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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70. 시간이 멈춘 골목…중세 스페인을 만나다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계절때문에 산티아고길을 먼저 걷고 나서 본격적인 스페인 여행은 나중에 하려고 한다. 내일은 까미노가 시작되는 지점으로 이동해야해서 남는 하루동안 이곳 알베르게에서 만난 케이와 동행이 되어 마드리드 근교의 톨레도(Toledo)로 간다. 마드리드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50분쯤 걸리는 톨레도는 중세 스페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도시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하늘은 비가 올 것처럼 꾸물거리는데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는다. 버스에서 내려 톨레도 성안으로 가는 길에 바라본 마을은 전체가 빨간 지붕, 멋스런 분위기가 그대로 살아있어 중세 유럽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버스정류장에서 성안으로 한참동안 오른다. 숨차게 걸어 올라온 성밖의 모습도 위에서 내려다보니 아름답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낯설다는 말은 약간의 호기심과 두려움, 긴장감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새로운 공간속을 두 달이 넘게 여행하며 느끼는 ‘낯섦’은 이존의 그것과는 달라져있다. 두려움의 크기가 현저히 줄어들고 수용할 만한 새로운 자극과 신선함이 커지는 것이다.

산타페 박물관과 산타크루즈 박물관이 보이고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는데도 어떻게 할지를 몰라 한참을 헤맨다. 초행자의 방향감각이란 늘 이렇다. 박물관과 미술관에 들락날락하면서 그럭저럭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 물어서 길을 따라 올라간다, 시청의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아가니 그 앞이 드디어 톨레도 구시가의 중심인 소코도베르 광장(Plaza de Zocodover)이다.


광장은 다양한 건축양식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중세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풍경 속에 맥도날드도 보인다. 이런 저런 관광객용의 전통 공예품이나 가죽가게, 옷가게 등 상점들이 많고 그 중에는 특이하게도 중세 모습의 칼이나 방패를 파는 가게도 있다.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 길 한가운데에서 왼손에 책을 든 세르반테스(Cervantes) 동상을 발견한다. ‘돈키호테(Don Quixote)’ 발간 400주년 기념동상이다. 과연 스페인답다. 돈키호테의 나라에 온 게 실감난다.


소코도베르 광장에서 출발하는 빨간 ‘소꼬트렌(Zocotren)’에 올라탄다. 광장에서 출발해 통해 톨레도를 한 바퀴 도는 이 관광용 기차는 톨레도를 한 바퀴 돌며 전경을 보여준다. 소코트렌이 멈춘다. 잠시 내려 타호(Tajo)강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알칸타라 다리를 감상한다. 로마시대에 만들어져 이슬람인 무어 왕조 때 완공되었다고 한다. 아랍어로 ‘다리’라는 뜻의 ‘알칸타라’라는 이름도 무어 왕조 때부터 사용되었다. 다리 이름 하나에도 역사가 스며있다. 그만큼 기독교, 이슬람, 유대문화까지 이질적인 문화가 수용되고 보존된 곳이 톨레도이다.

소코트렌이 멈춰주는 뷰포인트마다 아름다운 톨레도를 바라볼 수 있다. 톨레도는 타호(Tajo)강의 북쪽에 위치하고 나머지 삼면은 강이 흐르는 천연요새다. 북쪽에 성만 쌓으면 외적이 침입할 수 없으니 일찍부터 스페인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시티투어 버스 같은 게 아닐까하고 타지 않을까 했는데 소코트렌을 탄 건 정말 잘 한 일이다.


다시 광장으로 돌아와 소코트렌에서 내리니 새파란 추위가 품속을 파고든다. 비가 내릴 듯, 진눈깨비가 쏟아질 듯 아슬아슬한 하늘은 잔뜩 찡그려있다. 따뜻한 게 그립고 배도 고파서 식당을 찾는다. 관광객을 상대하는 큰 식당은 메뉴도 비슷비슷하고 비싸기도 해서 패스하고 늘 그렇듯 현지인이 많이 갈 것 같은 곳을 찾는다. 스페인에서의 공식적인 첫 식사다. 뭘 주문해야할 지 몰라서 ‘메뉴 델 디아(menu del Dia-오늘의 메뉴)’를 주문한다. 허기 때문이라도 끼니를 때우게 되니 접시는 비워진다.


중세 분위기가 풍기는 톨레도의 골목들을 헤맨다. 시간이 멈춘 듯한 중세 거리와 골목마다 사람이 산다. 가다보면 막다른 골목에서 망연해 있는 우리에게 사람들이 빙그레 웃으며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르킨다. 단체 투어가 많은 듯 유명한 건물 앞에는 사람들이 엄숙한 얼굴로 귀 기울이며 가이드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길을 모르는 개별 여행자에겐 톨레도는 미로다. 미로인데 오르내려야 하는 미로라서 한 번 잘못 가면 되돌아오는 길이 힘들다. 점심 먹고 나서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다 길을 잃는다.

사람들에게 물으며 미로를 헤쳐 나가다 보니, 카테드랄이라 불리는 대성당(Catedral)이 나온다. 대성당(Catedral)은 이슬람 세력을 물리친 기념으로 이슬람사원이 있던 자리에 지은 성당이다. 이렇게 톨레도는 어디서든 그 역사와 함께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대성당 안의 모든 것이 그렇지만 스테인드글라스는 무척 아름답다. 성당 안은 예배를 할 수 있는 작은 성소들이 따로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게다가 엘 그레코(El Greco), 루벤스(Rubens), 고야(Goya), 벨라스케스(Velazqez)등의 대단한 화가들이 그린 성화들도 감상할 수 있으니 가히 ‘대성당’이 맞다. 남미에서도 그랬지만 남미나 유럽은 성당이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어서 꼭 들를 명소인 곳이 많다.


감탄하고 있는 옆의 서양인들이 이해가 된다. 종교가 다르거나 없다 해도, 살아온 문화의 배경이 이런 풍경인 저 사람들과 나는 느낌 자체가 다를 것이다. 물론 동양인인 대로, 종교가 없는 대로, 보이는 대로 보고 있는 여행자인 내 모습도 괜찮다.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가 들어있을 초 한 개 한 개가 모여서 타오르고 있는 모습에 시선이 간다. 간절함이라는 단어 앞에 마음을 놓아본다. 어디에 무엇을 보러갔더라도 결국 사람과 그 마음이 남는 게 여행이다.



창이라고는 스테인드글라스로 가려져 있으니 대성당 안은 어둡다. 어둠을 뚫고 저 높은 천정에서 마치 천국에서 내려오는 빛과 같은 한 줄기 빛이 들어오는 곳이 있다. 고개를 들어본다. 현란한 조각과 화려한 성화로 이루어진 ‘엘 트란스파렌테(El Transparente)’라는 채광창이 보인다.

대성당에서 나와 이베리아반도의 옛 도시를 만끽하며 골목을 돌아다닌다. 로마와 이슬람 문화가 공존하는 중세 스페인의 고도는 아름다우면서도 이색적이다. 길을 잃고 당황스레 마주하게 되는 느닷없는 풍경도 왠지 신기하기만 하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비는 다행히도 잠시 흩뿌리다가 멈춘다. 얼떨결에 빈 하루를 채우려고 왔던 톨레도에서 중세의 고즈넉함을 만나고 마드리드로 돌아가는 버스에 오른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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