해서는 스스로를 존중해야 한다.

▶단색화는 얼마나 더 가격이 오를 것 같나.

-가격이 얼마나 더 오를 것인가보다 중요한 것은 시장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더 많은 지역의 더 많은 컬렉터들이 단색화와 한국의 모던 아트를 감상하는 것이 나의 관심사다. 꾸준히 수요가 발생하고 시장이 성장하면 자연히 가격도 오르게 될 것이다. 단색화는 아시아 시장에서는 구매가 활발하지만 아직 미국, 유럽 시장까지 궤도에 올랐다고 할 수 없다. 특히 2차 시장인 경매에서는 아직까지 생소하다. 현재 홍콩 크리스티에서 단색화를 주로 다루고 있지만, 앞으로는 뉴욕 메이저 경매에도 소개할 예정이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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