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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얼푸드 내츄럴] 브런치, 딘치…일상의 여유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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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내가 일 하는 이유야”. 몰아쳤던 마감시간이 마치 남의 일이었던 것처럼 꽤 평화로운 점심시간이었다. 친한 동료들과 함께 여의도 가운데 한 레스토랑에 앉아서 마감 후의 여유를 즐기고 있을 때였다.

올데이브런치(all-day-brunch, 시간과 관계없이 브런치 메뉴를 제공하는 것)를 주문하니 곧 근사한 와인 잔에 물이 담기고, 샐러드와 프렌치 토스트, 소시지 등이 잘 플레이팅 된 한 접시가 테이블 위에 놓이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한 접시지만 괜히 이 브런치 한 접시에 모두의 얼굴에 여유로움이 찾아들었다. 

[사진출처=123rf]

열심히 일한 나를 위해서 기꺼이 누리고 싶은 호사같은 것이랄까. 함께 테이블을 나눠 앉은 동료가 말했다. “단지 나를 위해서 쓰고 싶을 때 쓰기 위해서 일하는 거야. 일 안하면 이런 건 눈치보여서(비싸서) 잘 못먹는다고”. 눈치를 보게되는 당사자는 물론 동료의 남편이다.

브런치라는 말이 낯설지가 않다. 아침식사와 점심식사의 합성어인 브런치는 표현하자면 실컷 자고 일어난 후 아침과 점심 사이에 먹는 식사 정도가 될테다.

매주 주말, 해가 중천에 뜰 때쯤 느그적거리며 일어난 허기진 가족들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 국수를 삶아주곤 했던 엄마를 떠올리면 사실 ‘브런치’는 어려울 것도, 낯설 것도 없다. 우리나라에 브런치 문화가 자리잡기 시작한지 10년이 됐다. 유러피안, 아메리칸 등 각국의 브런치 메뉴를 내 건 레스토랑과 카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메뉴도 다양해졌다. 기존 오믈렛이나 팬케이크 등 미국식 브런치에서 이제는 볶음밥이나 파스타 등까지 브런치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시간∙공간적 제약도 없어지는 추세다. ‘아점’ 외에도 언제든 브런치를 즐기고, 카페나 레스토랑뿐 아니라 집에서도 직접 요리해먹는 ‘홈 브런치 족’도 늘고 있다. 누군가는 사치라고 하지만, 누군가에겐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고, 일상의 여유로 자리잡은 브런치에 대해 이야기 해 본다. 

[사진출처=123rf]

▶‘고급 오찬 메뉴’서 ‘누구나 즐기는 가벼운 식사 메뉴’로=국내에 브런치가 도입된 것은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호텔 레스토랑을 통해서다. 재즈공연 등을 곁들인 뷔페 형식이 일반적이었다. 국내 체류 외국인 기업인이나 외교관, 유학생 등 해외거주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주로 찾았다.

물론 가격이나 분위기 탓에 일반인들이 즐기기엔 아무래도 문턱이 높았던 것이 사실. 하물며 지금 대중레스토랑에서 만날 수 있는 브런치 메뉴들도 결코 저렴하지만은 않다.

브런치 대중화의 싹이 트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다. 2004년 주5일 근무제의 본격적인 시행은 브런치 대중화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길어진 주말 덕에 가족과 함께 밖에서 식사를 하거나 지인들과 모임을 갖는 사람들이 늘면서 외식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외식문화가 다양해지면서 고깃집 위주의 저녁 외식이 낮 시간으로 옮겨오고, 가족이나 지인들과 함께 낮에 가벼운 식사를 하며 모임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에 발 맞춰 2000년대 초중반부터 이태원과 청담동, 신사동 등 트렌디한 상권을 중심으로 브런치 카페들이 속속 생겨났다. 오믈렛, 팬케이크 등 미국식 브런치 카페의 원조 격인 이태원의 ‘수지스’도 이 시기에 문을 열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해외여행 증가로 서구식 식문화 경험이 늘어난 것도 브런치 문화 확산에 일조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00년 약 550만명이던 해외 출국자수는 2005년 1008만명, 2014년에는 1607만명으로 급증했다.

