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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 프리뷰] 누구를 위한 신(神)인가…진기종의 ‘무신론 보고서’
-12월 4일부터 2016년 1월 3일까지 갤러리현대서 진기종 개인전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신(神)은 도대체 왜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걸까.

가뭄에 콩 나듯 성당을 나가는 어린 아들도 말했다. “내가 저번에 기도했는데 하느님이 들어주지도 않더만.”

신은 기도를 잘 들어주지 않는다. 특히 ‘나’의 기도에 대해서 유독 인색하다. 그래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땐 신을 탓하게 된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묵주-003 Rosary-003, 캔버스에 유채, 162.1×259.1㎝, 2014 [사진제공=갤러리현대]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이 정말 계셔서 그 수많은 신자들의 기도에 성실한 태도로 응답했다면, 굶어죽는 사람도, 전쟁으로 죽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진기종(34) 작가 역시 비슷한 회의를 품었다. 이 땅의 모든 불행은 어쩌면 신이 없기 때문에 생긴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진기종 작가가 5년만에 개인전을 열었다. 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이라는 다소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들고서다. 근작과 신작들로 꾸며진 전시장은 다양한 매체를 자유자재로 쓰는 작가답게 회화는 물론, 3D 프린터를 이용한 조각, 디오라마(Dioramaㆍ축소 모형들로 만드는 하나의 장면), 렌티큘라(Lenticularㆍ보는 각도에 따라 변하는 그림)까지 볼거리가 가득하다. 

자유의 전사, 조각(실리콘 등), 150×90×140㎝(x2), 2015 [사진제공=갤러리현대]
신을 향한 항해, 조각(플라스틱, 나무 등), 150×80×80㎝, 2015 [사진제공=갤러리현대]


작가는 신이라는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의 근원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뉴욕타임즈에 실린 9ㆍ11테러 장면, 테러범들이 인질을 사살하는 장면들이 신문 위에 놓여진 묵주에 비춰지고(묵주, 2014), 5대 종교 지도자들이 목선을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지만 머리도 몸통도 없이 금장으로 치장한 껍데기만 있는(신을 향한 항해, 2015) 식이다.

하나의 신을 두고 예수와 무함마드로 갈라지고, 개신교와 이슬람이라는 이름으로 대립하는, 서방국과 이슬람국의 두 전사가 전쟁을 벌이기에 앞서 각자의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조각(자유의 전사, 2015)은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어야 끝나는 전쟁터에서 신은 과연 누구의 기도를 들어줘야 하는 것인지 묻는다.

음악제 무대감독, 영상제작 연출ㆍ감독 등 경력을 갖고 있는 진기종 작가의 디오라마 작품은 한 편의 영화처럼 시선을 사로 잡는다. 

UFO의 공격을 받은 슈퍼신의 광장 시리즈, 렌티큘라, 79×140㎝, 2015 [사진제공=갤러리현대]


5대 종교가 합쳐진 가상의 ‘슈퍼신’을 만들고, 슈퍼신을 섬기는 사제들과 외계인들이 전투를 벌이는 상황(UFO의 공격을 받은 슈퍼신의 광장, 2015)은 영화 ‘스타워즈’처럼 호기심을 자극한다. 물론 그 안을 들여다보면 사제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하는 외계인들의 아비규환이 있다. 외계 생명체를 부인하는 사제들의 은폐와 조작의 현장이다.

진기종의 무신론 보고서는 무거운 주제를 다뤘지만 위트와 유머를 잃지 않았다. 특히 6채널 실시간 비디오 설치작업 ‘4GOT-묵시록의 4기사’는 진기종 식 유머의 결정체다. 각각의 오브제 설치를 실시간으로 찍어 6컷의 장면으로 보여주는 시사풍자 만화 포맷인데, 2011년에도 선보인 바 있는 작품을 살짝 변형해 이번 전시에도 내 놨다. 

UFO의 공격을 받은 슈퍼신의 광장, 디오라마(혼합 매체), 360×165×50㎝, 2015 [사진제공=갤러리현대]


등장인물은 히틀러, 조지 부시, 빈 라덴, 오바마까지 4명이다. 기근, 전쟁, 정복, 죽음과 같은 근ㆍ현대사의 재앙 한 가운데 있는, 신의 권위와 맞먹는 세계적인 권력자들이다. 이들이 나누는 시시껄렁한 대화를 통해 권력과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회의를 드러낸다.

히틀러 : (달걀들을 모아 놓고) 거짓말을 하려면 크게 해라. 그래야 사람들이 믿을 것이다.

조지 부시 : (구름 위에 누워서) 내가 공군 조종사 시절 2만피트 상공에서 닭의 무리를 보곤 했지. 정말 장관이었어. 

빈 라덴 : (오바마를 가리키며) 야 임마, 너도 결국은 미국 대통령이야.

전시는 2016년 1월 3일까지. 미련할만큼 ‘농업적 근면성’이 투철한 젊은 작가의 작품들을 통해 신과 대화해보시길.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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