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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서울시민이다] 아파트 지하 공간의 변신은 무죄
'주민 커뮤니티 공간, 이런 곳에도 만들 수 있었네'

[나는 서울시민이다=김영옥 마을기자]  “와우~~~”  평범해 보이는 아파트 출입구 외벽에 ‘햇살문화원’이란 나무 문패가 걸려 있었다. ‘아파트에 웬 문화원?’. 호기심이 발동했고, 아파트 1층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조금 내려가는 순간 탄성이 절로 나왔다.

예기치 못한 곳에서 의외의 발견이 주는 놀람과 감동은 인상적이었다. 아기자기한 꽃장식과 함께 주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인 ‘햇살문화원’이란 근사한 알림판이 벽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의 활동사진들이 행사별로 나무 판넬에 한가득 붙어 있었고, 마을의 이런 저런 정보를 알리는 다양한 포스터가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햇살문화원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더욱 놀라웠다. 주민들이 손수 만든 다양한 공예품들이 방마다 가득했다. 공방에 온 듯 한 착각이 들 정도로 지하 공간이라 하기엔 너무나 아늑한 모습이었다.

여기, 아파트 지하 공간 맞아?

“우리들의 놀이터랍니다. 여기서 아파트 주민들이 모여 캘리그라피를 배워 예쁜 글씨도 쓰고 프랑스 자수, 코바늘 손뜨개, 냅킨아트, 리폼아트, 양말인형 같은 수공예품들도 만들어요. 모두 주민들의 솜씨랍니다. 이곳은 우리 아파트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의 사랑방이자 공방이죠. 작년 마을박람회 때엔 서울시청 광장에서 전시도 했고, 도봉구청 1층 로비 갤러리에서는 작년에 이어 올해 11월 31일부터 12월 1일까지 전시가 계획되어 있어요.”

이미실 공동체 활성화 회장의 설명은 햇살문화원 곳곳에 놓인 다양한 작품들을 더욱 허투루 볼 수 없게 했다.

▲ 이미실 공동체 활성화 회장


도봉구 방학동 극동아파트는 167세대의 작은 아파트이다. 이 작은 아파트가 2년 전부터 주변에 잔잔히 입소문을 타고 있는 중이다. 방학동 극동아파트 주민들에겐 그 흔한 주민사랑방도 없었다. 주민들이 모여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늘 안타까웠던 극동아파트 원영례 관리소장은 2013년 봄, 도봉구청에서 공간지원 사업을 공모하고 있음을 주민들에게 알렸다.

관리소장과 4명의 입주자 대표들, 주민들은 합심해서 아파트 내에 유휴공간을 찾아 나섰다. 다양한 아파트 시설의 배관들이 덜 복잡하게 설치된 지하공간을 찾아냈고, 2013년 5월 선정된 구청 공간지원 사업의 지원금으로 아파트 주민들은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발품 팔고, 재활용품으로 꾸민 주민들의 공간, “굿~~~!”

주민들은 머리를 맞대고 지하 공간을 어떻게 꾸밀 것인가 의견을 조율했고 비용을 아끼기 위해 주민, 관리소장, 직원들이 손수 공간을 조성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예산이 넉넉하지 않았던 터라 관리소장은 지하 공간의 페인트칠을 도맡았고, 이미실 공동체활성화 회장을 비롯한 아파트 주민 5명은 발품을 팔아가며 공간에 필요한 소품들을 사다 직접 공간을 꾸몄다. 재활용 가능한 수납장들과 책꽂이는 물론 신발장으로 쓰던 것들도 기증받아 색칠해 말끔한 재활수납용품들로 만들었다. 꾸미는 재미가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지하공간에는 문을 달 수 있는 문틀이 3개 남아 있어, 문을 달고 방을 3개 만들 수 있었다. 방 이외의 공간은 카페와 회의를 할 수 있는 넓은 공간으로 칸막이를 이용해 꾸몄다. 공간 꾸미기의 주축이 된 5명의 주부들은 집안 일이 끝난 저녁시간에도 지하공간으로 내려와 공간 꾸미는 작업을 진행했고, 새벽 12~1시까지 작업을 할 때가 부지기수였다.

학생들 공부방인 ‘봉숭아학당’, 다양한 공예품을 만들 수 있는 ‘듬쑥공방’, 소모임 방인 ‘하하호호방’, 어르신들의 모임방인 ‘사랑방’, 차를 나눠 마실 수 있는 ‘행복카페’ 등 9개의 테마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 때의 열정은 뒤돌아 생각해봐도 다시 하라면 못 할 것 같아요. 의기투합하니까 정말 ‘뚝딱’ 만들 수 있었어요. 우리 모두 이 공간이 너무 너무 절실했나 봐요.”

이미실 회장은 함께 하니까 ‘금방, 잘’ 할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우리들의 놀이터가 생겼답니다. 놀러 오세요~~~”

드디어 2013년 10월 햇살문화원이 개관했다. 아파트 주민들은 재능기부를 통해 이웃과 배움을 나누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을 반겼다. 공간이 생기니 사람들이 모였다. 자수, 코바늘손뜨개, 냅킨아트, 리폼아트, 양말인형 등을 배울 수 있는 토탈공예 강좌, 예쁜 글씨를 배워 컵이나 나무 등 어디든 솜씨를 뽐낼 수 있는 캘리그래피 강좌, 요가교실 등 주민들의 재능기부가 이어졌고, 강좌가 개설되면서 바야흐로 햇살문화원 1기(3개월)가 시작됐다.

1기 수업 참여 주민들은 무료로, 2기 수업 참여 주민들은 회비 1만원만 내면 다양한 강좌를 맘껏 들을 수 있었다. 토탈공예 강좌는 늘 20여명이 수강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고 주민들이 만든 다양한 공예작품들은 구청은 물론 시청에서도 전시가 됐다. 요즘은 외부 주민들이 강의를 들으러 더 많이 찾아오기도 한다.

▲햇살문화원의 다양한 소품 전시를 알리는 안내판


“줄탁동시란 말이 딱 맞아요. 주민들은 커뮤니티 공간이 너무 필요했고, 관의 공간지원 시기와 접점을 이룬 거죠. 관리 주체와 동 대표, 주민들이 의기투합한 것은 너무 당연했어요. 지하 공간이라 걱정과 염려도 많았지만 지금껏 자율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으니 우리 아파트의 자랑인 셈이죠.” 이미실회장은 암만 생각해도 삼박자가 딱 맞았다며 당시를 떠 올렸다.

경사는 이어졌다. 2014년 서울시 공동주택 모범관리 단지로 선정됐다. 햇살문화원은 그동안 다양한 행사도 병행, 진행했다. 노인정 할머니들과 함께 분기별로 요리교실을 진행했고, 사랑의 갈비탕 나눔 행사도 실시했다. 신생아 살리기 모자 뜨기 캠페인은 물론 커뮤니티 공간이란 개념을 넘어 공동주택 우수공동체로서 아파트 주변의 환경보호를 위해 매주 월요일 아파트 인근 북한산 둘레길 청소도 진행해 왔다. 최근엔 아파트 바로 옆에 개관한 간송 전형필 가옥의 청소와 자원봉사 지킴이 활동을 도맡고 있다.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것은 주민들을 더 활기차게 했고 행복하게 만들었다. 주변을 돌아보며 더 많은 일들을 하고자 하는 의욕도 불러 일으켰다. ‘작은 것이지만 혼자가 아닌 서로 함께 한다’ 는 생각이 공동체적인 삶의 시작이라는 것을 주민들은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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