유행에 민감한 젊은 세대들에게 브런치를 ‘트렌디함’의 상징으로 만든 결정타는 아마 2000년대 인기를 모은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일테다. 캘리, 사만다, 셜롯, 미란다가 뉴욕 맨하튼의 까페에 모여서 주말 브런치를 즐기는 모습은 커리어우먼, 미국식 생활에 대한 여성들의 로망에 불을 지폈다. 음식을 사이에 두고 음식은 나몰라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떠는 섹스 앤 더 시티의 장면들에서, ‘브런치’의 개념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데서 식사와 함께 여유를 즐기는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의 브런치 열풍은 곧 젊은 엄마들의 커뮤니티로 이어졌다. 아이를 학교나 유치원에 보낸 뒤 엄마들끼리 자녀교육과 일상의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에 가벼운 브런치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인터넷에서 한때 ‘애유엄브(애는 유치원, 엄마는 브런치)’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사진출처=123rf]

식탁 위로 오른 "브런치” =밖에서만 먹는 브런치의 시대와 집에서‘도’ 먹는 브런치가 공존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집 밖에서 누리는 브런치의 호사는 가격대비 만족도면에서 사람들의 기대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일 때가 많다. 게다가 젊은이들이 누리던 식문화 트렌드였던 브런치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즐길 수 있는 문화로 자리잡으면서 직접 해먹는 브런치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홈 브런치 족(族)’이다.

사실 집에서 브런치를 도전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데는 최근의 ‘집밥’ 열풍의 영향이 크다. 건강한 먹거리를 선호하는 웰빙 트렌드에 ‘먹방’, ‘쿡방’ 열기가 더해지면서 맛보다 멋으로 즐겨왔던 브런치를 집에서 시도하는 이들이 증가한 것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올해 상반기 발표한 ‘식품소비트렌드분석’에 따르면, 전국 만 20세~69세 이하 남녀 성인 4000명 중 75.5%가 ‘음식을 사먹는 것보다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고 응답했다.

미국 잡지 ‘킨포크(Kinfolk)’가 국내에서 인기를 끌면서 가벼운 사교모임에도 ‘홈 브런치’가 외식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킨포크는 2011년 미국 포틀랜드의 예술가들이 직접 키운 식재료로 요리를 해 모임을 갖기 시작하며 형성된 커뮤니티이자 잡지다. 이들의 자연친화적 라이프스타일이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킨포크 라이프’가 가족, 지인들과 삶을 즐기는, 느긋하고 소박한 생활방식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됐다. 여기에 인스타그램, 블로그,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레시피나 요리를 타인과 공유하는 것이 일상화되면서 생활 속에 브런치의 입지도 더 넓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홈 브런치족을 겨냥한 시장의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집에서 간단하게 해먹을 수 있는 제품을 출시하냐면 뉴욕에서 ‘캐리’가 먹던 그 브런치 레스토랑도 한국에 문을 열었다. 전문 까페 못지 않은 차별화된 재료, 외국에서 볼 수 있었던 수입식품 등 브런치 시장을 둘러싼 재료의 트렌드는 ‘고급화’로 정리된다. 식품업계에서는 CJ제일제당이 올해 초 브런치 전용 신제품을 내놓으며 홈 브런치 시장에 출사표를 냈다. 브런치 시리즈는 ‘프레시안 브런치 슬라이스’와 ‘프레시안 브런치 후랑크’, ‘프레시안 행복한콩 브런치 두부’ 등으로 구성돼 있다.

브런치 슬라이스는 기존 슬라이스 햄보다 얇으면서도 풍성한 식감을 내고, 브런치 후랑크는 고기를 갈지 않고 굵게 썰어 가공하는 유럽식 수제 햄 스타일을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 특별한 조리 없이 그대로 구워 스크램블 에그, 샐러드 등과 함께 담아내기만 하면 홈메이드 브런치가 완성된다.

백화점업계는 고급 식재료 수요와 브런치 메뉴의 테이크아웃이 늘면서 프리미엄 식품관으로 소비자들을 공략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올해 서울 목동에 고급식품 전문매장인 ‘SSG푸드마켓’ 3호점을 열었다.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수입 식재료나 유기농 식품을 주로 판매한다. 현대백화점 판교점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프리미엄 식품관이 들어섰다. 이탈리아 프리미엄 식자재를 취급하는 ‘이탈리’와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주인공들이 브런치를 즐겨먹던 뉴욕 ‘사라베스’가 국내 최초로 입점했다.

balm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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