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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카페]금수저,은수저, 흙수저…상속이 능력을 이긴다
요즘 SNS에서 자조적으로 떠도는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론은 아무리 노력해도 계층간 이동이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다. 개인의 능력에 상관없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에 따라 더 갖게 되는 불평등을 꼬집은 것이다.

이 ‘수저론’을 학문적으로 뒷받침하는 책이 나왔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스티븐 맥나미와 로버트 밀러 주니어 미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가 쓴 ‘능력주의는 허구다’(사이)는 왜곡된 능력주의 신화를 날카롭게 짚어낸다.

저자들은 이를 ‘릴레이경주’ 도표를 통해 보여준다. 실선(부모로부터 받은 것)과 점선(개인의 능력)으로 이뤄진 트랙은 부의 정도와 개인의 능력차를 보여준다. 경주는 개인들이 출발점에서 똑같이 신호를 기다리는 식이어야 공평하지만 실상은 부모로부터 출발점을 물려받는 배턴터치 형태로 이뤄진다. 말하자면 개인 대 개인의 경주가 아니라 세대간 경주가 되는 것이다.

이 릴레이 경주에서 개인의 능력은 보잘 것 없다. 부유한 사람들은 처음부터 결승점에서 혹은 결승점 근처에서 출발하는 반면 가난한 부모를 둔 사람들은 한참 뒤에서 출발한다. 애초에 결승점 근처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점선의 한 칸을 나가는데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지 않다. 반면 빈곤층은 오로지 자신의 능력만으로 결승점에 도착해야 하는데 그 길이 멀고, 한걸음이 지난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오늘날 남용되는 능력주의는 어디에서 유래한 걸까.

능력주의는 허구다/스티븐 J.맥나미, 로버트 K.밀러 주니어 지음, 김현정 옮김/사이

사전적으로 능력주의란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비례해 보상을 해주는 사회시스템을 뜻한다. 이 말은 1958년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 자신의 풍자소설 ‘능력주의의 출현’에서 처음 만들어낸 신조어다. 그는 책에서 능력주의가 실현된 미래사회는 오로지 능력만을 기준으로 삼으면서 승자독식과 약육강식의 논리로 지배되는 암울한 디스토피아와 같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후 이 말은 열심히 노력해서 능력만 쌓으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로 포장돼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차별적 특혜를 주지 않고 타고난 계층 배경이나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상관없이 오로지 개인의 능력에 따라 보상을 제공한다는 논리이지만 그렇게 공정하게 작동되지 않는다는 걸 이제 사람들은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는 우선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두개의 큰 기둥, 즉 ‘능력적 요인’과 ‘비능력적 요인’을 비교하면서 역사적으로 능력주의는 과대평가한 반면, 비능력적 요인은 과소평가해온 점을 지적한다. 계층에 따른 교육기회의 불평등, 차별적으로 분배되는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 부의 세습과 무형의 상속 자산이랄 수 있는 특권과 특혜의 대물림, 편견에 의한 차별 등과 같은 비능력적 요인들이 진학과 취업, 승진, 소득, 부의 격차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결과들을 내보인다.

문제는 비능력적 요인들이 능력만을 활용해 최대한의 잠재력을 발휘하려는 사람들의 능력을 약화시키고 방해한다는 사실이다. 능력으로 뭔가 해볼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면서 능력은 별 것 아닌 게 돼버린 것이다.

부모의 상속과 개인의 능력 중 어느 것이 결과적으로 인생에 좀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살핀 대목도 눈길을 끈다. 한마디로 상속이 능력을 이긴다.

책은 그동안 상속자산으로 인식하지 못했던 ‘무형의 상속자산’에 대해서도 심도깊게 파헤친다. 부동산, 사업체, 현금 등 유형의 재산뿐 만아니라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가령 부모가 쌓아놓은 영향력있는 사회적 인맥, 어렸을 때부터 가정에서 누려온 풍부한 문화적 자원, 부모의 재산 덕에 우수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 부모의 지위 덕에 취업시 받는 특혜 등이 모두 무형의 상속자산이다. 저자는 최근에는 이런 무형의 상속자산이 자녀의 삶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말한다. 가령 미국의 경우, 거의 모든 구직자들이 ‘추천인’란에 이름을 적어 넣어야 한다. 무엇을 아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를 아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스타일이나 자세, 매너, 취향, 생활양식, 학위, 자신을 표현하는 기술 등 소수만이 알고 있는 전문화된 정보와 지식인 문화적 자본도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저자는 경제적 자본을 ‘올드 머니’, 문화적 자본을 ‘뉴 머니’라고 말할 정도다.

그동안 개천에서 용 나는 사다리로 인식돼온 학교와 교육도 저자들에 따르면 불평등을 대물림하는데 일조하는 야만적인 시스템이다. 보편적 교육은 확대됐지만 양질의 우수한 교육을 받을 기회는 갈수록 차별적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대학이 불평등한 출발점을 재생산해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자수성가형 인물이 더 이상 나올수 없는 구조, 도덕적 가치인 진실성이 상향적 계층 이동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현실도 드러낸다.

그렇다면 부와 권력, 기회의 불평등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는 개인의 능력으로 돌파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정책변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저자들의 결론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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